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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울안신문
  • 승인 2012.02.0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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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나우와 함께하는 마인드 스터디 44

「사람 되기 어려운데 이미 되었고 / 불법 듣기 어려운데 이미 듣나니 / 이 내 몸을 이생에 제도 못하면 / 어느 생을 기다려서 제도하리요.」《성가 98장: 발분의 노래》



부모로서 자식의 건강 다음으로 바라는 것 중 하나는 아마도 자식이 ‘철드는 것’ 아닌가 합니다. 철없던 어린 자식에게서 어느덧 철이 든 모습을 볼 때 부모는 참으로 흐뭇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입장을 바꿔서 보면, 자식이 부모를 기쁘게 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길이 있겠지만, 우선은 스스로 ‘철이 드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철든다는 것은 비로소 사람답게 살기 시작했다는 말로 통합니다.


불가에서 중생과 불보살은 자식과 어버이 같은 관계입니다. 어린마음으로 그저 한때의 즐거움을 탐하면서 철없이 살아가는 중생이 자식의 모습이라면, 오온(五蘊: 마음과 물질)이 모두 공(空)함을 깨쳐서 자성(自性)의 본래모습과 재색명리의 덧없음을 일깨워주는 불보살은 곧 어버이입니다. 그래서 중생이 이 진리를 찾고 깨치고 실천하게 될 때 불보살께서는 가장 기뻐하고 흐뭇해하실 것입니다. 스스로 ‘철드는’ 것이 어버이를 기쁘게 하듯, 중생이 불법의 참뜻을 깨쳐 자신을 제도하는 것은 우리 모든 불자의 가장 큰 도리입니다.



한 해의 끝에 서서 스스로를 돌아보면, 사람은 저마다 크고 작은 감회가 없을 수가 없습니다. 돌아보면 지난 1년 동안 돈이나 재산을 모은 사람도 있겠고, 혹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이 소중한 것을 얻은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허나 그렇게 세월을 내주고 얻은 것들에 대한 올바른 평가는 아직 때가 이른지도 모릅니다. 사실 내년이나 또 내후년, 그렇게 10년, 30년 후에도 지난 세월이 아깝지 않아야 진실로 잘 산 사람일 것입니다.


가만 생각해보면 인생은 누구나 생로병사입니다. 잘 생긴 용모로 한때 남들의 부러움을 받았던 사람도, 최고 권력자로서 호의호식하며 온 나라를 마음껏 호령했던 사람도, 늙음과 병고(病苦)와 죽음엔 결국 예외가 없습니다. 지난 세월 우리가 돈, 지위, 명예를 얻느라 허식(虛飾)과 가식(假飾)으로 산 것 말고, 내 몸뚱이 아닌 ‘진정한 나’를 위해 했던 일이 무엇입니까.



올해도 크리스마스와 연말 분위기에 흥겨운 사람도 있을 테고, 한편에선 덧없이 지나버린 세월에 대해 아쉬운 눈물을 삼키는 이도 있을 것입니다. 한 해가 저물 듯 우리 인간의 삶도 결국엔 끝이 있으니, 오늘도 일희일비(一喜一悲)하며 살아가는 우리의 삶은 언젠간 가라앉을 쪽배로 한없는 바다를 무작정 노저어가는 가냘픈 중생의 모습입니다.


사람으로 태어나기 어렵다는데 이미 사람이 되었고, 불법을 만나기 어렵다는데 이미 불문(佛門)에 들어왔습니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일이란 무엇일까요. 지난 세월동안 그랬듯이, 늙고 주름져가는 이 육신 하나를 위해서, 조금 더 편하게 먹고 살다가 어느 날 먼지처럼 사라져 가는 것일까요.



「우리는 기차나 비행기 등의 출발시간에는 늦지 않기 위하여 무진 애를 쓴다. 만약 조금이라도 그 시간에 늦을 것 같으면 땀과 조바심으로 몸과 마음이 흠뻑 젖는다. 그런데 하나뿐인 자신의 인생에서 고통을 여의고 해탈을 구하는 데는 그야말로 태만하기 짝이 없다. 이는 마치 지금 마지막 열차가 떠나려 하는데, 온갖 구경에만 정신이 팔린 채 열차가 곧 떠난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리고 있는 어리석은 여행자와 무엇이 다르겠는가.」《떠나가려 하는데》



라도현(과천교당) now_su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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