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와 원불교 100년
상태바
한류와 원불교 100년
  • 한울안신문
  • 승인 2010.02.25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 김경일 교무 , (원불교 100년 기념성업회 사무총장)

“물질문명의 폐해와 경쟁에 지친 현대인들이 ‘전통’으로 회귀하고 있다. 우리 전통 속의 생명 평화 사상은 동아시아 국가들의 보편적인 정서이다. 이러한 맥을 제대로 짚어낸다면, 우리 문화와 전통에 살아있는 ‘보편성’은 세계인과 호흡할 수 있고 그 과정에서 우리의 전통문화 콘텐츠는 세계를 향한 문화발신의 재료로 사용될 수 있다.”


신승일 한류전략연구소장이 국회 정책토론회에서 한 강연 내용의 일부다. 최근 몇 년 동안 일었던 한류바람이 시들한가 싶었는데 안으로 한류의 뿌리와 관련한 근원적인 질문들이 나오는 것을 보니 놀랍다.


일본의 중견 여배우 ‘구로다 후꾸미’는 “한류는 대중문화로 인해 촉발되었지만, 일본의 한류팬들 가운데 한국의 문화와 전통을 알고자 하는 수요가 많이 생겼다. … 그런데 한국인의 예쁜 마음이 어디서 왔을까 궁금하다. 아마 유교 때문이 아닌가 싶다”라고 했다. 한 때 중국을 망하게 한 묵은 종교사상 처럼 취급받던 ‘유교’와 ‘공자’가 지금 중국에서 부활하고 있다고 한다. 유교만이 아니다. 이보다 훨씬 더 먼저 미국과 유럽에 선불교나 티벳불교의 바람은 서양문명을 대체할만한 새로운 문화의 한 자락이 된지 오래다.


2월 말에는 일본에서 “한국의 후천개벽 사상”에 대한 국제 세미나가 열린다고 한다. 이 분야에 한국의 전문가 20여명이 초청을 받아 선천의 묵은 세상을 후천의 새로운 문명으로 전환하고자 했던 동학의 수운을 비롯하여 원불교와 소태산에 대한 발표와 연구가 있을 것이라고 한다. 왜 이들은 한반도의 후천개벽에 대하여 그토록 지대한 관심을 갖는 것일까?


인도의 불교, 중국의 유교와 도교가 동아시아에서 찬란한 동양문화를 꽃피운 것은 오래전 일이다. 19세기 무렵 국운이 쇠하면서 조선은 몰락했다. 서양의 기독교가 들어오고 과학과 물질문명이 들어오면서 우리 사회는 급변했다. 무질서와 혼란중에 수운은 후천개벽, 새로운 문명세상을 외치면서 유불선과 동서양을 통합하는 새로운 종교사상 동학을 주창했다. 일부(一夫)의 정역이나 증산의 해원상생도 새로운 문명비전을 꿈꾸는 개벽사상의 흐름중에 하나다. 이런 개벽사상은 소태산의 ‘정신개벽운동’에서 집성된다. 이 안에 유불선의 원형(原型 Archetype)이 있다. 원형만이 아니라 보편과 통합이 있다. 김지하 시인같은 분들이 그렇게 말하고 있다.


녹색운동의 창시자이며 신비주의자인 루돌프 슈타이너는 ‘인류문명의 대전환기에는 인간의 새로운 삶의 양식을 결정할 원형(原型 Archetype)을 제시하는 성배(聖杯)의 민족이 반드시 나타난다… 지중해 문명의 전환기에 나타난 그 민족은 이스라엘이지만 오늘날은 한국이다’라고 했다. 지구온난화와 서구 물질문명의 폐해로 인류 문명의 대전환기가 다가오고 있다는 것이 문명학자들의 얘기다.(신승일 소장의 발표문에서 인용)


유명한 미래학자 폴 케네디는 일본 동경대 강연에서 “21세기 아시아 태평양 시대의 중심은 누구냐?”는 질문에 미국은 청교도정신, 개척자정신, 정신적 지도력을 잃었다고 했으며 “Never Japan, never China, maybe Korea”라고 했다는 말은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


배타적 선민사상이나 국수주의가 아니다. 원시반본하는 문명의 대전환기, 새로운 시작의 기점으로 한반도를 세계 지성들이 주목하고 있다.


단순한 한류가 아니라 이 땅으로부터 비롯하는 새로운 문명의 흐름을 주목해야 한다. 한류는 그 어떤 조짐 아닐까? 원불교 100년은 우리부터 이에 대한 자각과 확신, 그리고 사명과 책임의식을 공고히 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