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깎이 신병들에게 드리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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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깎이 신병들에게 드리는 편지
  • 한울안신문
  • 승인 2014.09.27 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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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요즘 청년 / 의무경찰의 신앙과 수행이야기 ④ 허성근(승규, 연세대원불교교우회, 의무경찰 복무중)

안녕하십니까? 2007년에 대학에 입학해서 2013년 6차로 의무경찰에 입대한 늦깎이 일경 허승규입니다.


이제 9개월 남짓, 길면 길고 짧으면 짧은 시간 동안 배우고 느낀 것들을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저는 벽제 신임교육대 1생활실을 배정받았습니다. 나이순으로 배정하다보니 1생활실은 가장 나이가 많았습니다. 학교 선생님, 학원 선생님, 고시공부를 하다가 잘 안 되어서 입대한 친구, 외국에서 학교를 졸업한 친구 등등….
사연 많은 늦깎이 신병들은 그나마 ‘복무환경’이 좋고, ‘갈굼’이 덜해서 나이 먹은 서러움을 덜 느낄 수 있는 의무경찰에 왔습니다. 또래보다 늦게 입대를 해서 그런지, 누구보다도 군대에 관한 정보가 많은 이들이 늦깎이 신병들입니다. 저도 법무관, 학사장교, 공군, 육군 등을 고민하다가 요즘 대세라는 의무경찰에 왔습니다.
대학에 입학하고 군대에 오기까지 주변에서 입대하라는 압박을 견뎌내기는 스트레스였습니다. 각자 사정이 있음에도 ‘군대는 빨리 갔다 와야 한다.’는 사회적 인식을 넘어서기는 힘듭니다. 먼저 온 순서대로 선후임 관계가 정해지는 군대의 특성상 당연히 먼저 온 사람이 승리자겠지만, 이미 남들보다 늦게 입대하는 늦깎이 신병들에게는 돌이킬 수 없는 시간입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남보다 빨리 오고 늦게 오고가 아니라, 얼마나 군생활을 알차게 보내는가가 의미 있는 고민일 것입니다.
예비군 3~4년 차인 친구가 해준 이야기가 있습니다. 군대는 강제로 왔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나쁜 점을 깔고 있지만, 좋은 점을 만들어가는 것은 개인의 노력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1년 9개월 동안 대한민국의 건강한 성인 남성은 원치않더라도, 병역의 의무를 다해야 합니다.
당연히 불편하고,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군 생활에서 어려움들을 견뎌내면서 많은 것을 얻어갑니다. 특히, 늦깎이 신병들은 다른 신병들보다는 경험이나 고민을 많이 하고 왔기 때문에, 오히려 군 생활에서 많은 것들을 얻어갈 수가 있습니다. 또래의 친구들이 취업 전선에서 고민을 하고, 사회의 일선에서 부딪히고 있을 때에 한 걸음 물러서서 준비와 사유의 시간을 할 수가 있습니다. 특히, 악습이 줄고, 자기계발을 장려하는 지금의 의경 문화에서는 준비와 성숙의 시간을 다른 군 복무보다 극대화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의무경찰에 와서, 책도 많이 읽고, 한국사 등의 자격증도 땄습니다. 입대 전엔 활동하던 단체
의 대표자를 많이 했었는데, 자대배치와 함께 중대에서 가장 낮은 계급 생활 경험은 값진 경험이었습니다. ‘나이주의’문화가 뿌리 깊은 한국 사회에서 군대생활은 또 다른 시야를 보게 해줍니다. 수많은 집회와 시위 현장에서, 전공인 정치학에 대한 고민도 깊게 할 수 있었습니다. 매주 외출에는 지인들을 만나서 꿈과 진로에 대한 자극도 받곤 합니다. 취업했거나, 미래를 고민하는 또래들을 보면서 군 생활에 대한 의욕을 다집니다. 늦게 군대갔다고 주변에서 응원도 많이 해줍니다. 또한, 지방 출신으로 서울에서 오래 학교 다닌다, 활동한다고 부모님 노후자금을 많이 축냈었는데, 효도도 하고 있습니다.
훌륭한 정치가가 꿈인 저에게 의무경찰 기간은 미래를 준비하는 소중한 시간이자, 평범한 시민들이 겪는 어려움과 고민을 몸소 체험할 수 있는 값진 시간입니다. 집이 잘 살건, 못 살건, 공부를 잘 하건, 못 하건 누구나 와야 하는 곳이 군대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렇게 좋은 것들만 쓰면서도, 하루에도 여러 번 달력을 보고, 외출, 외박, 특박, 휴가를 간절히 기다리며, 전역 이후를 끊임없이 상상하는 모순적인 사람이 저이기도 합니다.


희로애락이 왔다갔다 하고, 웃다가 욕하는 군 생활이지만, 그래도 순간순간과 하루하루를 스스로와 동료들을 응원하면서 보낸다면 그날이 오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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