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시간 10분과 특권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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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시간 10분과 특권의식
  • 한울안신문
  • 승인 2015.04.0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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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기홍 교무 / 대치교당


은행업무가 있어 교당 인근의 은행에 들렀다. 은행 안에는 용무를 보러 온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번호표를 뽑으니대기자가 무려 38명이나 됐다. 순간 한 사람당 1분씩 은행직원 3명이 업무처리를 하면 5분 이내에 업무를 볼 수 있겠다는 생각에 가벼운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창구 직원들이 5분이 지나도 단 한 사람도 번호를 부르지 않는다. 마음은 서서히 동요하기 시작한다. 20분이 지나도 30분이 지나도 순번은 가까워지지 않는다. 급기야 앉아서 기다리기가 지루해 서성이기 시작하는데 은행의 특별 고객실(private banking)이 보인다. 그곳에는 단 한 사람이 차를 마시며 은행 직원과 상담을 하고 있다.


순간 나는 학교에서 근무하던 생각이 떠올랐다. 학교 자산관리의 책임을 맡고 있었지만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은행에 나가질 않았다. 오히려 지점장이나 직원들이 학교에 찾아와서 업무를 처리해줄 뿐만 아니라 금융상품을 소개하며 온갖 친절을 다하였다. 어쩌다 개인적인 업무로 은행에 가더라도 얼굴을 알아보고는 곧바로 지점장실로 안내하였고, 내가 필요한 사항은 창구직원들이 지점장실에 들어와 알아서 처리해주었다.


언제나 특별예우를 받았기에 은행업무가 복잡하거나 지루하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다만 은행창구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피상적으로나마 미안하다는 생각만 하였던 기억이 떠오른다.


급기야 한 시간이 지나도 기다림이 계속되자 이제는 마음이 많이 불편해진다. 이런 일들은 내가 하지도 않았었지만 설혹 내가 한다 하더라도 은행직원들이 알아서 다 처리해주었는데 한 시간이 넘도록 기다리려니 과거 생각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며 떠나지 않는다. 1시간 10분이 지나서야 은행업무를 겨우 마쳤다.


교당에 돌아와 미진한 업무를 정리하고 은행에서 일어났던 심신작용을 정리해보니 부끄럽고 미안하며 감사하다. 부끄러움은 오늘 나처럼 창구에서 그렇게 오랫동안 기다리던 사람들의 시선이다. 내가 미처 알지 못하였고, 내 눈에 보이지 않았지만 누군가는 나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았을 것 같다. 특권의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비판하였던 내가 그 주인공이었다니 부끄럽다. 미안함은 나보다 먼저 은행에 도착하여 번호표를 뽑고 기다리던 사람들의 기다림이다. 나로 인하여 그 사람들의 기다림이 더 늘어났을 것을 생각하니 정말 미안하다.


감사함은 내가 은행에 업무가 있어 나간다고 하면 알게 모르게 은행에 연락하여 지체 없이 업무를 처리하도록 도와주었던 교직원들이다. 그리고 그런 부탁을 거절하지 않고 배려해준 은행직원들의 마음이다. 오늘 하루를 되돌아보니‘나’라고 하는 존재는 항상 시비이해 속에 살지만 내가 알 수 없는 수많은 생령들의 희생과 배려 속에 살아가고 있다는 점을 명념하여 시비이해의 적토마를 타고 다닐지언정 끌려다니지는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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