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심과 열정이 이글거리는 젊은 원로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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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심과 열정이 이글거리는 젊은 원로법사
  • 한울안신문
  • 승인 2010.10.0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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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이경식 교도의 틈새 선진열전 17 / 좌타원 김복환 편



내가 좌타원 김복환 교무를 처음 뵌 것은 불과 10여 년밖에 안 된 듯하다. 입교 40여년에 교당 생활을 쉰 적도 거의 없으니 그 사이 어떤 자리에서라도 만날 법한데 인연이 없었던가 싶다. 지면에서는 더러 뵈었을 텐데 그도 별 관심을 갖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런데 한번은 영산원불교대학(영산선학대 전신)의 총학생회 초청을 받아서 간 길인데 거기 좌타원님이 총장으로 계셨다. 잘 알지도 못하던 처지에 아마 의례적인 인사만 드리고 말았던 듯싶다.


그런데 한낮에 혼자 경내를 걷다가 우연히 좌타원님을 만났다. 반갑게 웃으시며 함께 산책을 하자고 꾀셨다. 그러잖아도 낯가림이 심한 데다 초면이라 망설여졌다. 더구나 이분이 어떤 분인가. 현직 종법사 따님이란 출신성분에 경력 빵빵한 원로교무에 영세할망정 대학교총장이란 감투까지 쓴 분이다. 이래저래 버거워 별로 내키지는 않았지만, 어른 대우를 해드리느라고 뿌리치질 못하고 발걸음을 나란히 하게 되었다. 처음엔 그저 한 10분쯤 옆에서 거닐며 말벗이나 해드리면 해방되리라고 생각하였다.


좌타원님은 나를 이끌고 중앙봉으로 해서 정관평으로 돌아 한참을 걸으시며 대종사님과 정산 종사를 비롯한 선진님들의 일화랑 초기 교단사를 이야기하셨다. 뿐만 아니라 현재의 성지사업에 대해 자상한 브리핑까지 하셨다. 당시는 양돈을 하고 있었는데 돈사로 끌고 가셔서는 발효사료를 쓰고 톱밥을 깔아서 고약한 냄새가 나지 않도록 유기농 축산을 하는 사연까지 조용조용 설명하셨다. 그 말씀하시는 품이 쉽사리 나를 놓아주실 마음이 없어 보였다. 이건 산책이 아니라 답사라고 해야 맞고, 대화라기보다는 일방적 강의였다. 건성건성 고개나 끄덕거리면 풀려나겠지 한 내 계산이 엄청 착오임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나는 이 어른이 나를 언제 봤다고 이렇게 친절(?)할까,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러는 동안 겸손하면서도 집요한 좌타원님의 열정에 그만 감동해 버렸다. 한편 생각하면 이분이 우연을 가장했지만 나를 만나 산책에 끌어들이기까지 애초부터 상당히 계산된 데이트였음을 느꼈다.


내가 다니던 도봉교당에 좌타원님보다 연하인 이모가 교도로서 함께 다녔는데 혹시 그 분이 어느 기회에 내 얘기를 하셨던가, 아니면 도봉교당 교무님이 나를 미리 소개해 놓으셨던가? 지금도 그 이면이 궁금할 정도다.



그 후 다시 뵐 일도 없이 나도 무심히 지냈는데, 대산 상사 열반 이후 좌타원님은 손수 내게 연하장을 보내시기도 하고 친필 서신이며 법문이 쓰인 인쇄물이며 서책이며 등을 보내주셨다. 참 송구스럽지만 답례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 것 같다. 다만 외람되게도 <대산종사법어> 감수 같은 일만은 겨우 시키시는 대로 했다. 대산종사추모문집에 실을 글을 부탁하는 공문을 받았을 때도 나는 차일피일 하다가 원고를 못 보냈고, 이듬해 손수 써 보내신 청탁 서신을 받고서야 부랴부랴 원고를 보내드렸다. 육신을 낳아준 어버이시자 법신의 스승이신 대산 종사께 향한 효심도 효심이려니와, 상대로 하여금 절로 감동하여 움직이지 않을 수 없게 하는 에너지는 좌타원님의 식을 줄 모르는 열정에서 나오는 듯싶다. 하기야 나처럼 수줍음이 많고 소극적인 사람을 끌어들여 공부를 시키거나 일을 시키려면 좌타원님 같은 열정과 적극성이 아니면 쉽지 않을 듯도 하다.


좌타원님의 설법은 두어 번밖에 못 들었지만, 나는 이분만큼 열정적으로 법설을 하시는 어른도 별로 못 본 듯하다. 다른 법사들보다 유난히 길게 하시는 데다 이제는 끝나려나 보다 하면 또 나오고, 이젠 정말 마치시려나보다 하면 또 이어지기를 적어도 서너 번은 해야 끝이다. 그것도 그냥 끝내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선창하는 구호를 대중보고 따라 하라고 하시고는 그때부터 힘찬 구호가 나오기 시작하는데, 그것도 웬 구호가 그리 긴지 몇 분이나 연호하고서야 끝이란다. 그래도 워낙 열정적으로 하시기에 지루하다거나 따분하다는 기분은 들지 않는다. 그래서 명설법이다.


신년휘호 삼아 보내주신 글을 보아도 질린다. 일심합력, 일심단합, 일심화동, 일심불공…, 일심문화, 일심산업, 일심교육까지 그 일심 시리즈가 끝없이 나오는 판이다. 그 중에, 히야! ‘일심’ 아닌 것도 하나 있네 싶어 보니 ‘일편단심’이다. 그러니까 ‘일심’의 결정판이다. 어찌 그뿐이랴! 마무리 서명조차 ‘좌타원 합장’이 아니라 ‘좌타원 일심’이다.




얼마 전에 좌타원님이 내가 다니는 일산교당에 오셔서 법설을 하셨다. 여전히 그 열정적인 법설을 마친 후 방에서 잠시 모시고 있자니, 인연 있는 이들 몇이 와서 인사를 드린다. 그러자 몇 말씀 뒤에 가방을 열어 부스럭부스럭 하신다. 뭘 주시려나 궁금하다. 그런데 몇 가지 인쇄한 법문을 꺼내서 사람마다 선물하듯 한두 장씩 주신다. 더러는 어린 자녀를 데리고 와 인사를 시킨다. 가만히 지켜보자니 절을 받은 후 이번엔 지갑을 꺼내신다. 그 모습이 꼭 세배 받은 어른이 애들에게 세뱃돈 주려는 폼이다. 속으로는, 교무님이 뭔 돈이 있기에 애들 용돈까지 챙기시려나 걱정스러웠다. 그러나 웬걸! 지갑에서 꺼낸 것은 법문을 찍어 코팅한 미니 인쇄물이었다. 그러면 그렇지! 나는 속으로 웃음이 절로 나왔다. 자나 깨나 오나가나 교화대불공이시니 못 말리는 교무님이시다. 가방은 물론 지갑 속에까지 전도지(?)를 가지고 다니시고, 그것도 화투장 만한 것부터 A4 용지 크기까지, 두꺼운 아트지부터 얄팍한 화선지까지 다종다양이다.


대종사는, 원 없는 데에는 무슨 일이든지 권하지 말라(솔성요론15) 하시고, 정산 종사도 강요성 포교나 과도한 선전을 금하시긴 했지만, 오늘날 우리 교단에 부족한 것은 열정적인 교화의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내 손길 닿는 곳 내 발길 머무는 곳 내 음성 메아리치는 곳 내 마음 향하는 곳마다」 교화하는 어른 좌타원 님을 뵈면 부럽고 부끄럽다. 내가 못 하는 일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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