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종사법어 유감有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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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산종사법어 유감有感
  • 한울안신문
  • 승인 2014.09.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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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한울안칼럼 / 박대성교무

갓 출가하여 간사 근무를 할 즈음 인연을 맺기 위해 찾아 뵌 대산종사는 이미 건강 문제로 대중 접견 시간에도 설법을 하지 않으셨던 터라 특별히 말씀을 받들지도 못했고, 그 다음 해가 되어서야 짧게나마 단독으로 인사를 드리게 되었다.
대산종사께서는 두꺼운 마스크를 쓰시고 투명한 눈빛으로 아무 말씀 없이 물끄러미 바라보셨다. 어찌할 바를 몰라서 황망히 앞에 서 있는데 대산종사께서 자리에서 일어서려고 하셨다. 부축하려고 곁에 다가서는 시자(侍子)를 물리시고는 구태여 내 손을 잡으시겠다고 나를 향해 손을 뻗으셨다. 붙잡아 일으켜 드리는 순간 뵌 자비로운 눈빛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올해는 대산종사의 탄생 백년을 맞이하는 특별한 해이자, 대산종사의 일대경륜이 담긴 경전이 편찬된 해이다.


자문판에 보였던‘정전대의’는 잘 정돈되어‘교리편’에 편입되었고 문장도 읽기 좋게 다듬어진「대산종사법어」가 금쪽 같은 말씀 한 번 못 받든 후래 중생에게 스승님이 다시 오신 듯한 기쁨으로 두 손에 쥐어졌다.
이러한 법보(法寶) 경전을 대하며 드는 아쉬운 마음은 한 자락 중생심이 아닐까 싶지만 이러한 생각도 있음을 알리고자 한다.
「원불교 교전」은 대종사 친저인 ‘정전’과 제자들이 기록한 ‘대종경’으로 구성되어 하나의 쌍을 이루고 있다. 이를 “정전은 근원을 밝힌 원경(元經)이요, 대종경은 두루 통달한 통경(通經)”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아울러「정산종사법어」역시 친저인 ‘세전’과 언행록인 ‘법어’로 체용(體用)을 이룬다는 것은 원불교 교도라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과거 성현들은 직접 경전을 쓰고 가지 않으셨지만 대종사께서는 손수 원력을 뭉친 경전을 우리에게 주고 가셨으며 이후 종법사를 역임한 스승들께서도 많은 저서를 남기신 것은 새 회상의 홍복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대산종사께서는 도표와 그림으로 교리를 설명한「교리실천도해」라는 걸출한 경전을 우리에게 남기신 바 있다. 올해 대각개교절을 맞아 중앙 총부에서 열린 ‘대산종사 추모법회’에서 대산종사를 오랫동안 시봉(侍奉)한 이용정 교무는 “(대산종사께서)「교리실천도해」는 전 인류의 노선이요 교역자의 표준이다.”라고 하면서“3천년 만에처음 나온 법이다. 앞으로 두고 보면 알겠지만 이렇게 손안에 간단히 주무를 수 있도록 한「교리실천도해」같은 법문은 없을 것이다”고 말씀했다. 이러한 교리실천도해를 내놓은 까닭에 대해 “모든 사람이 교리하고 가깝게 하고 실천할 수 있도록 위한 것이다”고 말씀했다”고 전했다.(원불교신문 1705호)
어느 정도 심혈을 기울이셨으면 ‘3천년 만에 처음 나온 법’이라고 강조하셨을까? 퇴계 이황(1501~1571) 역시 성리학의 요체로 선조를 깨우치기 위해 열 가지 도식으로 구성된 ‘성학십도’를 지어 올린 바가 있다. 그 유명한 주렴계의 ‘태극도설’역시 진리를 설명하기 위해 도해로 구성된 글이다.


이처럼 ‘도해 경전(圖解經典)’은 문장을 넘어 입체적으로 구성되어 남녀노소 유, 무식을 막론하고 교리에 대한 이해를 쉽게 하는 이점이 있다.
원기47년 처음 출간되어 프린트 판으로 보급되다가, 원기71년 48개의 항목으로 발행된「교리실천도해」, 도표 하나 그림 하나를 연마하느라 일천정성이 사무쳤을 대산종사를 떠올리며 스승의 성혼(聖魂)이 담긴「교리실천도해」를 원경으로 그리고 15편으로 구성된「법어」를 통경으로 하여 온전히 체용을 갖춘「대산종사법어」를 받들 수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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