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농부,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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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농부, 행복
  • 한울안신문
  • 승인 2013.03.29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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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알콩달콩 생명이야기 / 맹주형 , (천주교 서울대교구 환경사목위원회 교육기획실장)

며칠 전 천주교 농부학교 학생들과 경기도 고양시에 있는 농부학교 실습농장에서 밭 정리를 했습니다. 천주교 농부학교는 천주교에서 운영하는 귀농학교로 올해로 8년째 열리고 있습니다. 하느님이 창조하신 자연 속에서 생명 농사일을 통해 소농(小農)과 가족농(家族農)의 삶을 살며 단순하고 소박한 삶을 살고자 하는 생각과 뜻을 가진 이들이 입학하는 귀농학교입니다.


봄날의 따사로움이 느껴지는 토요일, 농부학교 학생들은 지난 겨우내 방치되었던 농장에서 비닐이며 쓰레기며 지지대를 치우고, 돌도 나르며 밭을 정리했습니다. 지난해까지는 두물머리에서 농사실습을 하다가 올해 처음으로 마련된 새로운 곳에서의 첫 농사 기대에 부풀어서인지 모두가 열심히 일합니다. 특히 밭 한가운데 떡하니 자리잡고 있던 쉼터로 사용되던 큰 구조물을 치우지 못해 기계를 써야 하나 고민했었는데, 이날 농부학교 학생들 모두 함께 들어 옆으로 옮겨놓으니 정말이지 속이 시원했습니다. 이마에 송글송글 땀이 맺히고 제법 힘도 들었을 텐데 오랜만에 땀 흘려 일하니 좋다 합니다. 또 서로가 힘을 합쳐 옮기고 나니 공동체의 힘을 새삼 느낀다며 뿌듯해 합니다. 사실 저는 밭 정리를 시작하며 불만이라도 나오면 어쩔까 싶어 내심 조심스러웠는데, 모두가 쓸데없는 걱정이었습니다.


이날 농부학교 학생들은 도시락을 함께 나눠 먹고 막걸리도 마시며 유토피아의 모습을 느꼈습니다. 서양의 ‘유토피아’를 뜻하는 동양의 말은 ‘이상향’인데, 이 말은 한 천막 아래서 같이 밥을 나눠먹는 모습이라고 합니다. 다시 말해 식구(食口) 같은 삶을 사는 것이 바로 이상향이자, 유토피아의 모습 인거죠. 얼마 전 농부학교에서 새만금과 4대강 사업 등 난개발 사업에 반대해온 김정욱 서울대 명예교수님이 강의하시며, 이런 유토피아의 모습을 가진 나라가 ‘부탄’이라고 소개해주셨습니다.


부탄은 국민들의 ‘행복지수(GNH : Gross National Happiness)’가 가장 높은 나라입니다. 부탄은 건강과 생태계 보존과 전통문화 교육을 가장 우선으로 삼고, 국토의 60% 이상을 산림으로 유지하도록 애쓰는 나라입니다. 한마디로 식구들이 함께 살아가는 농적(農的) 가치와 공동체가 유지되는 나라입니다. 그래서 국민들이 행복한 거죠.


거꾸로 우리나라는 행복지수 순위가 102위 랍니다. 교수님은 강의 시간에 우리나라 중산층의 행복 기준은 ‘아파트 30평, 월급 500만원, 중형차 소유, 예금 잔고 1억 원, 매년 해외여행’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정도 가져줘야 행복하다고 느끼는 겁니다. 그런데 행복의 조건 모두가 돈입니다. 돈! 돈이 없으면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하니, 행복지수가 꼴찌수준입니다. 부탄은 국민소득이 2천 달러에 못 미치고, TV도 90년대에나 보급되었지만 우리보다 더 행복합니다. 농업과 생태계와 공동체에서 느끼는 행복이 있기 때문입니다. 봄볕 따스한 농부학교 농장에서 비록 땀 흘리고 몸은 고되었지만 우린 잠시나마 행복했습니다. 돈이 없어도 행복한 삶의 방식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땅에 깃들어 사는 수고로운 행복을 느끼기 위해 우리는 ‘농부’가 되려 합니다. 진짜 행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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