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원조, 동서냉전으로 인한 현실반응
상태바
국제원조, 동서냉전으로 인한 현실반응
  • 한울안신문
  • 승인 2012.06.20 2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 한울안 칼럼 / (윤법달, 삼동인터내셔널 사무국장)


“한국은 최빈국에서 공여국으로 성장한 특별한 사례입니다”


지난 2010년 5월 제55차 유니세프국가위원회 연차 총회차 서울을 방문한 힐데 존슨 유니세프 부총재의 말이다. 그녀의 말마따나 우리나라는 1961년 OECD 출범이후 원조 수혜국에서 공여국으로 지위가 바뀐 첫 모델이 됐으며 OECD에 가입한 지 13년 만인 2009년 원조선진국 클럽이라는 DAC회원국이 되었다.


국제원조는 생소한 개념은 아니지만 우리나라 공식적으로 공여국이 됐다는 소식에 의아심을 가졌는지 모른다. ‘아직도 공여국이 아니었나?’ 하고 말이다.


국제원조가 태동하기 전에는 나도 먹고 살기 힘든데 다른 나라 살림까지 돕는다는 개념은 가당치 않았다. 잘산다는 강대국도 예외는 아니었으며 이웃나라도 네 나라처럼 사랑하라는 진리에 목숨을 건 적도 없거니와 패권을 쥐려고 안간힘을 써온 마당에 ‘가난한 나라의 자립을 도와야 한다’는 주장이 정부나 의회, 국민들에게 통할 리 없었을 것이다.


바꾸어 말하며 국제원조는 사회적인 통념과는 달이 애당초 순수한 대의 명문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었다는 얘기가 된다. 물론 개발도상국가의 개발이나 기초생활 향상을 걱정하는 것은 공여의식이 성장한 후였다.


국제원조가 태동한 계기는 역사적인 사건과 매우 관계가 깊다. 1940년대 말 유럽은 전쟁증후군(빈곤과 좌절감)으로 기존정당에 대한 불만이 누적되고 있었다. 그 결과 이탈리아와 프랑스에서는 공산당이 집권할 확률이 높아졌고 그 밖의 중,동유럽 국가들은 소비에트 블록에 하나 둘 씩 흡수되기 시작했다.


이 와중에 영국이 그리스와 터키 정부의 지원을 끊자 워싱턴은 유럽에서 점차 확대되는 소련의 기세에 불편한 심기를 감출 수 없었다. 결국 미국 정부는 그리스, 터키 원조이후 4년간 유렵의 안정과 회복을 위해 130억달러를 투입했다. 이처럼 미국은 구소련과의 냉전이 있었기에 원조라는 카드로 냉기를 식히려 했던 것이다. 한편 일본과 프랑스는 각각 제2차 세계대전의 패배와 식민정책의 결과로 원조를 잉태했다.


결국 국제원조는 동서간의 냉전이 심해짐에 따른 현실반응으로써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자기나라의 이익을 위해 군대를 배치하면서 원조는 결국 국가 간의 관계에 새로운 표준을 만들어냈다. 이는 부유한 나라들이 자신보다 어려운 나라 사람들의 생활조건을 개선시키기 위해 원조를 제공하는 의무를 가진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앞으로 국제원조는 더 많은 개인과 단체들이 더 나은 인간환경 조성이라는 관점에서 참여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자발적 관심과 함께 외교목적으로 제공되는 원조도 여전히 건재할 것이다. 강대국들의 힘의 균형과 자국발전과 안보라는 측면에서 더 많은 양의 원조를 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구속성원조나 상호주의 입각한 지원은 현실의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국가 간의 왜곡된 불평등을 유지시키는데 이용될 가능성이 높다.


그런 의미에서 국제개발 NGO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참여, 협동, 평등, 자각, 공동체성, 상생이 살아나는 원조사업에 대한 현장활동이 필요하며 종교간 연대와 협력의 자세도 요구된다고 할 수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