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산무한서 , - 동산의 추위와 더위가 없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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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산무한서 , - 동산의 추위와 더위가 없는 곳
  • 한울안신문
  • 승인 2010.10.21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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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김덕권 교도의 청한심성 47

어떤 납자가 동산 화상에게 물었습니다. “추위와 더위가 찾아오는데 어떻게 피하시렵니까?” “어째서 추위와 더위가 없는 곳으로 가지 않는가?” “그런 곳이 어디 있습니까?” “추울 때는 자네를 얼려서 죽이고, 더울 때는 쪄서 죽이는 곳이지.”




사람들은 추우면 춥다고 난리고 더우면 너무 덥다고 야단법석입니다. 그러나 에어컨과 난로를 번갈아 켜댄다고 더위와 추위가 아주 사라지기야 하겠습니까? 너무 호들갑을 떨 일이 아닙니다. 차라리 더우면 더위 속으로 들어가고, 추우면 추위 속으로 들어가야 추위와 더위를 잊을 수 있습니다. 바로 이열치열은 이를 두고 한 말이죠.


선을 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느끼는 현상이 있습니다. 번뇌와 망상에 관한 얘기입니다. 필자도 오랜 세월 동안 매일 기도와 좌선을 거의 빼먹지 않고 합니다. 얼마 전부터 필자의 거실에 미니 정원을 꾸며 놓았습니다. 12층의 아파트에서 자연을 벗하기란 쉽지 않아 손바닥만 한 정원이라도 차려놓고 온갖 꽃들을 심었더니 그 꽃밭을 감상하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안개폭포에서 흘러내리는 실안개가 폭포에 모셔놓은 불두(佛頭)를 휘감고 앙증맞은 분수 위로 흘러내리는 것을 보노라면 신비감까지 들 정도입니다. 이 미니 분수에서 흘러내리는 물소리가 얼마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지 모릅니다. 꼭 깊은 산 속 바위틈에서 졸졸 흘러내리는 물소리와 같죠. 그러나 좌복 위에 자리를 잡고 일심을 모으려하면 물소리에 신경이 거슬려 망념이 쏟아집니다. 그렇다고 애써 만들어 놓은 미니 정원을 치워 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고, 조용히 눈을 감고 하나를 봅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물소리도 물소리가 아니고 망상도 망상이 아닙니다. 그야말로 평등일미(平等一味)요,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습니다.


깊고 깊은 산속의 선방에서 장좌불와(長座不臥)를 하고, 무문관(無門關)에 빗장을 걸어 잠그고 깊은 선정(禪定)에 들었다하더라도 외경(外境)에 흔들리면 마치 그늘에 있던 버섯이 햇빛을 본 것과 같이 시들어 버리고 맙니다. 예전에 진묵 대사가 하도 술을 좋아하여 저자거리에 나가면 사람들이 술을 권하는데, 술이라고 하면 거들떠보지도 않고 지나갔으며 곡차라고 하면 기꺼이 마셨다는 얘기가 전해옵니다. 그로부터 불가에서 술을 곡차라 불렀다는 말이 생겼다고 하지요. 그 진묵일옥(震默一玉)이 경계에 끌리는지 안 끌리는지를 시험하기 위하여 술집 앞에 가도 마음이 곡차에 끌리지 않으면 일심공부가 잘되었다고 기뻐하였고, 술 생각이 나면 마음공부가 잘못 되었다 하며 한탄했다는 일화는 유명합니다. 장수가 전쟁터에 나가서 부동심(不動心)이 되지 않으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습니다. 우리 수행인들이 힘들여 기도와 좌선을 하는 것도 진묵 대사와 같이 경계에 당해서 마음이 요란하지도 않고, 어리석지도 않으며, 그르지도 않게 하기 위함일 것입니다.


그래서 일심이 되면 일원의 체성(體性)에 합하고, 진리의 위력을 얻을 수 있다고 하신 것이 아닐런지요.


필자가 겁도 없이 한울안신문에 ‘청한심성(淸寒心醒)’의 연재를 맡아놓고는 엄청난 고민을 했습니다. 많이 알지도, 크게 깨닫지도 못했으면서, 자칫 시비에 빠져들기가 십상일 것 같은 생각이 들어 두려웠습니다. 그렇다고 올라탄 호랑이 등에서 내려 올 수도 없었습니다. 내려오면 잡혀 먹힐 것이 빤한 노릇이니 내달릴 수밖에 없는 것이죠. 그로부터 ‘청한심성’외에는 일체의 글을 쓰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매일처럼 쏟아져 나오던 시를 한 편도 쓰지 못할 정도로 ‘청한심성’에 일심을 들이대었습니다. 그 결과 부족하고 설익은 글이지만 오늘에 이르러 반환점을 돌았습니다.


문제가 생기면 무조건 피하려는 것은 비겁자의 행동입니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들어가야 하듯이 더위나 추위도 정면으로 부딪쳐서 돌파를 해야 시원해지던지 훈훈해지던지 해결이 날 것입니다.




「손을 내밀면 바로 만 길도 넘는 벼랑인데/ 굳이 절대평등과 상대차별을 따져야 하나/ 옛날 유리 궁전을 밝은 달이 비추고 있으니/ 사냥개가 괜스레 섬돌 위로 오르려 하누나.」


백척간두 진일보(百尺竿頭 進一步)! 어쩔 수 없으면 뛰어내려야하지 또 무엇을 망설이겠습니까?


원불교문인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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