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요'의 배우고, 가르치는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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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요'의 배우고, 가르치는 의미
  • 한울안신문
  • 승인 2014.01.28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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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길튼 교무의 정전산책 16

사요의 지자본위와 타자녀교육은 일상수행의 요법의 “배울 줄 모르는 사람을 잘 배우는 사람으로 돌리자”, “가르칠 줄 모르는 사람을 잘 가르치는 사람으로 돌리자”라는 실천조목으로 수행하며, 사요는 사은의 사회적 변주이기 때문에 사요의 대상은 불공의 대상입니다.


사요의 배우는 자와 가르치는 자의 관계는 언어게임의 규칙이 다른 둘 사이의 대화입니다. 그래서 상대가 던지는 기호를 해석하고 해독을 해야 합니다. 명령의 가르침과 복종의 배움이 아닌 설득과 이해, 감화와 공감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배우고-가르치는 존재는 상호 대체불가능하며 바꿀 수 없는 고유성을 지닌 타자(他者)로서, 서로 의지하고 불공하는 은혜의 관계입니다.


배우고-가르치는 관계는 표면적으로는 익숙해져서(규칙공유) 혹여 식상해 할 수 있으나 근본적으로 다 파악할 수 없는 심연(深淵)입니다.


가르치는 자가 손을 내밀었을 때 배우는 자가 잡아주어야 악수가 가능하고, 가르치는 자가 손을 내밀어야 배우는 자는 그 손을 잡을 수 있는 기회가 생기는 것입니다. 이처럼 배우고 가르치는 관계는 서로 복전이 되는 불공의 대상입니다.(요훈품 43장)



가르친다는 의미


가르치는 입장에 선다는 것은 상대의 타자성을 전제하는 일입니다. 교육받는 대상은 교육자에 의해 통제되고 조정되는 존재만이 아니라 나와는 다른 존재로, 잘 인도하여야 할 불공의 대상입니다.


교육은 기성세대가 편하고자 후진을 길들이는 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교육의 본의는 인간과 인간의 교류인 것입니다. 표면적으로는 교육하는 자와 교육받는 자의 구별이 있으나 심연에서는 인간과 인간의 심장이 만나는 감동입니다. 휴머니티의 교감이요 인도상요법의 교류입니다.


가르치는 것은 가리키는 안내입니다. 산을 오를 때 길잡이가 길을 안내하듯이 관광을 할 때 관광가이드가 안내하듯이, 교육은 후진을 낙원으로 안내하는 것입니다. 이런 교육에 의해 세상문명이 촉진되어 일체동포가 낙원의 생활을 하게 됩니다.(『정전』 사요의 타자녀 교육의 강령)


가르치는 타자녀 교육은 후진을 강제하는 것이 아닙니다. 목자와 양의 관계처럼 시혜적이고 종적인 한 방향의 관계만은 아닙니다. 공익을 위해서 공심으로 인도하여 기르는 모심입니다. 교육은 이처럼 공심으로 인도하는 봉공의 신앙입니다. 타자녀 교육은 이런 모심이기 때문에 「교리도」에서 인과보은의 신앙문에 배치되는 것입니다.



배운다는 의미


배우는 것도 가르치는 선생님이 나와 다른 타자이기 때문에 배우는 것입니다. 나와 다르지 않고 나의 연장이라면 선생님이라는 타자는 나의 수단만 됩니다. 나의 확장을 위해서 이용하는 것입니다. 타인을 수단으로만이 아니라 목적으로 대하자는 것입니다.(칸트) 그러나 수단으로만 대하면 상대는 나의 도구가 됩니다. 상대를 자유로운 주체로 나와 다른 존재로 여겨야 하기 때문입니다. 지자(智者)로 모신다는 것은 나와는 다른 심연으로 나에게 없는 선물을 주는 존재입니다.


이와같이 가르치고-배우는 관계는 감응을 주고받는 타자로서 비대칭적인 관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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