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상태바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 한울안신문
  • 승인 2014.10.12 12: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 현문우답 / 최은종 교무(신촌교당)

벌써 몇 달째 건축 중인 앞집의 먼지와 소음으로 인해 햇볕에 물건을 내놓는 일은 엄두도 못 내고 창문을 여는 것조차도 포기한 지 이미 오래다.


기도 오시는 교도님들을 모시러 나가는 길 공사 현장에서 나오는 요란한 굉음 사이를 지나자니 미간이 저절로 찡그려진다.
“아휴~ 시끄러워”하며 소리나는 쪽을 바라보니 어두컴컴한 공간, 철근을 자르느라 굉음 속에서 일하는 사람이 보인다. 순간 안쓰럽다는 생각이 든다.


‘이 더위에 저 소음 속에서 일하는 분들은 얼마나 힘이 들까?’ 미웠던 마음이 안타까움으로 변함과 동시에 ‘다행이다. 저런 환경 속에서 일하지 않고 깨끗한 환경 속에서 좋은 이야기를 나누며 살고 있는 모습. 수행자의 삶은 참 깨끗하고 좋아.’하면서 살포시 미소가 지어진다. 그리고 다음 순간 소스라치게 놀랐다.
난 지금 무얼 생각하고 있는 걸까? 도대체 어떤 기준에서 내가 하고 있는 일은 좋은 일이고 저들이 하는 일은 힘든 일이고 피하고 싶은 일이라고 하는 걸까?
대종사님께서는 “직업 가운데에 제일 좋은 직업은 일체 중생의 마음을 바르게 인도하여 고해에서 낙원으로 제도하는 부처님의 사업”이라 하셨다.(대종경 인도품 40장)
그렇다고 해서 출가자로 사는 것이 곧 제도 사업이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큰 지혜와 큰 복을 지을 수 있는 이곳에서 오히려 더 큰 죄를 짓고, 더 어리석게 사는 경우도 있으니 말이다.
어쩌면 저들은 저 소리를 음악으로 들으면서 자신의 손을 거쳐서 모습을 드러내는 건물을 보면서 지혜와 복락을 구하며 큰 기쁨을 체험하고 있는지도.
그런데 나는 내가 만든 기준으로 이것은 좋은 일이고, 저것은 안쓰러운 일이라며 마치 그들에게 자비심이라도 내는 양 착각하고 있지 않은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지 못하고 나의 틀에 맞추려는 나의 분별 주착심이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와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