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일곱살의 일기,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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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일곱살의 일기, 왜?
  • 한울안신문
  • 승인 2011.08.04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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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최영진의 why? Diary

오랜만에 비 그치고 햇빛 쏟아지던 점심시간, 나는 학교 동기와 밥을 먹으러 밖으로 나갔다. 우리는 늘 가던 가게로 들어가 순두부찌개와 제육볶음을 시켜 먹었다. 밥을 먹고 근처 커피숍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유기농 허브티를 주문한 뒤 한 시간 동안 머리를 어떻게 바꿀까, 여름인데 어떤 옷을 살까, 요즘 잘 돼 가는 사람이 있는가에 대한 잡담을 늘어놓다가 이런저런 이야기 모두 지루해질 즈음, 자리를 떠나 학교로 돌아왔다.


무슨 일기가 이렇지? 생각이 빠지면 기록만 남는다. 나는 기록한다. 고로 생각하지 않는다. 읽히지 않는 두꺼운 문학사 책을 꾸역꾸역 읽으며 문득 왜 이 좋은 방학에 이런 지루한 책이나 읽어야만 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그럼 안 되지. 오늘 있었던 일을 고스란히 기록해야 하는데 느닷없이 질문이 생기고 생각이 들어오면 이 작은 종이 바닥에 하루 일과에 대한 균등한 기록을 써내려갈 수 없다. 책을 읽다가 중간 중간 심심할 때면 인터넷 사이트를 뒤적였다. 내가 올린 글들에 사람들이 댓글을 달고 나도 사람들의 글에 댓글을 달았다. 그러다보니 몇 십 분이 훌쩍 지나갔다. 또 생각이 들어온다. 웹서핑을 하며 둥둥 떠다녔던 동안 나의 시간들은 어디로 갔을까. 나는 왜 의미 없는 이런 일들을 반복하고 있나.


하루 종일 행했던 수많은 행동과 선택들 중, ‘왜’라는 질문에 대한 정확한 대답을 안고 행했던 것이 얼마나 있을까. 처음엔 분명 어떤 치열한 목적과 동기가 있던 것들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그 목적은 희미해졌고 나는 마치 하루에 하나씩 출품되는 복제 기계처럼 습관의 행로를 밟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내 나이 27살. 충분히 인생을 겪지는 못했지만 일기장에 꼬박꼬박 하루를 기록하기에는 고루한 나이일지도. 어떤 친구들은 공부를 멈추고 직장을 가진 이도 있고, 어떤 친구들은 이미 결혼해서 아이를 가졌다. 그 많은 갈림길에서 나는 대학원생이라는 길을 선택했고 선택의 결과는 오늘의 내 하루를 만들어냈다. 꿈 많았던 20대의 날들이 반 이상 훌쩍 지나갔다. 밟히는 대로 걸어오지는 않았더라도 이제 난 그동안 생각 없이 당연하게 흘려보낸 많은 일상에게 ‘왜’라는 질문을 던져보려 한다.


왜? 나에게는 같으면서도 다른, 특별할 것 없는 일상 속에서도 신선한 새 하루가 필요하기 때문에. 삶 속에 ‘그냥’이라는 단어를 제거하면 재밌는 의미가 참 많겠다. 비록 나는 나의 이야기밖에 할 수 없지만 거듭되는 질문 속에서 글을 읽는 누군가는 자신의 이야기를, 질문을, 보편적인 하루를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대답은 각자의 몫으로 돌리고, 지금부터 수줍은 27살의 일기를 시작해 본다.



원남교당·새삶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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