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있지 않는 ‘집단영성’ - 법인절을 맞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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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있지 않는 ‘집단영성’ - 법인절을 맞아 -
  • 한울안신문
  • 승인 2014.09.29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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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한울안칼럼 / 박대성교무(본지 편집장)

상상하기 싫지만 만약 대종사께서 아홉 선진들을 경쟁시켜 혈인(血印)을 맨 먼저 나툰 제자만 참된 제자라고 인정하셨다면 우리 교단은 어떠한 모습으로 성장해 있을까?
지금의 신자유주의 무한경쟁 체제와는 어울릴 수 있겠지만 새로운 문명의 대안은 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한 분도 빠짐없는 혈인으로 이루어낸 법인성사(法印聖事)는 팍팍한 삶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큰 의미를 준다.
아홉 어른인들 중간에 기도 정성이 잠시 뒤로 밀려난 분이 안 계셨을까? 그럼에도 서로 오며 가며 한 마디씩 거들었을것이다. “이보게뭐하는가? 어서 기도하러 가세”
프란치스코 교황이 다녀갔다. 광화문에서 백만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대규모 시복식의 장엄함과 200년 전에는 죽음으로 신앙을 지켜간 그들이 이제는 한국사회의 주류로 자리 잡은 당당한 모
습에서 이웃 종교인의 한 사람으로 묘한 질투를 느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더욱 놀라운 것은 국가도 위로하지 못하는 — 설마 안 하는 건 아니겠지? — 세월호 희생자들과 소외당한 이들을 위해 보여준 그의 따뜻한 마음가짐이었다. 교황은 지금 우리에게 이렇게 말
하는듯했다. “이보게뭐하는가? 어서도 우러 가세”


세상은 우리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어깨를 잡아 누르고 있다. 괜히 나서서 문제 만들지 말라고, 뒤에서 눙치고 있으라고 요구한다. 200년 전 ‘천주학쟁이’라 불렸던 가톨릭 교인들도 괜한 신앙 받아들이지 않고 살았다면 천수를 누렸을 것이다.
100년 전 아홉 선진들도 가만히 농사나 짓고 적당히 살아갔으면 초기교단의 간고(艱苦)한 수레와 제생의세(濟生醫世)라는 무거운 멍에는 짊어지지 않고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진리의 부름을 차
마 외면하지 못했기에 그들은 서로 한 곳에 모인 것이다.
한동안 집단지성(集團知性, collective intelligence)이란 말이 유행한 적이 있다. 이는 다수의 개체들이 서로 협력 혹은 경쟁을 통하여 얻게 되는 지적 능력에 의한 결과로 얻어진 집단적 능력을 말한다.


소수의 우수한 개체나 전문가의 능력보다 다양성과 독립성을 가진 집단의 통합된 지성이 올바른 결론에 가깝다는 주장이다.
이제는 집단영성(集團靈性, collective spirituality)이 꽃피어야 한다. 집단영성은 우월감 또는 패배감에 휘말리지 않고 양심의 목소리에 한 걸음 나아가는 영성이다. 카리스마적인 한 사람의 지도자보다 평범한 우리의 결단을 더욱 소중히 하는 영성이다. 남의 아픔을 내 고통으로 알고 보듬어 주는 영성이다. 뒤에서 밀어주고 앞에서 손 잡아주는 영성이다. 한 사람도 빠짐없이 혈인을 나투는 영성이다.
법인기도를 앞두고 “그대들의 마음은 곧 하늘의 마음이라 마음이 한 번 전일하여 조금도 사가 없게 되면 곧 천지로 더불어 그 덕을 합하여 모든 일이다 그마음을 따라 성공이 될 것이니, 그대들은 각자의 마음에 능히 천의를 감동시킬 요소가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며, 각자의 몸에 또한 창생을 제도할 책임이 있음을 항상 명심하라”고 하신 대종사님 말씀처럼 지금 이 순간 가만히 있지 말고 천지와 더불어, 창생과 함께 성공하는 법인절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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