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작본능 부활하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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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작본능 부활하다 1
  • 한울안신문
  • 승인 2014.04.26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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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햇쌀 도시농부학교 학습기 / 강법인 , (서울교당)



법당 문을 열자 가장 먼저 내 눈을 사로잡은 것은 푸릇푸릇한 상추와 싹이 난 감자였다. 야채가게에서 보았다면 눈살을 찌푸렸을 감자 싹마저도 ‘햇쌀 도시농부학교’에서 만나니 깜찍하고 예쁘게 보인다. 봄에 어울리는 즉석 피아노 연주곡을 배경으로 상추와 감자와 많은 씨앗들을 바라보고 있으니 더불어 내 마음에도 두근두근 싱그러운 기대감이 싹튼다.


개회식과 함께 ‘햇쌀 도시농부학교’ 1기의 원만한 성공과 행복한 도시농부가 되기를 기원하는 기도문에 나도 간절한 마음을 살짝 얹어본다. 이어 도시농부학교의 교장 선생님이신 최서연 교무님의 개회사를 통해 도시농부학교의 시작에는 많은 분들의 염원이 함께했고 몇 년 전부터 준비되어 왔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부득이 불참하게 된 언니(강법진 교무)의 대리출석으로 우연히 참석했다. 이 소중한 새 출발의 공간에 내 발자국을 남길 수 있게 된 인연이 한없이 감사하게 느껴졌다.


하도 소란스러워 ‘소란’이라 이름 했다는 소란님의 친절한 일정 소개와 설명이 있고, 다음으로 ‘씨 나눔’ 시간이 돌아왔다. 순간 왁자지껄해졌다. 씨의 이름과 특징, 파종과 수확 시기가 적힌 작은 봉지에 담긴 씨를 바라보는 우리의 눈빛은 마치 다이아몬드라도 발견한 듯 반짝반짝 빛났다. 우리는 그중에서 올해 정성들여 심고 가꾸고 수확해서 다음 기수에게 수확한 토종씨를 넘겨줄 자기 인연 씨앗을 신중하게 골라야 했다. 그때 맞은편에 앉으신 분이 “어떤 게 잘 안 죽어요?”라고 물었다. 내가 꽃집에 가서 화분을 고를 때마다 묻는 말이고 지금도 목까지 올라왔지만 꾹꾹 눌러 내리고 있던 말이다. 다행히 다 잘 안 죽는다고는 하신다. 하지만 몇 해 전 같은 봉지의 상추 씨, 치커리 씨 등을 언니와 반씩 나눠서 키웠던 것이 생각나 나는 선뜻 고르기가 망설여졌다. 언니는 모든 종류의 씨를 잘 키워 새싹 비빔밥을 먹었고, 나의 씨들은 땅에 묻힌 그대로 영면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다행히 이 씨와 인연을 맺을 사람은 재주도 정성도 없는 내가 아니라 언니라는 것을 위안으로 삼으며 ‘앉은뱅이 밀’과 ‘검은 동부’를 집어 들었다. 내심 딴 계산도 없지 않았다. ‘밀은 수업 기간과 파종시기가 다르니까 어차피 결과물은 아무도 모를 것이고, 검은 동부는 엄마도 올해 심는다고 했으니까 수업시간에 배우며, 엄마한테 물어가며 하면 되겠지. 정 안되면 마지막에 엄마한테 좀 달라고 하면 되지 뭐.’ 내 마음을 들여다보기라도 한 듯 내년에 2기에게 물려줄 종자를 못 내면 패널티가 있단다. 이미 물릴 수는 없으니 뒷일은 언니에게 맡기는 수밖에 없겠다. 나는 그렇게 언니와 검은 동부를 맺어 주었고 인증사진도 찍었다. 인증사진 속 내 머릿속에는 노들 텃밭에 주렁주렁 열린 검은 동부와 김이 모락모락, 윤기 나는 검은콩 밥이 담겨졌다.


우리가 왁자지껄 씨를 고르고 인증사진을 찍는 것을 묵묵히 보고 계시던 귀농운동본부 전 위원장이신 정용수 선생님께서 빨리 하라고 재촉하신다. 보통 세 시간 정도 강연을 하셔야 하는데 시간을 많이 뺏기셨단다. 그래도 원하면 첫차 타고 귀가할 수 있게 해 주겠다며 운을 떼시며 황금 같은 두 시간 동안의 강연을 시작하셨다. 귀농운동을 오랫동안 해 오셨던 만큼 거시적으로 또 미시적으로, 이론적으로 또 현실적으로 많은 이야기를 즐겁게 들려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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