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만법귀일 , -조주의 만법이 하나로 돌아가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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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주만법귀일 , -조주의 만법이 하나로 돌아가는 곳
  • 한울안신문
  • 승인 2010.09.19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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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김덕권 교도의 청한심성 45

어떤 납자가 조주 화상에게 물었습니다. “만 가지 법이 하나로 돌아간다면 그 하나는 어디로 돌아갑니까?” 이에 대해 화상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내가 청주에 있었을 때 베적삼을 한 벌 만들었는데 그 무게가 일곱 근이었네.”


‘만법귀일(萬法歸一) 하니 일귀하처(一歸何處)오!’, 너무나도 유명한 화두입니다. 우리 새 부처님께서도 대종경 성리품의 총 31장 중, 제 10장, 제 17장, 그리고 24장 세 군데나 거론하실 만큼 아주 중요한 화두이지요. 여기서 필자가 위의 법문 내용을 다 예로 들 수는 없고, 제 10장의 말씀만 받들도록 합니다.


새 부처님 봉래정사에 계시더니 때마침 큰 비가 와서 층암절벽 위에서 떨어지는 폭포와 사방 산골에서 흐르는 물이 줄기차게 내리는지라, 한참 동안 그 광경을 보고 계시다가 이윽고 말씀 하시기를 “저 여러 골짜기에서 흐르는 물이 지금은 그 갈래가 비록 다르나 마침내 한 곳으로 모아지리니 만법귀일의 소식도 이와 같나니라” 하셨습니다.


비가 내리면 어디로 돌아갈까요? 땅으로 스며들어 시냇물을 이루고 강으로 흐르며 마침내는 바다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다시 구름이 되어 하늘로 올라가고 또 구름이 뭉쳐 본래의 비가 되어 땅으로 돌아오는 법입니다. 흙에서 만물이 자라고 인간과 동물이 이 흙에서 자란 식물과 곡식을 먹고 살아갑니다. 그리고 늙고 병들어 죽으면 우리는 또다시 흙으로 돌아가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四大)로 흩어져 만물이 자랄 수 있는 토양을 만들어 줍니다. 이 진리가 끊임없이 돌고 도는 것, 만법은 이렇게 하나로 돌아가고 하나는 다시 만법으로 돌아가는 이치 이것이 바로 ‘만법귀일 일귀하처’의 소식일 것입니다.


조주가 입고 있던 일곱 근짜리 삼베옷도, 새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골짜기에서 흐르는 물도, 가을에 우수수 떨어지는 낙엽도 하나로 돌아간 만법의 모습입니다.


그럼 만법이란 무엇입니까? 우주 안의 온갖 법도(法度), 물질적 정신적 모든 차별현상, 그러니까 우주안의 일체의 존재, 즉 삼라만상(森羅萬像)?제법(諸法)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 우주의 삼라만상, 일체의 사리(事理)가 형형색색 천차만별로 나뉘어져 있으나 그 근원을 추구해 보면 결국은 하나의 진리에서 나왔다는 말인 것입니다. 이 세상에 인간이 무려 60억 명이 넘게 살아가지만, 결국은 인간이란 의미에서 하나가 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우주 만법이 결국 하나로 돌아간다는데 그 하나는 다시 어디로 돌아가느냐 이 뜻을 깨치면 바로 견성(見性)이라고 새 부처님께서나 조주 화상께서 가르침을 내려주셨습니다. 그러나 만법이 하나로 돌아가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 하나라는 것에 집착해서는 아니 된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 하나라는 것에 집착하면 곧 법박(法縛)이 되어 하나라는 것도 놓아버려야 비로소 ‘만법귀일 일귀하처’의 소식을 걸림 없이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옛날 서가모니 부처님께서도 79세 까지 팔만사천 무량법문을 설하시고도 떠나실 때 ‘나는 한 법도 설한 바가 없다’고 하신 연유가 이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만법이 일여(萬法一如)라 했습니다. 만법이 결국은 하나로 돌아가는데 그 하나라는 것이 곧 공(空)이요, 진여(眞如)라고 하고, 이 공이요 진여가 아니면 결코 하나로 돌아 갈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러니 이 우주의 삼라만상, 곧 이 만법이 나온 곳이 바로 공이요 진여며 일원상의 진리인 것입니다. 그것을 일러 우리는 ‘만법의 어머니(萬法之母)’라고 부른답니다. 이 이치를 깨달은 사람은 마음속에 일어나는 사심잡념, 번뇌 망상을 제거 하고 청정 일심이 되어 마침내 모든 일들이 자기의 뜻대로 이루어지는 경지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만사를 내 마음대로(萬事如意 我心通) 쓰고자 하는 사람은 이 ‘만법귀일 일귀하처’의 화두를 깨지 않고서는 그 경지에 도달할 수 없는 것은 자명한 일일 것입니다.


「치밀한 물음으로 노승을 몰아 붙였으나/ 뉘라서 일곱 근 삼베옷의 무게를 알까./ 구차한 짐들은 서호에 내던져 버렸으니/ 맑고 시원한 바람 받아갈 이 누구인가.」 만법이 완연(完然)하여 애당초에 돌아간 바가 없거늘 하나인들 어디로 돌려보낼 필요가 있는 것일까요? 아직도 조주의 맑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것이 참 상쾌하기도 하네요.


원불교문인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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