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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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가족
  • 한울안신문
  • 승인 2014.09.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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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요즘청년 / 박연하(새나래학교 교사)

잠시 동안 머릿속에 그려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고 가슴 따뜻해지는, 그러다 한 번 더 생각하면 한없이 미안하고 애잔해지는….


내게 가족은 그런 존재이다. 늘 내 곁에서 버팀목이 되어주고 따뜻한 위로를 아끼지 않는, 언제 어디서나 전적으로 내편인 사람들. 항상 가족에 대한 소중함을 간직하고 있지만, 막상 함께하는 시간에는 그 마음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내가 아무리 큰 잘못을 저지르더라도 ‘저 하나 있는 것’ 자체가 위안이 되어 이유 없이 용서가 되고 마는 것이다.
나에게는 우리 가족 말고도 또 하나의 가족이 있다. 때로는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어 오르게 하고, 때로는 그 순진하고 순수한 모습에 깔깔깔 웃게도만드는그런가족. ‘학교’라는 공간 자체에 대해 신뢰하지 못했던 그들이기에 다가섬이 쉽지 않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들어 온 이곳에서도 중도에 탈락하거나, 전·편입해 오는 아이들이 교차되면서 늘 새롭게 시작해야 하기 때문에 나에게는 매번 새로운 가족이 생겨난다.
나의 또 다른 가족! 우리 아이들을 한명씩 그려본다. 그 아이가 기분 좋을 때 드러나는 볼우물, 찡그
릴 때의 입술 모양, 화가 났을 때의 말투. 피를 나눈 가족보다 더 오랜 시간을 아이들과 함께한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아이들과 함께 해온 일상은 내 인생에 있어 그리 짧은 시간이 아니게 되었다.
우리는 가족이기 때문에 서로에게 더 상처를 주기도 한다. 얼마 전 TV광고에서 직장에서는 한없이 너그러운 부장님, 집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남편. 밖에서는 상냥하지만 집에서는 짜증만 내는 딸을 등장시킨 적이 있다. 그 광고를 보면서 나 자신을 들여다본 기억이 난다. 어떻게 하더라도 받아줄 것을 알기 때문에 무방비 상태의 나를 드러내곤 했던 것이다.
내가 가족이기에 무한정 믿고 의지하는 것처럼 ‘우리 아이들도 나를 가족으로 여기고 있는 것이 아
닐까?’하는 생각을 해 본다. 하루종일 신경전을 벌이다가도 고민거리가 생기면 쪼르르 달려와 참새처럼 조잘대는 아이들이다. 집에 있는 가족에게 털어놓지 못한 이야기들을 잘도 토해내는 아이들. 더디기는 하지만 마음이 열리면 아픈 속내를 조심스럽게 드러낸다. 가장 중요한 일을 결정할 때 내가 우리 가족에게 그러하듯이, 교사들을 찾는 아이들을 보며 더 큰 책임감을 느끼곤 한다.
어여쁘고 사랑스럽다가도 가슴 한 쪽이 시려지는 이들이 있다면 그게 바로 가족이다. 그가 겪는 아픔을 대신해 줄 수 없어 안타깝고, 더 해주지 못한 것이 미안한 이들이 있다면 그게 바로 가족인 것이다. 그러니, 우리 아이들은 나에게 있어 또 하나의 가족인 셈이다. 아이들의 마음은 여름날의 소나기 같아서 천둥 번개가 치고, 먹구름이 끼었다가도 이내 맑은 햇살을 드러낸다.
하루에도 열두 번씩 바뀌는 아이들의 마음을 이제 겨우 조금이나마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아직 펼쳐지지 않은 책 속의 기대되는 이야기처럼, 우리 아이들에게 나는 한없는 기대를 해 본다.
씨앗은 조금 더 멀리 퍼지기 위해 스스로 막을 찢고 튕겨져 나가거나 구르기도 하고, 바람에 몸을
실어 낯선 땅에 내려앉기도 하는가 하면 벌과 새의 도움으로 새롭게 다시 태어난다. 아이들은 성장하기 위해 튕겨져 나가고 구른다. 또 교사와 가족들의 도움을 받으며 새로운 인생을 찾아나간다. ‘가족’ 그 따뜻한 이름 안에서 아이들은 겪어야 할 것들을 겪으며 스스로 성장한다. 나는 그들의 또 하나의 ‘가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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