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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울안신문
  • 승인 2010.09.0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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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민 기자의 단어 너머 세상



돌아오는 길, 침묵 속에 그녀가 내게 말했다. “모든 것이 은혜였다는 걸 알게 해줘서, 이렇게 잘 보내게 해줘서 고마워.” 남편의 천도재를 막 끝낸, 이제는 다섯살 아들과 함께 법명을 기다리는, 내 가까이 살뜰히 지내는 친구다.


함께 2월 오덕훈련원 달맞이 기도회에서 잡곡밥도 먹고 윷도 놀았다. 종교의 울을 떠나서도 영성 넘치고 마음 순해지는 그 기운이 좋다며 그녀는 ‘언젠가 입교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단다. 봉도수련원이며 보은장터, 강남교당 하우스콘서트, 한울안생협 그리고 하이원빌리지까지 만나는 모든 교무님들과 교도님들이 텅비어 좋았댔다. 나는 끄덕거리기만 했다. 그리고 어느 무덥던 밤 사고가 있었다. 발인까지 마친 그녀가 나를 찾아왔다.


“원불교에서 죽음의 의식이 뭐야? 뭐가 필요한지, 어떻게 해야하는지 좀 알려줘.”


‘천도재’가 무슨 뜻인 줄도 몰랐던 그녀가, 그 황망한 중에 원불교식으로 지내야겠다고 결심했던 것이다. 이후, 듣고 있으면서도 아까울 정도로 감동적인 독경을 하시는 서광덕 교무님께 여쭈어 대치교당에서 재를 올렸다. 쉽게 풀어주시는 설법과 재가 끝난 뒤 문답하며 말씀을 듣는 그 시간을 그녀는 일주일동안 내내 기다렸다. 월요일 재 지내면 화수목 그 힘으로 살다가 금요일쯤 다시 갈증이 난다고 했다. 어느 날엔 사경을 하겠다며 교화용품센터에서 노트를 사갔고, 스마트폰에 교전 어플을 받아 매일 밤 읽다 잠에 든다. 지난 주, 결국 그녀는 종재를 앞두고 입교원서를 썼다.


정인신 오덕훈련원장님이 설법을 해주신다는 서 교무님 말씀에 그녀는 울었던가. 함께 알고 지내온 박화영 교무님이 독경을 위해 익산에서 올라오시고, 교도님들까지 오신 가운데 종재를 치렀다. 가족들과 친구들 중 교도는 더 없었지만 장중하고 엄숙하며 간절한 그 마음에는 어긋남 없이 한 기운이었다. 좋은 49재였다며, 고인이 하늘길 잘 잡아갔겠다며 가족들은 몇 번이고 교무님들께 인사를 했다. 자리가 열리고 직접 만나니 다들 이 진솔한 영성에 눈을 뜬다. 그녀가 서서히 바로 그 진리와 은혜를 알아봐왔던 것이다. 아직은 남은 슬픔이 마냥 두렵거나 아프지만은 않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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