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방향에 대한 나의 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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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 방향에 대한 나의 견해
  • 한울안신문
  • 승인 2014.03.13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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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기고 / 권대경 교도 , (송천교당)

교화 대불공, 자신성업 봉찬, 우리는 반드시 해내야 합니다. 대종사님께서는 내가 먼저 경험해 보고나서 내놓으셨다 하셨습니다. 팔만대장경을 줄이고, 또 줄이고, 정전을 또 줄여서 ○(일원상)을 주시며 ‘내법이 대법이다. 전무후무한 법이다. 수수만년 흘러갈 대도이니라.’ 하셨지 않습니까. 이 공부는 손바닥 뒤집기보다 쉽다, 밥 먹기보다 쉽다. 대종사님께서 우리를 속이려고 하신 말씀이겠습니까. 그러나 믿는 분이 아주 적은 것 같습니다. 교당 내왕시 주의사항으로 공부하라, 이 자리를 관조로써 깨쳐 얻으라 하셨습니다. 정전을 바탕해 풀어야 한다고 봅니다. 대종사님께서는 훈련법을 주셨습니다. 훈련이란 능이 날 때 까지 반복하는 것을 훈련이라 할 것입니다. 무엇을 많이 배우고, 읽고 아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도학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다는 것입니다. 각자의 체험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먼저 눈이 보는 것이 아니고, 귀가 듣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체험을 통해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지금 보고 있고, 듣고 있는데 눈이 보고, 귀가 듣지 못한다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을 것입니다. ‘공적영지(空寂靈知, 펜인 줄도 알고, 시계인 줄도 알고, 이 말을 알아들을 줄도 아는 이것)’을 내 몸 안에서 찾아보는 것이(觀照) 우리 공부의 처음이고 끝인 것입니다. 우리의 전서(全書)를 머리로 아는 것은 우리가 경계의 대상으로 보면 될 것 입니다.


삼십계문이나 삼독심을 없애려는 그것이 도둑인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관조 훈련을 꾸준히 하게 되면 스스로 삼독심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누가 원불교가 무엇이냐고 묻는 다면 말이 필요 없이 “○(일원상)이다.” 원불교는 무엇을 믿느냐고 물으면 “○이다.” 원불교가 무엇을 가르치느냐 묻는다면 “○을 배운다.” 볼 줄도 알고, 들을 줄도 아는 이것을 관조하여 확인을 했다면 ○을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은 우리의 마음이기 때문에 삼학 공부는 ○을 알고, ○을 양성하고, ○을 취해 쓰는 것을 삼학공부라 합니다. ○을 알아 양성을 하게 되면 요란하지도 않고, 어리석지도 않아서 그르지 않는 법입니다. 바로 그때에 망아진아현(忘我眞我現), 유위위무위(有爲爲無爲)의 삶이 될 것입니다. 참 ‘나’ 가 나타나야 법문을 들을 수 있고, 보게 되어 의두요목이 보이고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대종사님을 거짓말쟁이를 만들어서야 되겠습니까? 관조, 찾아보는 재미를 붙이면, 여유로워지고, 넉넉해지고, 떳떳하고 무엇에 걸리는 바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마음이 부처고 성품이 법인 것을 확인하자 하셨는데, 확인의 방법 중에는 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일 것입니다.


보이는 것마다 의심거리가 아닌 것이 없습니다. 목욕탕에 가서 보면 수도꼭지를 튼 채 때를 밀고 있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 사람을 보면 어디서 태어나 어떻게 살 것인가? 의심덩어리 아니겠습니까? 들어서 아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고, 관조해서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눈이 보고, 귀가 듣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이 육신은 거짓 ‘나’ 인줄을 아는 것이 사실적 도덕의 훈련이 아니겠습니까? 또한 불생불멸(不生不滅)의 이치와 인과보응(因果報應) 되는 이치를 알고 실행하는 것 역시 사실적 도덕의 훈련이 아니겠습니까? ‘이것이 진리고, 사실적 도덕의 훈련이구나’라는 자신을 갖아야 하는데, 머리로 아는 공부만 하게 되어 이 법이 전해지지 못하고 재미없는 법회가 되는 줄을 모르는 것 같아 한마디를 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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