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곡양처진석 , - 마곡이 두 군데서 석장을 흔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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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곡양처진석 , - 마곡이 두 군데서 석장을 흔든다
  • 한울안신문
  • 승인 2010.06.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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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김덕권 교도의 청한심성 39

마곡이 아직 납자(納子)였을 때 장경 화상을 찾아가 선상(禪床) 주위를 세 번 돌고 석장을 한 번 내려친 후 우뚝 섰습니다. 그러자 화상은 이렇게 말했답니다.


“옳구나 옳아!” (나중에 설두는 “틀렸다” 고 촌평을 했다.)


마곡은 다시 남전(南泉) 화상을 찾아가 똑같이 선상을 세 번 돌고 석장을 한 번 내리친 후 우뚝 섰습니다. 그러자 남전은 이렇게 소리쳤습니다. “아니지 아니야!” (나중에 설두는 또 “틀렸다” 고 촌평을 했다.) 그러자 마곡이 화상에게 대들었습니다. “장경 화상은 옳다고 했는데 어째서 화상은 아니라고 하는지요?” “장경 화상은 옳지만 너의 행동은 틀린 것이다. 그렇게 바람의 힘으로 돌아가다가는 결국 파멸로 끝날 뿐이다.”


(擧. 麻谷持錫到章敬. ꠙ ꠓ禪床三ꠙ ꠗ振錫一下 卓然而立. 敬云 是是. (雪竇着語云 錯.) 麻谷又到南泉 ꠙ ꠙ禪床三ꠙ ꠛ振錫一下 卓然而立. 泉云 不是不是.(雪竇着語云 錯.) 麻谷當時云 章敬道是 和尙爲什ꠙ ꠚ道不是. 泉云 章敬卽是 是汝不是. 此是 風力所轉 終成敗壞.)


설두 화상의 이래도 틀렸고 저래도 틀렸다는 것은 이러쿵저러쿵 할 것 없다는 말이랍니다.


확실히 그렇습니다. 자동차운전을 수십 년간이나 해왔는데 규정 속도에 맞춰 천천히 가면 뒤에서 빵빵거리며 난리가 납니다. 이럴 때 우리는 자기도 모르게 과속을 하게 됩니다. 상황에 대처하는 확실한 주관이 없기 때문입니다. 누가 뭐래도 법을 지킨다며 천천히 가는 것도, 거칠 것이 없다고 마구 달리는 것 또한 잘하는 운전이 아닐 것입니다. 운전도 중도를 잡아야지요, 필자가 생각하기에는 물 흐르듯이 흐름의 대열에 잘 따라 가는 것이 운전을 잘하는 사람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우리는 누가 잘했다고 칭찬을 하거나 잘못했다고 꾸짖는 데에 마음이 많이 상합니다. 칭찬하면 좋아 입이 다 벌어지고, 꾸짖으면 화가 치밀어 올라 두고두고 앙앙불락을 합니다. 이게 우리 범부 중생들의 모습이지요. 옛날에 필자가 일원대도에 귀의 한지 얼마 안 되었을 때의 일입니다. 교무님께서 눈에 조금이라도 거슬리는 점이 보일 때에는 사람들이 있건 없건 가차 없이 핀잔을 주십니다. 참 견디기 어려운 세월이었습니다. 언제는 칭찬을 하고 또 어느 때는 야단을 치니 참 어느 장단에 춤을 추어야 할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어떤 교도 한 분은 법회시간에 자기한테만 질문을 한다고 몹시 툴툴거렸습니다. 대답을 잘하면 보통이고, 대답을 잘못하면 창피하여 얼굴이 다 벌게집니다. 그러나 그 모진 세월을 견디고 보니 그것이 얼마나 이 새까만 중생들을 정금미옥(精金美玉)으로 만드시려는 스승님의 비원이었던 것인지 조금은 알게 된 것 같습니다. 이 야수같이 거친 검정소를 길들여 꼬리까지 희게 만들고자 하신 스승님의 자비인 줄을 예전엔 미처 몰랐습니다. 억울하면 공부를 하라! 만약 그 때 그 시련을 이겨내지 못하고 이 회상을 뛰쳐나갔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렇다고 지금 그런 칭찬과 질책에서 완전히 자유로워 졌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남이 뭐라고 하던 내가 하는 일이 옳다면, 그리고 내가 해야 할 일이라면 조건이나 환경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대체적으로 남의 평판에 좌우되지 않고 일할 수 있는 정도는 되었다는 생각입니다. 아마 보나마나 교무님께서 이 글을 보시면 꼬리가 희여 지기는커녕 아직도 새까맣다고 또 벼락을 내리 실 것이 뻔합니다.


주관이 뚜렷하고 주체적인 삶을 사는 사람은 누구의 장단에도 춤을 추지 않습니다. 나의 주인공은 바로 나 자신입니다. 주인공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우왕좌왕, 이리 흔들리고 저리 흔들리면 될 일도 안 되는 법입니다. 한 소식 깨치려는 수행자가 중심을 못 잡고 이 종교 저 종교, 이 스승 저 스승을 기웃거려보았댔자 아마도 도를 깨쳐 영생사(永生事)를 해결하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마음이 흔들리면 그림자가 나타나고, 깨달았다고 한다면 얼음이 생겨난다. 그렇다고 움직이지도 않고 깨닫지도 않으면 여우가 토끼 굴로 들어가는 것을 면치 못한다. 투철하게 사무치고 깊이 믿어야 실오라기 하나도 가릴 것이 없게 된다. 그래야 용이 물을 만난 듯, 범이 산중에 들어간 듯하여 천천히 해도 기왓장에서 빛이 생기고, 잡아당겨도 황금이 빛을 잃게 되어 옛사람의 공안(公案)도 도리어 돌아가는 길이 된다.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지 말 하여 보라.」 독자 여러분들은 이 옛 선사의 이 일갈의 뜻이 무엇인지 가늠을 하시겠습니까? 공연히 마곡이 석장을 두 군데서나 흔들었나 봅니다.


여의도교당, 원불교문인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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