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에게 집착없이 예를 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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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에게 집착없이 예를 올리다
  • 한울안신문
  • 승인 2012.05.3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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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우와 함께하는 마인드 스터디 64

황벽(黃檗: ?~850) 선사가 어느 날 예불을 올리는데 대중(大中)이라는 스님(훗날 唐의 황제)이 물었다.


“‘부처에게도 집착하여 구하지 말고, 법에도 집착하여 구하지 말고, 스님들에게도 집착하여 구하지 말라’ 하였는데, 스님께선 예불을 해서 무엇을 하려고 하십니까?”


“부처님께도 집착하여 구하지 않고, 법에도 집착하여 구하지 않고, 스님들에게도 집착하여 구함이 없이, 늘 이렇게 예를 올린다네.(不著佛求 不著法求 不著衆求 常禮如是)”


대중이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뭐 하러 예를 올리시냐구요?(用禮何爲)”


순간 선사가 대중의 따귀를 올려붙였다.



한 스님이 수룡(睡龍: 唐나라 연대미상) 선사에게 말했다.


“선방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잘 지도하여 주십시오.”


선사가 입을 다물고 있으니 그 스님은 일어나 절을 하였다.


“너는 누구에게 절을 했느냐?”


“스님께 올렸습니다.”


“만약 네가 알았다면 네 자신에게 한 것이고, 몰랐다면 나에게 절을 한 것이니라.”


부처님에게 집착하지 않으면서 예를 올린다는 건 어떻게 하는 것일까요? 또, 만약 알았다면 ‘자기 자신에게’ 절한 것이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부처님 말씀하시되 「보통사람 백(百)을 공양하는 것이 착한 사람 하나를 공양함만 못하고, 착한 사람 천(千)을 공양하는 것이 오계(五戒)를 지키는 사람 하나를 공양함만 못하며, (중략) 아라한 십억(十億) 사람을 공양하는 것이 벽지불 한 분을 공양함만 못하고, 벽지불 백억(百億) 분을 공양하는 것이 부처님 한 분을 공양함만 못하며, 부처님 천억(千億) 분을 공양하는 것이 생사고락의 모든 차별법을 초월하여 닦을 것도 없고 얻을 것도 없는 자성을 깨침만 같지 못하니라.」 《사십이장경 11장, 전서 451쪽》


부처님 말씀하시되 「내 법은 함이 없는 생각을 생각하고, 함이 없는 행을 행하며, 함이 없는 말을 말하고, 함이 없는 법을 닦는 것이니, 아는 이는 곧 당처를 떠나지 아니하나 미혹한 이는 천리나 멀어지나니라. (吾法 念無念念 行無行行 言無言言 修無修修 會者近爾 迷者 遠乎)」《사십이장경 18장, 전서 454쪽》


부처님의 법을 따른다는 것은, 부처님과 그 법에 집착하여 자기를 잃는다는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내 안의 법신불인 ‘참 나’[本性]를 깨쳐서 잘 활용하자는 것입니다. 즉 내 안의 일원상(一圓相)을 천만 경계 속에서 - 생각함이 없이 생각하고, 닦음이 없이 닦고, 행함이 없이 행하며 - 늘 활용하자는 것입니다.


불법은 우리가 삶의 고통과 근심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큰 길을 보여주고 있는데, 중생은 늘 ‘마음’ 하나를 쉬지 못해서 스스로 삶의 고해 속에 들어갑니다. 집착이란 비록 부처님과 법에 집착한다 해도 나를 꽁꽁 묶어서 해탈하지 못하게 하는 것인데, 하물며 물질과 허욕(虛慾)에 빠진 집착이라면 어떻겠습니까.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는 구호를 내건지 10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우리 정신은 얼마나 개벽되었나요.



집즉공적 방즉원만 일출영생 혜월무영(執卽空寂 放卽圓滿 日出影生 慧月無影)


잡으면 텅 비어 고요하고 놓으면 두렷이 가득 찼네. 해 뜨면 그림자 나지만 반야 달은 그림자 없네.



라도현(과천교당) now_su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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