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북이 같은 꾸준함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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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이 같은 꾸준함으로
  • 한울안신문
  • 승인 2013.12.19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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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요즘 청년 / 우인범 , (원불교전국대학생연합회 35대회장)

올해 초 신년법문 실천기사를 썼다. ‘복덕성을 찾아 모으는 노력을 할 것이다.’라고 다짐했었다. 올 한해 얼마나 복덕을 쌓았느냐 하고 반조해본다면 일원상을 보면서 방긋 웃을 뿐이다. 우리 주위엔 어마어마한 복덕을 쌓고 계시는 교당의 주인분들이 계신다. 바로 교당에 회장님들이다.


나는 올 한해 원불교 전국 대학생 연합회 회장으로 활동했다. 매행사마다 수많은 대학교 교우회 회장들과 교화의 어려움에 대해서 이야기를 듣고 아픔을 나누면서 회장들에게 항상 위로해 주지만 진짜 원대연 회장으로서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는 것 같아서 항상 가슴이 아팠다.


자주 바뀌시는 교무님들에 적응 하느라 시간이 오래 걸리고 새롭게 오는 교도보다 기존의 교도들이 더 안 나올 때 속상한 마음. “힘들 때 일수록 정법에 기대야 된다. 그 정법에 기대는 방법은 종법사님을 대신해서 오신, 대종사님을 대신해서 오신 교무님들과의 끝없는 문답감정이다.”라고 말은 하지만 친하지 않은 교무님들께 선뜻 문답감정을 하는건 다들 어려워한다. 그럴 때일수록 26세에 대종사님이 원대연 회장이라면 이 일을 어떻게 해결하셨을까 의두를 자주 들었다. 그리고 가만히 내 마음 바라보았다. 왜 다들 힘들까? 난 왜 힘든 걸까? 바로 ‘교화’라는 놈이 우리들을 힘들게 하는구나. 그럼 그놈이 무엇일까? 하고 궁글리다가 원불교 용어사전을 보았다.


‘원불교의 교법으로 사람을 가르쳐서 훌륭한 인격자가 되도록 인도하는 것’ 그렇다! 대종사님께서 수많은 단어 중에 왜 교화라는 단어를 사용하신지 알 것 같았다.


교화란 이웃종교의 복음, 포교, 선교와는 다르게 법회를 오거나 입교를 시키는 것이 전부가 아닌 그 사람이 있는 그 자리에서 원불교의 교법대로 잘 가르치고 잘 가르침받게 되어 주위 인연들을 화합적으로 돌리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교화가 경계의 대상에서 공부의 대상이 되니 한결 편해졌다.


비단 대학생 교화뿐만이 아니라 청년교화 일반교당 교화도 어렵다. 지금 50명 교도가 500명이 된다고 해서 행복해지는 건 결코 아니다. 오히려 500명을 수용할 능력이 없다면 500명이 되는 것이 더 불행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대종사님은 원기100년을 바라보시면서 이 회상을 여신 게 아니다. 5만 년의 결복대운을 바라보시고 여셨다. 그리고 대종사님이 원대연 회장으로 계신다면 이런 말을 자주 하셨을 것 같다. “우리는 우리의 일을 하자. 행복을 멀리에서 찾지 말자.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닌 지금 마음쓰는 그 자리에 있다. 자력을 기르자. 내 마음에 참 주인이 되자.”라고


끝으로 나는 수많은 회장님들에게 교리도에 나오는 바다거북을 닮자고 말씀드리고 싶다. 여유로울 자리에선 한없이 여유롭고 날쌔야 할 자리에서는 한없이 날쌘 바다거북이를 닮읍시다. 어눌한 듯 보이지만 속은 지혜로 가득찬, 역사를 품은 바다거북이처럼 5만 년 동안 꾸준히 오래갑시다. 그리고 다같이 힘 냅시다. 우리에겐 창생을 제도할 책임이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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