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산시대 공동체 명칭은 방언조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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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시대 공동체 명칭은 방언조합이다
  • 한울안신문
  • 승인 2014.04.26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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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대종경 톱아보기 5 / 박용덕 교무 , (군북교당)

# 저축조합은 상조조합부의 또 다른


명칭에 불과할 뿐


「대종경」 서품 7장에 “대종사 회상 창립의 준비로 저축조합을 설시하였다.”고 서술했다. 결론부터 말해서 저축조합은 불법연구회 설립 당시 7부서 중의 하나인 상조조합부의 또 다른 이름이지 영산시대의 공동체 명칭은 아니다. 지금까지 교단은 원기 원년부터 4년까지 영광 길룡리에서의 소태산의 회상을 통상 ‘저축조합 시대’라 일컬어왔다. 실제 일제강점기에 공식적으로 한 번도 저축조합이라는 단체명을 써본 적이 없었다. 원기12년에 간행된 「불법연구회규약」의 ‘본회의 유래’에서는 대정 5년도(원기 원년)에 불법연구회기성조합이 시작되었음을 공식화했다.


“본회(本會)의 유래(由來)는 조선전남영광군백수면 길룡리에 거주하시는 박중빈(朴重彬) 선생께서 불법의 진리를 연구……(중략)…… 또는 대정 5년도에 불법연구회기성조합을 설치하시니 동지난 8,9인이요 저축금은 7,8천 원이라 매일 조합원이 중빈선생의 지휘를 받어 낮에는 토지를 개척하야 생활에 근원을 찾고 밤이 되면 불법의 질리(質理)를 연구하야 지식의 근원을 삼음으로(하략)”


대종사가 열반하던 해에 발간된 일어판 「불법연구회 요람」의 ‘유래’에서도 동「규약」과 같은 내용을 밝혔다. 이것은 본회(불법연구회)의 유래가 소태산의 대각에서부터 비롯됨을 대외적으로 공식 천명한 데서 나온 것이다.


“본회는 선 종법사 박중빈 선생께서 재래 산중불교(山中佛敎)를 대중화 생활화키로 목표하고 거금 30년 전(丙辰)에 동지 9인을 규합하여 전라남도 영광군 백수면 길룡리에서 불법연구회 기성조합(佛法硏究會 旣成組合)을 설립, 선생 자신이 그 조합장에 취임, 금주, 단연과 근검저축을 적극 여행(勵行)하여 사업기구를 조성하는 한편 다시 9인 동지와 상모(相謀)하여 길룡리 전면의 간석지 십여 정보의 개척을 약정(約定)하고 주간에는 작무(作務), 야간에는 수행으로 화평 단란한 공동생활을 개시한 것이 본회 사업의 첫 발족이다.”


위 인용구에서 볼 수 있듯이 저축조합은 박중빈의 초기 도덕공동체의 명칭으로 공식화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본 「규약」 ‘본회 취설명’에서는 저축조합이 회중의 7부의 한 부서임을 공식 천명하고 있다. “공부인의 공부 비용과 회원의 자녀 교육비와 본회를 창립하는 비용에 충용하기 위하여 저축조합부를 설립하오니”


불법연구회 행정 조직의 7부 가운데 하나인 ‘상조조합부’는 속칭 ‘저축조합부’라고도 하였다. 영산시대의 공동체 명칭에 대해 길룡리 주민들은 ‘상조조합’을 두고 ‘영산조합’ 또는 ‘저축조합’이라 불렀다. 저축조합이라 불린 것은 갑자년 불법연구회 창립총회시 7부 조직 중의 하나인 ‘상조조합부’의 저축 활동이 영산지역에서 가장 활발하게 전개된 데서 나온 해석적인 임의명(通稱)이다. 영산에서의 ‘방언조합’ ‘저축조합’ ‘상조조합부(상조부)’는 동의어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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