밭 한마지기와 돼지 한마리
상태바
밭 한마지기와 돼지 한마리
  • 한울안신문
  • 승인 2010.11.25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5 이야기로 만나는 선진

정법으로 이 좋은 회상을 열고도 대종사와 선진들은 배를 오래 곯았다. 배만 채울 수 있다면 아무리 고된 일이라도 마다 하지 않던 시절이었다. 도둑이 아니더라도 식량을 탐냈고, 사흘 굶은 사람은 남의 보리쌀 훔치면서도 잘잘못을 몰랐다. 그런 중에 ‘생불님’을 찾아오는 사람들은 늘어만 갔다. 더러는 보리 한 말, 쌀 한 가마 싸들고 제자되기를 청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궁핍한 처지였다. 낮엔 낮대로 일하고, 밤엔 밤대로 공부하는 고된 하루하루였지만 식량 불어나는 것보다 제자 불어나는 속도가 빨랐다. 모두들 가난하고 배가 고팠다. 모두가 일하랴 공부하랴 고되고 바빴다. 하지만 어쩐지 마음은 행복하고 신이 나 늘 웃는 얼굴이었다. 오히려, 아무리 배가 고파도 남의 것을 탐할 줄 몰랐고, 오히려 먼저 제 것 나누어주는 자비심로 으뜸이었다. 이러니 사람들은 법 뿐 아니라 ‘불법연구회’ 운영 비결을 묻기 위해서도 대종사를 찾아오곤 했다. 대종사는 때마다 질문자의 근기에 맞게 대답을 해주곤 했다.


대종사의 차남 길주가 두 돌 되던 원기 9년은 가뭄이 특히 심했다. 영산원 옆에 있는 곳간(현 영산 법모실)에 꾸린 방 한 칸에 대종사의 정토인 십타원 양하운 대사모와 정산종사의 어머니 준타원 이운외, 정토 중타원 여청운이 함께 살았으며, 원래 있던 방 한칸에는 정산종사의 할아버지 송훈동과 아버지 구산 송벽조가 같이 살았다. 먼 길 이사해 온 가족에 어린 아이들까지 있으니 먹을 것이 모자랐다. 허나 대종사와 정산종사가 큰 일 하는데 혹여 방해라도 될까 가족들은 입을 닫고 최대한 아끼고 양보하며 살았다. 혹독한 여름이었다.


“어머, 이게 다 뭐에요?”


어느날 아침, 마당을 쓸던 양하운과 여청운은 왠 보자기 하나를 발견했다. 낡았지만 깨끗이 세탁된 보자기 속에는 겉보리 넉 섬이 들어있었다.


“이 어려운 때에 누가 대체 이걸 갖다 놨을까요?”


“아마 대종사님이 우리 몰래 다녀가셨을거야. 평소에 사가 외출을 삼가는 분이니 몰래 다녀가셨나보지.”


오랜만에 집안 어른들과 아이들에게 밥 지어줄 생각으로 둘은 신이 났다. 고맙고 귀하게 잘 먹고도 출처에 한치의 의심이 없었다. 그런데 아뿔싸, 대종사 후일에 들러 ‘그거 내가 두고 간 것이 아니다’ 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온 가족이 어쩔 줄을 몰라하던 차에, 조용히 선에 들었던 대종사가 마침내 둘을 불렀다.


“십타원, 중타원 나 좀 보시게. 아마도 어려운 사정을 헤아려 불법연구회 누군가 갖다 놓은 것이 분명하오. 원대로 우리가 잘 먹었으니 그 사람은 기쁘겠지만, 그러고 말면 빚지는 것이오.”


갚을 길이 없는데도 대종사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불법연구회에 갚으라’며 둘에게 당부했다. 처음엔 서운했지만, 생각하면 할수록 대종사 말씀이 옳았다. ‘꼭 갚아야겠다’는 결심이 서자 절대 안될 일도 딴 마음 없이 해치웠다. 양하운은 옥녀봉 아래 밭 한마지기를 팔고, 여청운은 키우던 돼지 한마리를 팔았다. 가족에게 환난이 닥치면 쓰려고 아껴 남겨둔 것이었지만, 둘은 이마저도 수업료라 마음을 돌렸다.



정리 민소연 기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