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가식서가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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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가식서가숙
  • 한울안신문
  • 승인 2012.12.13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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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나우와 함께하는 마인드 스터디 92

제(齊)나라에 한 처녀가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동쪽 마을과 서쪽 마을에서 한꺼번에 청혼이 들어왔다. 그런데 동쪽 마을의 젊은이는 못생긴 추남인 반면에 집안이 아주 부유했고, 서쪽 마을의 젊은이는 머리도 좋고 잘생겼지만 집안이 가난했다. 이 두 혼처 가운데 어느 쪽을 택해야 할지 결정을 내릴 수가 없어서 아버지가 딸을 불러서 물었다.


“보다시피 한쪽은 재산이 많으나 인물이 못하고, 다른 쪽은 인물은 좋으나 가난해서 네가 시집가면 고생이 많을 듯싶구나. 아무리 생각해도 쉽게 결정하지 못하겠으니 당사자인 네가 선택하는 게 좋겠다. 어떻게 하겠느냐?”


그런데 처녀는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이 없었다. 보다 못해 어머니가 나서서 말했다.


“네 입으로 말하기가 부끄러운 게로구나. 그럼 동쪽 집에 시집가고 싶으면 오른쪽 소매를 걷고, 서쪽 집에 시집가고 싶으면 왼쪽 소매를 걷으렴.”


그러자 딸은 거침없이 양쪽 소매를 다 걷어 올리는 게 아닌가. 눈이 휘둥그레진 부모가 그 까닭을 묻자, 처녀가 이렇게 대답했다.


“밥은 동쪽 집에서 먹고, 잠은 서쪽 집에서 자고 싶어요.(欲東家食西家宿)”



사람이 자기 욕심껏 좋은 것만 다 갖기는 어렵다는 이야기입니다. 모든 사물에는 양면성이 있어서 어느 모로든지 다 좋은 면만 갖추고 있는 것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세상에 좋은 것을 다 가져다줄 것처럼 말하는 것에 솔깃합니다. 요즘 선거철입니다.


영업이익을 많이 내고 부동산을 많이 가진 부자들에게 더 많은 세금을 걷지 않고도 집 없는 서민, 힘없는 농민과 영세상인들, 가난한 환자들과 같은 사회적 약자들이 행복한 사회를 만들겠다고 합니다. 자유경쟁으로 기업의 경쟁력을 극대화시켜 세계적인 선진경제로 발전시키려면 자본과 기술이 취약한 기업은 도태되는데, 한편으론 빈민층과 자립능력 없는 노인과 환자에게는 복지혜택을 늘리겠다고 합니다. 경제발전을 위한 무한경쟁 속에서 약자의 생존권이 보호받을 수 있을까요. 자유시장경제와 사회적 약자보호는 그래서 서로 모순입니다.


이러한 자기모순은 종교인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로부터 존경과 신뢰를 받으면서 물질적 풍요도 누리고, 그런 가운데서 자유와 해탈을 얻을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심신의 안락과 편리를 좇아 사물에 대한 집착이 커질수록 속박도 늘어나서 마음의 자유를 얻을 길은 더욱더 멀어지는 것이지요.


배가 고파야 밥이 맛나고, 몸이 피곤해야 잠을 달게 잘 수 있습니다. 몸에 병이 나서야 건강의 고마움을 알고, 추위와 굶주림을 겪은 뒤에야 의식주(衣食住)의 고마움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물의 좋은 면만을 취해서 다 갖겠다는 것은 어리석은 욕심이며 이루어질 수 없는 소망입니다.


물질이 풍요해질수록 물질에 대한 집착에서 헤어나기가 더 어렵고, 아름다우면서 교만하지 않기가 어려우며, 재주 많은 사람이 겸손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리고 심신이 편할수록 진리를 찾기가 어렵고, 자잘한 지식이 많고 지위가 높아질수록 (분별과 아상으로) 도를 깨치기가 어렵지요. 그러기에 부족함 속에서 편안함을 구하고 현실의 속박에서 해탈을 이루는 것이 불도(佛道)입니다.



라도현(과천교당) now_su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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