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무심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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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의 무심 바람
  • 한울안신문
  • 승인 2014.06.19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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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울안 칼럼 / 정은광 교무 , (원광대학교)

부처님 오신 날, 약식으로 연등만 몇 개 달고 법설을 마친 다음 교도들과 비빔밥 공양을 했다는 충청도 시골 교무님이 그 다음 법회엔 마음이 허전해서 ‘교리퀴즈 법회’를 마련했다.


첫 번째 퀴즈는 ‘소 잃고 ○○○ 고치기’, 이 문제에 80세 드신 할머니 교도가 손을 번쩍 들어 정답을 맞히셨다. ‘외양간’. 두 번째 문제는 좀 심각한 교리퀴즈로 ‘삼학○○’였다. 이번엔 옆 동네 할머니도 지지 않고 큰소리로 “영구요~!”, 갑자기 ‘영구’라는 말에 한바탕 폭소로 웃음바다가 됐다. 뜬금없이 영구는 왜 나왔을까. 영구처럼 어이없는 행동을 하는 드라마 주인공처럼 삶도 때로 어이없는 일에 한동안 ‘영구’가 된다.


근대화 과정에서 우리가 배운 것은 성숙한 시민사회를 열망했고 교육도 열심히 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니 성숙은 숙성의 시간과 영구처럼 꽤 부리지 않고 좀 모자란 듯 사는 진지함이 많이 필요했다.


4월이 어떻게 지났는지 모를 정도 암담했고 5월의 꽃은 아름답게 보이는 꽃은 없다. 마치 나를 버리고 떠난 젊은 꽃송이들과 맑은 영혼들을 가슴에 묻은 것 같다.


서로가 “내 탓이요” 했던 20년 전 시간이 오늘은 내 가슴에 빛이 바랬다. 자책은 또 하나 마음에 묻는 슬픔이지만 분노는 누군가 상처로 다가선 적개심이다. 시간이 흘러도 무너져버린 황망한 성(城)처럼 마음에 정적 감을 매울 수 없다.


몇 년 전 나는 법회에서 이런 설교를 했다. 어떤 사람이 친구에게 돈을 빌려주었다. 그동안 함께한 마음이 척척 맞았고 어느 날, 그가 단 며칠만 돈을 빌려주면 틀림없이 이자까지 쳐주겠다고 했단다. 마음을 송두리째 빌려주듯 돈을 주고 계약서도 일부러 안 썼다. 믿음에 신뢰가 더하면 세상은 그렇게 송두리째 주는가 싶다.


그런데 열흘 안에 되돌려 준다는 돈이 한 달 두 달 석 달이 지나 할 수 없이 말을 꺼냈다. 그 돈 이자 없이 원금만 돌려 달라고, 그런데 그쪽에서 하는 말 “언제 나한테 돈을 빌려 주었나요?” 하며 시치미를 딱 잡아 떼더란다.


어이없고 기가 막혀 아무 말도 없이 집에 와 누워버렸다. 그 후 시름시름 몸져누웠는데 이웃집 언니가 찾아왔다.


자초지종을 들은 언니가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처방전을 내주었다. “이 못난 것아, 자네는 도마뱀보다도 못하네. 그러다가 죽어, 도마뱀은 순간순간 살아남기 위해 꼬리를 미련 없이 자르네, 아픔을 모르고 재미로 자르는 줄 아는가? 그것이 스스로 정리하고 자신을 사는 길을 알기 때문일세.”


이 말은 들은 후 그는 ‘인연이 잘못되면 스스로 거둬들이는 법’을 깨달았다.


가끔 주변에서 인연정리를 못해 가슴앓이로 사는 사람이 많다. 버리고 떠날 사람, 인연이 되어 맞이할 사람 등 쉽게 정리해야 삶이 편해짐을 알게 되는데 막상 그렇지 못하다. 정 때문일까. 정이 아니라 계산 때문이라고 한다.


어떤 이가 학교에 와 강의를 하는데 이런 말을 했다. “스님들이 무엇을 위해 일생을 사는 줄 아느냐. 그건 비우는 연습으로 자신을 정확히 체득을 하려는 삶이다.”


깨달음과 번뇌는 다만 과정에 불과하다. 마음 비우기 말은 쉽지만 자신에게 스며들기까진 죽도록 해야 된다. 그렇게 정리가 되면 어리석음과 욕망을 벗어나 맑고 푸른 영혼을 가질 수 있다. 이를 벽안(碧眼)이라 한다. 지금도 수행자들이 “가는 사람 잡지 않고 오는 사람막지 않는다.”는 말이 일상화 된 건 도마뱀보다 더 잘난 사람인지라 냉정하게 정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삶이 불안한 것은 과학이 만능이 아니라는 것과 믿었던 사회적 서비스가 배신하고 있다는 거다. 최근 누가 “인간이란 무엇이냐고” 물었다. 나의 대답은“인간은 태어나면서 죽을 때까지 탐욕의 욕망을 그늘을 배우고 그것을 다시 제자리에 갖다 놓는 작업이다. 오직 호주머니도 없는 옷 한 벌 입을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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