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답다, 너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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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답다, 너답다?
  • 한울안신문
  • 승인 2012.07.3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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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내가 만난 평화 , (강혜경 사)평화의친구들 사무국장)

나는 조용한 새벽 시간에 일하는 것을 좋아한다. 밤이 깊어 옆 집 강아지 코 고는 소리까지 귓가에 와 닿을 만큼 고요해지면, 하루 중 가장 맑고 평화로운 정신 상태가 되어 편안하게 일에 집중할 수 있다. 그 시간을 방해받는 것이 싫어서, 가끔 내가 잠든 줄 알고 불을 꺼주려는 좋은 마음으로 방에 들어오시는 부모님께 날카롭게 짜증을 내기도 한다. 집에서는 그런 모습이 대부분이니 부모님께 나는 ‘자기 시간 방해받기를 싫어하는 까칠한 딸’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조용한 새벽을 맞이하기 전까지, 나는 신나게 웃고 떠든다. 일로 만나든 사적으로 만나든, 중요한 얘기든 시시콜콜한 얘기든, 웃으면서 즐겁게 이야기하다보니, 밖에서 나를 만나는 사람들에게 나는 ‘유쾌하고 즐거운 사람’이다.


그래서 어쩌다 부모님께 애교를 부린다거나, 밖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우울하고 심각한 모습을 내비치면 ‘너답지 않다’는 말을 듣는다. 너답지 않다는 말을 들으면 그 사람이 무슨 의도로 그런 말을 했던지 상관없이, 일단 나의 모든 것을 부정 당한다는 기분이 든다. 그건 왠지 아주 기분 나쁜 일이어서, 다시 그 사람이 가진 나의 이미지에 맞춰가려고 현재의 나의 기분은 무시한 채 과장된 연기를 하기도 한다. 이미 오랜 시간 서로가 하나의 이미지로 단정 되어 익숙해져 있는데, 내가 내비친 또 다른 내면이 이 사람 마음에 들지 않아서 지금의 관계가 무너지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에,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진정한 나의 내면을 희생하고 타인에게 맞춰 조정하는 소모적인 일을 반복하게 된다.


여기에 나의 자존감과 존재 가치 전부를 흔들 수도 있는 함정이 숨어있다. ‘이 사람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어쩌지’ 하는 고민. 타인의 시각에 대한 의식과 고민은 함께 살아가는 사회에서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지만, 자칫하면 타인의 결정과 인정에만 지나치게 의존하게 되는 자기파괴적 행동양상을 갖게 되기도 한다. 인정받기 위해서 난 착해야만해, 재밌어야만해, 남을 도와야만해 라고 강박적인 선의 영역에 집착하게 된다거나, 사랑과 관심을 얻기 위해 아픈 사람, 슬픈 사람을 연기하기도 한다. 나의 내면을 하나씩 스스로 인정하고 온전하게 채워가면서 자신감을 얻고, 자신감이 실린 생각과 행동을 발판 삼아 오롯한 ‘나’로 서는 것이 아니라, 나를 향한 누군가의 평가와 인정을 끊임없이 갈구하면서 타인에 의해 세워지는 존재가 된다. 그런 결핍이 오래된 사람들은 겉으로 아무 이상 없이 당당하게 행동하면서도, 계속해서 나를 인정하고 기분 좋게 해줄 타인의 애정을 찾아 헤맨다.


하지만 사람의 감정은 쉽게 변하고 태도와 행동도 시시각각 달라지는 것이어서, 타인이 나에게 베푸는 관심과 사랑도 언제 변해 사라질지 모르는 불완전한 것이다. 불완전한 것에 기대 일시적인 황홀감에 젖는 것은 흡사 알콜 중독이나 약물 중독과 같아서, 타인의 사랑과 관심이 변질되면 자존감도 함께 낮아져 타인에 대한 원망, 자기비판과 학대를 일삼는 악순환의 고리에 접어들게 된다. 내면의 평화는 복잡하고 섬세한 것이어서, 큰 충격에도 별 탈 없이 버티는가 하면, 작은 균열로도 쉽게 붕괴될 수 있다. 타인에 대한 심각한 의존은 붕괴에 이르는 작은 균열이 될 수 있음을 기억하자.


누군가 나에게 너답지 않다는 말을 한다면, 나의 내면에 희로애락의 다양한 모습이 존재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나를 어느 하나의 이미지로 규정짓는 오류에서 나와 타인을 함께 건져내자. 누군가 평소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을 때, ‘너답지 않게 왜이래’ 라는 말보다 무슨 어려운 일이 있었는지 다정하게 물어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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