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청불미 , - 경청의 미혹되지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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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청불미 , - 경청의 미혹되지 않음
  • 한울안신문
  • 승인 2011.01.28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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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김덕권 교도의 청한심성

경청 화상이 어떤 수행자에게 물었습니다. “문 밖에서 들리는 소리가 무슨 소리인가?” “빗방울 소리입니다.” “중생이 전도되어 바깥의 물건만 쫓아다니는구나.” “그러면 화상께서는 무어라 말씀하시겠습니까?” “자칫하면 나도 미혹할 뻔했구나.” “자칫하면 미혹할 뻔했다니 무슨 뜻입니까?” “속박에서 벗어나기는 도리어 쉬우나 있는 그대로를 말하기는 어려우니라.”



사람들은 완전히 주객이 전도되어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신은 어디다 팽개쳐 버리고 남의 눈치나 보고 유행이나 따라하고 살기 때문입니다. 자기 주관이 약한 사람은 유행을 따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필자가 칠십 평생을 살아오는 동안 갖가지 유행이 변천되어 온 것을 보았습니다. 젊었을 때는 한 때 장발이 유행이라 한껏 머리를 기르고 다니다가 길거리에서 가위를 들이대는 경찰관들과 숨바꼭질도 했고, 양복도 투버튼, 쓰리버튼 심지어 단추가 네 개나 달린 옷도 입고 다닌 적이 있습니다. 넥타이는 어떻던가요? 때로는 넓게, 어떤 때는 아주 좁게 수도 없이 유행이 돌고 돌았습니다. 그 때마다 유행을 따르지 않을 재간이 없었죠.


옷만이 아닙니다. 어찌 그리 남의 일에 관심은 많았는지요? 분명히 법마상전급 쯤 되는 사람은 무관사(無關事)에 동하지 말라 하셨는데도 호기심이 강해서일까, 입을 조심하지 못하고 남의 일에 끼어들어 화를 자초 하는 경우가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일도 그렇습니다. 자기의 적성에 맞는 일을 하면 반드시 성공할 터인데 남의 권유로 시작하면 실패하기가 십상입니다. 그만큼 중생들은 자기 정신으로 살지 못하고 남의 정신으로 살기 때문에 항상 주객이 전도 되어 사는 것이 고생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 숱한 시행착오와 고통을 맛보고서야 이제 정신이 좀 드는 것 같습니다. 누가 뭐라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 행복합니다. 우리가 신앙을 하는 것도 다 행복해지자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하려면 자기 주관을 뚜렷이 확립하고 자기가 좋아 하는 일만 하면 됩니다. 주색잡기를 끊고 살아 온지 오래입니다. 신앙과 수행, 집필, 강연, 건강을 위한 운동, 그리고 차 마시기, 요즈음에는 필자가 이끌어가는 「원불교 문인협회」일에 몰두 하는 것이 요즘 필자의 행복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자기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어떻게 살겠습니까? 업이라고 하면 싫어도 달게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죠.


이렇게 나이 먹어서라도 행복하고 유유자적 낙도생활을 하려면 모든 집착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얼마 전에 친구들의 모임에 나갔더니 원불교의 도사가 한 마디 하라는 권유를 받았습니다. 우리가 지금 가장 시급한 일이 무엇이냐고 물어 왔습니다. “모든 집착을 끊고 마음의 자유를 얻는 일”이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나이 칠십에 도달하여서도 아직 자식, 재산, 명예에 집착하여 그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을 보면 안타깝기 짝이 없습니다. 미하지 않는다(不迷)는 뜻이 무엇입니까? 깨달은 사람은 마음이 미하지 않아서 무엇에도 홀리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옛 성인이 말씀하시기를 깨친 사람은 망치로 한 대만 때려도 성인과 범부를 초월하고 반 마디 말로도 속박을 풀어버려야 한다 했습니다. 얼음 위를 걷고 칼날 위를 달리며, 왁자지껄 시끄러운 저자 속에서도 그 가운데를 자유롭게 다닐 정도가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런 오묘한 작용은 그만두고라도 최소한 우리 공부인은 남의 유행이나 따라하고 주객이 전도된 삶은 살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주체적인 삶, 체면 때문에 이리 끌리고 저리 흔들리며, 욕심 때문에 집착에 얽매이는 그런 삶에서는 이제 해방되어야 진정한 일원인(一圓人)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경청 화상 같은 대도인도 ‘속박에서 벗어나기는 도리어 쉬우나 있는 그대로 말하기는 어렵다’ 하신 것이 아닐 런지요?



“빈집에 들리는 빗방울 소리는/ 선지식도 대답하기 어렵다네/ 만약 그 소리에 들어갔다고 한다면/ 그전처럼 모르는 것이 되고 말리라/ 아는가 모르는가./ 앞뒤 산에 세찬 비가 쏟아지는 것을.” 성인도 자칫 미혹할 수 있다는데 중생이 전도되어 바깥 물건만 쫓아다니는 것은 어쩌면 당연지사 일지도 모릅니다. 세상의 체면이란 기실 빈집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 같은 것이니까요.


원불교문인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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