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은혜였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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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은혜였으면 좋겠습니다
  • 한울안신문
  • 승인 2010.04.15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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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오정행 교무 , (본지 편집장)

변덕스러운 날씨 탓인지 조금씩 개화를 미뤄오던 봄꽃들이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 한꺼번에 앞다퉈 꽃망울을 터트립니다. 키 작은 봄까치풀을 시작으로 유채, 매화, 목련, 산수유, 개나리, 진달래, 왕벚에 이르기까지 한꺼번에 꽃을 피워 올리다보니 세상이 마치 꽃대궐인 양 눈이 부실 정도입니다. 원각성존 소태산 대종사님이 대각을 이루셨던 그날도 세상은 아마 이처럼 화사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어쩌면 지금처럼 공해나 황사도 없고 변덕스런 이상기후도 없었을 터이니 좀 더 화사하고 좀 더 찬란했을 것입니다.


인간의 생로병사와 천지의 성주괴공의 이치를 깊고 오랜 의심 끝에 크게 깨달으셨던 원각성존 소태산 대종사님. 스승님께서 깨달음을 이루셨던 이 찬란한 사월을 맞이할 때마다 우리는 대각의 기쁨을 경축하는 것과 함께 가끔 천지자연의 은혜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 봅니다. 하늘과 땅과 물과 별과 바람, 그리고 봄기운을 머금은 나무와 숲과 새와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작은 풀들까지 스승님께서 대각을 이루기까지 그 옆을 지키며 깨달음의 세계로 인도해 준 친구들이자 이웃이었을 것입니다.


며칠 전 흑석동 원불교서울회관 앞 지하철 9호선 1번 출구 방향으로 ‘모두가 은혜입니다’라고 하는 글씨가 씌여진 커다란 대각개교절 홍보탑이 하나세워졌습니다. 아마 이번 주부터는 서울시내 곳곳에 설치된 육교현판을 통해서도 이와같이 원불교 열린 날을 알리는 대각개교절 홍보용 플래카드를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길을 지나는 수많은 차량들 속에서 사람들은 ‘아, 4월 28일이 원불교가 열린 날이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모두가 은혜입니다’라고 하는 글귀를 한번쯤 곱씹어보는 소중한 기회를 갖게 되겠지요.


그런데 그 홍보탑을 쳐다보며 문득 ‘정말, 이 세상이 모두 다 은혜일까?’하는 강한 의문을 품습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세상 만물이 푸르름과 싱그러움으로 빛나야 하는 이 눈부신 사월에, 푸르른 봄빛을 빼앗긴 채 무분별하게 파 헤쳐지고 있는 생명의 강과 그 강을 의지해 살아가는 수많은 뭇 생명들의 죽음이 떠오른 까닭입니다. 지금 이 시각도 죽음을 강요당하고 있는 그 뭇 생명들은 거대한 굴삭기의 굉음과 함께 갑작스럽게 찾아온 찾아든 인간의 무차별한 공격이 정말 은혜였을까요?


최근 이웃 종교인 불교와 가톨릭, 그리고 일부 기독교가 현 정부가 추진 중인 4대강 사업에 대해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습니다. 불교는 여주 신륵사 인근에 위치한 여강에 ‘여강선원’을 개설하며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고, 가톨릭은 교단을 대표하는 주교회의가 4대강 사업에 반대 입장을 밝힌 뒤 4대강 곳곳에서 미사를 올리며 분위기 확산시켜 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종교의 정치참여에 대한 내외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이들 종단이 한결같이 4대강 사업에 대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나선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그 해답은 바로 ‘생명’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신앙은 다르지만 이웃종교들이 이구동성으로 목소리를 내는 이유는 그곳에 바로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조금 늦은 감은 있지만 일부 교무님들이 4월 24일 경기도 여주에서 생명의 강을 살리기 위한 기도회를 갖는다고 하니 여간 반갑지 않습니다. 원각성존 소태산 대종사의 대각은 홀로 이루신 것이 아니라 어쩌면 눈부시도록 푸르른 이 사월, 우리 모두가 은혜롭게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어 달라는 뭇 생명들의 염원이 만들어낸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보며 이 기도회가 생명의 존엄성을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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