나는 사은님께 몇 번이나 무릎꿇어 보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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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은님께 몇 번이나 무릎꿇어 보았는가?
  • 한울안신문
  • 승인 2010.02.04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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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송은성 교무 , (원남교당)

원불교 교도님들이 자주 하시는 말들 가운데 하나가 바로 “원불교는 신앙성이 좀 더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너무 이성에 호소하고, 늘 실천을 중시하고, 여기저기 마음공부 훈련은 많이 하는데 원불교 교도로서 법신불 사은전에 간절히 두 손이 모아지질 않는다며 고민을 하는 교도님들을 종종 만나게 됩니다. 정말 원불교는 ‘하나님 아버지~’처럼 실체를 모시지 않기에 신앙심이 우러나오기 어려운 걸까요?


사실 소태산 대종사님 당시에는 9인 제자를 모을 때도 그렇고, 방언공사 후 법인기도를 올리신 것부터 기도의 역사가 늘 함께했습니다. 정산 종사님 당시에도 총부가 6.25 동란을 무사히 넘길 수 있었던 데는 기도의 위력이 한몫을 차지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양계 인증보다 음계 인증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신 소태산 대종사님의 뜻을 소홀히 생각하기 시작한 건 아닌가 하는 반성을 해봅니다.


올해로 교화현장에 나온지 7년차가 되었습니다. 다들 새해를 맞아 저마다의 계획들을 세우고 준비하시겠지만 나 또한 원남교당 보좌로서, 청년 교화 담당자로서의 각오와 다짐을 하며 다시 시작한 게 있습니다. 바로 ‘기도’입니다.


서원관 시절에 열심히 해보고는 교당에서는 교당 업무상 올렸던 기도가 전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기도에 게을렀습니다. 하지만 요즘 전 새로운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처음 청년교화를 비롯한 보좌교무로서의 업무를 담당하면서 부족한 역량을 채우고 싶은 마음에 기도를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바쁜 일정 속에서도 ‘기도를 놓으면 청년 교화를 놓는 것’이란 생각으로, ‘대종사님께 조금이라도 보은하자’는 마음으로 채찍질을 해가며 법신불 사은님 앞에, 대종사님과 역대 스승님들 앞에 무릎꿇고 두 손을 모았습니다.


그러자 우연히 사서 읽게 된 책에서 대종사님의 말씀처럼 가슴에 와 닿는 문구가 발견되고, 갑자기 원남교당 청년회를 다니고 싶다며 전화가 오기 시작했습니다. 내심 청년교화를 담당하셨던 교무님이 지난 8년간 정성으로 지도를 하셔서 그 자리를 대신 할 수 있을까 걱정이었습니다. 그런데 기도를 올리며 영생이란 긴 시간 속에 8년이란 시간은 찰나에 불과하다는 생각과 함께 나와 청년들이 전생에 어떤 소중한 인연이었을 지도 모른다는 자신감이 생기면서 만나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소중한 옛인연을 만난 것처럼 반갑고 감사함과 은혜가 샘솟기 시작했습니다. 이걸 감히 신앙체험이라 이야기하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이런 경험을 하면서 법신불 사은님 앞에 진심으로 두 손을 모아본 일이 몇 번인지, 무릎을 꿇고 간절히 기도해 보고 신앙성이 옅은 종교라고 이야기를 해 오지는 않았는지, 저부터 반성하는 마음을 가지고 부끄러운 자기 고백을 말씀드려봅니다.


대종사님은 정전 수행편 ‘심고와 기도’에서 “즐거운 일을 당할 때에는 감사를 올리며, 괴로운 일을 당할 때에는 사죄를 올리고, 결정하기 어려운 일을 당할 때에는 결정될 심고와 혹은 설명 기도를 올리며… (중략)”라며 기도해야할 순간순간을 상세하게 설명해주시고 “이 심고와 기도의 뜻을 잘 알아서 정성으로써 계속하면 지성이면 감천으로 자연히 사은의 위력을 얻어 원하는 바를 이룰 것이며 낙있는 생활을 하게 될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얼마나 실천하고 있었느냐의 문제를 함께 반성했으면 합니다. 강남교당 한덕천 교무님께서는 두 번째 설교집 「행복열쇠」에서 우리에게 ‘신앙은 기도로 성장한다’는 체험의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아무리 피곤하셔도 늘 끊이지 않는 교감님 방의 목탁소리가 우리 원남교당 교화를 책임지고 계시다는 확신으로 저는 감히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 오늘부터 함께 무릎꿇고 기도해 보시지 않겠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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