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암미모 , - 취암의 눈썹을 둘러싼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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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암미모 , - 취암의 눈썹을 둘러싼 이야기
  • 한울안신문
  • 승인 2010.09.02 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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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김덕권 교도의 청한심성 44

취암 화상이 하안거를 마치고 대중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여름 내내 그대들을 위해 설법을 했는데 그래도 이 사람의 눈썹이 남아 있는가?”


이에 보복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도적질 하는 놈치고 정직한 놈이 없다.”


장경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히려 눈썹이 솟아났다.”


또 운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것이 하나의 관문이다.”


고사 성어 중에 ‘수주대토(守株待兎)’라는 얘기가 있습니다.


송나라 때 어떤 농부가 밭을 갈고 있었습니다. 밭 한 가운데 나무 한 그루가 있었는데 토끼 한 마리가 뛰어오다가 이 나무에 부딪쳐 목이 부러져 죽었습니다. 이 농부는 이를 보고 웬 횡재냐 생각하고 그만 밭갈이를 집어치고 온종일 나무 밑에 앉아 토끼가 또 잡히기를 기다렸으나 토끼는 다시 오지 아니하고 사람들의 웃음거리만 되고 말았다는 고사입니다.


이 얘기는 중생이 얼마나 어리석은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어리석은 사람들이 도문(道門)에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옛날부터 진리와 동떨어진 세속의 이치를 말하면 눈썹이 몽땅 빠진다는 말이 전해 온답니다. 아마 그런 연고로 취암 화상이 눈썹이 아직 남아 있느냐고 물어본 것이 아닌지요.


신라의 고승 원효(元曉)도 한 때는 뻔한 이치를 모르는 어리석은 시절이 이었다고 합니다. 어느 날 원효가 대안(大安) 대사를 만났더니 어미 잃은 너구리 새끼 몇 마리를 안고 있었습니다. 대안대사는 마을에 내려가 젖을 얻어올 테니 너구리들을 보살펴 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얼마 흐르자 그 중 한 마리가 지쳐서 죽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원효는 그 너구리 새끼가 불쌍하게 생각되어 극락왕생 하라고 ‘아미타경’읽어주고 있었습니다. 이때 대안대사가 돌아와 원효에게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이놈의 영혼이라도 극락왕생하라고 경을 읽는 중입니다.”


“그럼, 너구리가 그 경을 알아듣겠소?”


“너구리가 알아듣는 경이 따로 있습니까?”


대안 대사는 너구리 새끼에게 동냥해온 젖을 먹이며 “이것이 너구리가 알아듣는‘아미타경’이랍니다.” 하고 원효의 어리석음을 깨우쳐 주었다고 합니다.


아주 오래 전의 얘기입니다. 계룡산에서 도를 닦았다는 사람이 찾아와 도에 관한 얘기를 늘어놓으며 접근해 왔습니다. 생김새도 그렇고, 차림새도 야릇하며 거기에다 상투까지 틀었습니다. 호기심이 생겨 몇 번 받아 주었더니 자주 찾아와 꽤 친숙해 졌습니다. 결국 배가 고프면 노동을 해서라도 살아 갈 궁리를 해야 되는데 일은 안 하고 알 수 없는 주문(呪文)만 외우면서 도와달라고 합니다. 새 부처님께서도 오죽 못난 도인이 의식주를 걱정하랴 하셨는데 소위 도를 깨쳤다는 도인이 실지불공(實地佛供)은 안하고 경만 외운다고 천록(天祿)이 그냥 하늘에서 떨어지겠습니까?


옛날 원오 선사가 이 ‘취암미모’에 대해 이렇게 수시(垂示)를 하셨습니다.


‘절대 진리를 알았다고 한다면 육도의 윤회(六途輪廻)를 수용해도 마치 용이 물을 얻고 범이 산을 의지 한 듯 자유자재하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알지 못하면 세속의 이치에 끌려 다니니 마치 어린 숫양의 뿔이 울타리에 걸려 꼼짝 못하고 말뚝을 지키며 토끼를 기다리는 것과 같다.’


도를 닦는다고 명산대찰 심심산중으로 찾아들어가 사람이 행하여야 할 인생의 도리는 하지 않고 눈을 감고 가부좌를 틀고 앉은 사람은 그야말로 ‘수주대토’의 어리석은 농부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대안 대사의 말씀처럼 이치에 합당하고 사물의 본성에 계합하는 것이 도(道)이고 깨달은 자의 행할 바 당처불공(當處佛供)일 것입니다. 깨달은 사람은 번쩍하면 우루릉 쾅쾅입니다. 장경(長慶) 화상만이 ‘취암미모’의 뜻을 알아차려 ‘눈썹이 솟아났다’고 대꾸한 것이 맞는 것인지, 보복의 도적질, 장경의 관문이라는 대답이 맞는 것인지 참 옛 선사들의 선화(禪話)는 종을 잡기가 힘이 듭니다.


원불교문인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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