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생력과 자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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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생력과 자비행
  • 한울안신문
  • 승인 2013.02.0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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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벤쿠버 마음일기 / 김성순 ,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대학교 포트스 닥, 서울교당)

이곳 벤쿠버는 잘 보존되어 있는 자연환경 덕분인지 주변에 자생하고 있는 야생동물이 무척 많다. 이곳 UBC 안에도 청설모 등을 비롯한 각종 다람쥐 종류들, 라쿤(너구리), 코요테 등이 심심찮게 눈에 띈다. 특히 다람쥐들은 워낙에 그 수가 많아 심지어 기숙사 주변 뜰에서도 그야말로 쥐가 풀방구리 드나들듯 돌아다니는 모습을 볼 수가 있다. 심지어 기숙사 안벽에 창문을 열어놓으면 다람쥐들이 방으로 들어와 음식을 훔치는 수가 있으니 외출 시에는 꼭 창문을 닫으라는 경고문이 붙어 있을 정도이다. 이는 음식을 아끼는 차원 보다는 야생동물이 옮길 수 있는 각종 병원균이나 바이러스 때문일 것으로 생각한다.


다람쥐 외에도 기숙사에서 가끔 마주치는 야생동물이 바로 라쿤이다. 라쿤들은 야행성이라서 주로 밤에만 움직이기 때문에 낮에는 눈에 잘 띄지 않으며, 주로 음식 쓰레기통 근처에서 얼쩡댄다. 며칠 전에는 UBC에 방문학자로 와 계시는 선생님 댁 1층 주방에 들어와서 음식 좀 달라고 애원하는 눈빛으로 쳐다보는 것을 어렵게 밀어냈다는 얘기도 들었다. 안쓰럽게 여겨서 음식을 한 번이라도 주게 되면 계속 찾아온다는 경고문이 생각나서 눈 질끈 감고 내보냈다는 것이다.


태평양 해안에 위치한 학교라 그런지, 학교 안에서 배회하는 갈매기들도 무척 많다. 매점 주변에서 햄버거 등을 먹고 있는 학생들 앞에 버티고서 한 입 줄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이 갈매기들의 생존방식이다. 계속 버티고 있어도 학생들이 안주면 갈매기들은 가끔 끼룩대면서 시위를 하기도 한다. 가만 지켜보니, 안 주는 학생들과 한 입 떼어주는 학생들이 반반이다. 한 학생은 먹는 것을 지켜보는 갈매기들을 모른 채 하는 게 힘들긴 하지만 한 번 주면 계속 이런 방식으로 생존하려 할 테니 안 주는 게 낫다고 강변하기도 했다.


안쓰러운 마음에, 혹은 귀여워서 먹을 것을 떼어주다 보면 결국에는 야생동물들의 자생력을 없애게 될 것이라는 생각에 근본적으로 동의한다. 인간과 야생동물들은 근본적으로 이 지구의 자원을 공유하는 권리 측면에서는 동등하지만 생존방식에 있어서는 독립적이어야 하지 않을까.


야생동물들은 오랜 세월동안 체득해 온 그들만의 생존방식이 셋팅 되어 있을 텐데, 인간들의 가벼운 자비심 혹은 연민이 그들의 미래를 망치게 될 수도 있다. 나아가 자비행이라는 명목으로 저수지 등에 방생의식 때 풀어 넣은 외래종 물고기들이 수중 생태계를 교란시키는 부작용 역시 숱하게 발견되지 않는가.


인간들이 야생동물을 보호해야 한다는 것은 그들에게 필요한 먹이와 주거지를 제공한다는 것이 아니라, 이제껏 그 야생동물들이 생존해왔던 방식을 훼손시키지 않는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제까지는 그들은 그들 방식대로 당당하게 이 지구의 자원을 공유하며 살아왔다. 앞으로도 그럴 수 있도록, 야생동물답게 야성을 지키며 각자의 영역에서 자존(自存)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게 진정한 보호이자, 자비행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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