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을 준비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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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을 준비하면서
  • 한울안신문
  • 승인 2010.10.07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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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이진상 교무의 '우스리스크에 희망을'

너무 빠르게 지내온 시간이다. 그저 정신없이 앞만 보고 달린 것 같은데, 아직은 아무 것도 손에 쥐어진 것도 없이, 아니 쥐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까지 다 내 손길을 벗어난 느낌이랄까.


연해주는 벌써 추워지고 있다. 사람들은 털 점퍼를 꺼내 입었고 머리에 모자를 쓰기 시작했다. 올해는 또 얼마나 추워질런지. 방송에서는 지난해보다 더 추울 것이라고 하는데, 지난해에는 영하 43도까지 내려갔었는데 그럼 올해는 더 춥다는 이야기? 아무튼 그래도 난 씩씩하게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도 추운 집에서는 좀 벗어나고 싶다. 아무리 장작불을 지펴도 따뜻해지기는 커녕 오히려 일만 많아지는 현실 속에서 아무런 가능성이 없는 집에서 벗어나고 싶다. 작은 아파트를 하나 장만해야겠다. 나를 찾아오는 러시아 청소년들이 잠시라도 즐겁게 지내고 갈 수 있는 작은 거실이 하나 있으면 좋겠다. 한국에서 찾아오는 사람들이 잠시 거쳐할 수 있는 방이 하나쯤 더 있으면 더 좋을 것 같다. 물론 내 방은 당연히 있어야겠지만, 이곳은 모든 물가가 한국만큼 비싸다. 현실은 우리나라 70년대쯤인데 물가는 현재와 맞먹으니 원~! 언제쯤 내가 바라는 우리의 의식을 진행할 수 있을지 모르는 현실에서 그 긴시간들을 추위와 싸워야 하는 내 상황이 나를 힘들게 한다. 하지만 내가 건강해야 무슨 일이든지 준비를 할 수 있을 것이라 여겨져서 과감히 시도하려 한다. 뭐 어찌 되었든 하나하나 주춧돌부터 잘 놓아야 하니까 말이다.


우수리스크 사범대학에서는 10월부터 전통공예 수업을 개설하자고 한다. ‘그러마’고 대답을 하면서도 또 얼마나 힘겨운 시간들을 보내야 할지 미리 걱정이다. 전통공예를 보여주면 정말 좋아한다. 그러나 막상 시작하면 우리네처럼 각각의 열 손가락을 자유자재로 사용하기가 너무 힘들다. 난 분명히 손가락 하나하나를 가르키면서 이렇게 저렇게 설명을 하는데도 왜 그들은 그것이 잘 안될까. 그래도 다행히 고려인들과 혼혈들은 그나마 따라오는데 이것도 민족성일까? 뭐 이런 어처구니 없는 의심도 해 본다.


그래도 나를 불러주는 사람들이 아직은 있다는 것이 다행이라 여기면서 한번 하고나면 다시 또 새로이 시작되어지는 반복의 연속인데도 그저 감사하게 생각을 해야 하는 이 사실이 답답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그런 반복들이 나를 지탱시켜 주는 힘이 되는 것이라 여겨지기도 하기에….


요즘은 우리의 단어들을 캐어묻는 사람들이 많다. 같은 뜻을 가진 다른 단어들의 차이가 아주 미묘해서 문장을 만들 때 둘 다 사용해도 무방한데 그래도 조금의 차이가 있는 것들에 대한 질문들이 아주 많다. 그럴 때면 아주 많은 예문들을 들어서 설명하곤 하는데 난 그 순간이 너무 재미있다. 그들의 감탄이 재미있고, 한국어의 대단한 미묘함이 재미있고, 마치 내가 무슨 국어학자라도 된듯한 기분에 조금은 들뜨기도 한다.


하루의 일과가 여러가지로 뒤엉켜서 바쁘게 지나가고, 주머니를 위해서 준비하는 여행 프로그램까지 정말 버라이어티하게 지내고 있지만 도심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을 다시 가다듬어 본다.


이른 새벽 누구나 다 그러하겠지만 깜깜한 창을 바라보면서 새벽의 상쾌한 공기를 가슴으로 들여 마시면서 창을 열고, 구한말 너무도 가난한 조국을 등지고 두만강을 건너 이곳 러시아 땅에 발을 디뎠던 우리네 조상들을 떠올려 본다.


스탈린 시대에 강제 이주 되어 고향 아닌 고향을 만들며 정을 붙이던 이곳을 떠나야 했던, 고려인들의 아픔과 조국의 독립을 위해 다른 나라의 혁명에 뛰어 들어야 했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먼 이국땅에서 독립운동을 했던 많은 선각자들의 아픔까지 다 포함하여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기도가 이곳 연해주에 일원의 진리가 퍼져 가기 위한 작은 힘이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두 손을 모아 본다.


끝이 안 보이는 미로를 해메는 마음으로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내가 서 있는 바로 이곳이 도량임을 알아 한점 흐트러짐이 없이 열심히 살아보겠노라고 다시한번 다짐을 해 본다. 그나저나 이사를 해야 하는데 어디서부터 시작을 해야 할지 휴~!




(http://cafe.daum.net/2008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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