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불미생전 응연일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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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불미생전 응연일상원
  • 한울안신문
  • 승인 2012.10.04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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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나우와 함께하는 마인드 스터디 78

옛 부처님 나시기 전에 / 둥그런 모습 하나가 서렸더라 / 서가모니도 오히려 알지 못했거늘 / 가섭이 어찌 전할 수 있단 말인가 (古佛未生前 凝然一相圓 釋迦猶未會 迦葉豈能傳) 《慈覺선사》



과거 불법연구회 당시, 소태산 대종사께서 내놓으셨던 교리도에는 일원상 아래에 다음과 같은 글귀가 있었습니다.


一, 以上圓空은 宇宙萬有의 本源이오


二, 諸佛祖師 正傳의 心印이오


三, 淸淨法身 毘盧遮那佛이오


四, 慈覺禪師는 古佛未生前에 凝然一相圓이라 하시고


五, 慧忠國師는 形式으로써 이 圓相을 그려내서 法으로써 그 弟子에게 傳하시었다.


우리는 위 내용으로부터 대종사께서 일원상을 진리의 상징으로 정하신 연유(緣由)를 알 수 있습니다. 여기엔 선종의 조사인 자각선사와 혜충국사가 언급되어있는데, 불법연구회 당시에 일원상에 대해서 의아해하는 민중들에게 그 근거를 설명하시기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자각선사의 위 게송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은 <서가모니도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일원상을 ‘一相圓’이라 한 것은 각운(脚韻)을 맞추기 위해서임) 일원상은 곧 법신불이고 진리이며, 불교가 처음 시작된 것은 부처님께서 ‘위없는 큰 진리’[無上大道]를 깨침으로써 비롯되었는데, 서가모니께서 어떻게 일원상을 모르실 수가 있을까요.


선종의 어록인 벽암록(제69칙)에는 일원상에 관한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옵니다.


남전, 귀종, 마곡 스님이 함께 혜충국사를 예방하러 떠났는데, 도중에 남전스님이 땅에 일원상(一圓相)을 그려놓고 말하였다.


“말할 수 있다면 가겠네.”


귀종스님이 일원상 가운데 앉았다.


마곡스님은 여인처럼 다소곳이 절을 하였다.


남전스님이 말하였다.


“그렇다면 나는 안 가겠네.”


귀종스님이 말하였다.


“이 무슨 수작이야!”


위에 나온 세 스님은 중국 선종의 유명한 조사스님들입니다. 그런데 저 스님들의 말과 행동은 도대체 무슨 뜻일까요.


이 같은 조사들의 언행으로써 일원상의 참 뜻을 얻지 못했다면, 이 이야기의 앞에 붙어있는 원오 스님의 말을 들어보면 도움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물어뜯을 수도, 쪼을 수도 없는 조사(祖師)의 마음도장[心印]은 마치 무쇠소[鐵牛]와 같다. 가시덤불을 뚫고 나온 납승(衲僧)은 붉은 화로에 떨어진 한 점의 눈[雪]처럼 흔적을 남기지 않으면서 평지 위를 종횡무진으로 다닌다. 그 어떤 말이나 방편에도 떨어지지 않으려면 대체 어떻게 해야만 할까. (無ꠙ ꠓ啄處祖師心印 狀似鐵牛之機. 透荊棘林衲僧家 如紅爐上一點雪 平地上七穿八穴則且止. 不落ꠙ ꠗ緣 又作ꠙ ꠙ生.)」


언제든 “아!”하고 화두를 깨뜨리는 순간이 온다면, 그 때는 또한 자기의 본래마음을 깨치는 순간입니다. 그런 뒤에는 ‘일원상과 같이 원만구족하고 지공무사하게’ 이미 갖춰져 있는 자기의 그 마음[본성]을 한결같이 지키고 쓰는 공부가 남은 것입니다.


화두를 잘 드는 것은 깨침을 위해서 아주 중요한데, 본시 화두란 풀어서 옳게 설명해 준다는 자체가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에, 수행인이 화두를 해설한 책을 보는 것은 실상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이치가 끊어진 화두를 이치로 풀어놓은 책들은, 사람의 망상분별을 끊어주는 게 아니라 되레 더 부추기기 때문입니다.


예로부터 화두를 드는 법은 복잡하지 않습니다. 모든 생각과 이치가 ‘완전히’ 끊어져서 끝없이 막막한 곳에 이를 때까지 ‘간절하고 또 간절하게’ 의심하는 것입니다. 이 길이 옛 조사들이 갔던 길이며, 깨침에 이르는 중요한 경로입니다.


라도현(과천교당) now_su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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