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시마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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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 사람들"
  • 한울안신문
  • 승인 2012.10.26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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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태양과 바람의 나라를 꿈꾸다 2 / 김복녀 , (에너지정의행동 국제연대)

후쿠시마 원전난민이라 불리는 사람이 지금도 십몇만명 이랍니다.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이 느끼는 절망감은 어느 정도일지 저는 상상할 수 조차 없습니다만, 후쿠시마 사람의 편지를 통해 조금은 느낄 수 있습니다. 마음을 헤아린다는 게 어줍잖게 느껴져서 이 분들의 목소리를 번역해 전합니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들 예비 ‘후쿠시마 사람들’일지 모릅니다.



원전난민 목소리-기다 세츠코(木田節子) (후쿠시마 난민·58세·여)


우리 후쿠시마현 사람들은 어느 날 느닷없이, 얼마 안 되는 소지품만 들고 잘 살던 땅에서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1년 반이 지나고, 세상 사람들한테서 관심은 멀어지고, 믿을 수 없지만, 후쿠시마원전은 수습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한 인터뷰에서 젊은이가 “불쌍하다고는 생각하지만, 이제 그런 얘기는 듣고 싶지 않다”는 목소리에 할 말을 잃습니다.  


3개월에 한 번 일시 귀가하는 날 보게 되는 것은, 사람 키만큼 자란 풀들에 점령당한 논밭, 유리는 깨지고 상품을 약탈당한 편의점, 걷는 이 하나 없는 길에는 말라서 늘어진 가죽을 한 소들의 무리.


집에 들어서면, 곰팡이 투성이 마루에 냉장고 속에는 음식은 상한 냄새… 소파에 앉아 예전에는 가족끼리 지내던 일상을 떠올리며, 그런 생활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는 현실을 깨닫습니다. 달력은 작년 3월 것 그대로이며, 지진재해 당일 날짜에는 아들 글씨로 ‘과장송별회’라고 적혀 있습니다.


여진으로 무너진 가구나 짐을 정리하며 “또 올께”라며 내 집에 말을 건네고, 잠시 머문 동안의 피폭선량을 재는 기계가 있는 곳으로 갑니다.


살던 장소에서 쫓겨난 우리는 약간의 손해배상과 일정 기간 동안의 급료 보상을 받는데, “원전난민은 돈을 받을 수 있어 좋겠네” 라는 말을 듣게 되거나, 임시 주택이나 세들어 사는 사람들이 낮부터 술을 먹고 있다거나, 빠찡코에는 원전난민 차 밖에 안 보인다고 수근대는 소리도 듣습니다.


원전에서 일하던 사람들은 도쿄전력이나 국가의 뒤처리를 위해, 수습작업이나 제염하는 일을 하면서 코피를 쏟거나 혈뇨를 누는데, “우리가 안 하면 누가 할거야” 라며 계속 피폭당하고 있습니다. 젊은 여성도 저선량의 오염물 처리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곳에 자기 자식을 보내는 엄마들은 “마치 제2차 세계대전 말기 특공대에 자식을 보내는 어미 심정”이라고 중얼거리기도 한답니다.


교부금을 받고, 원전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거기 사는 사람이 책임까지도 져야하는 것인가요? 재난지역에 보내는 동정심은 점점 옅어지고, 언론도 진실을 내보내지 않고, 현당국은 오염된 토지로 돌아가게 하려는 국가의 지시를 따르고, 게다가 폭발을 면한 재해지에 있는 후쿠시마 제2원전을 가동하려는 도쿄전력 움직임을 알면서도 항의조차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핵발전소가 있는 지역에 무슨 일이 일어났을 때 모습을 떠올려 봅니다. 고뇌를 상상할 수 있습니다. 황폐해지는 모습이 보입니다. 현과 국가는 절대로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부디 제2의 후쿠시마는 되지 않도록 해주세요.


후쿠시마원전 수습에 40년이 걸린다고 합니다. 날마다 피폭당하면서 작업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은, 이제 4년이면 피폭선량 한도가 넘쳐버린다고 합니다. 전국의 핵발전소가 점점 재가동되게 된다면, 누가 그 일을 하게 될까요? 원전난민이 되어버린 사람이 미토시에서 띄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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