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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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
  • 한울안신문
  • 승인 2015.05.29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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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정법현 교도 /북일교당


대종사 당시의 시국을 살펴보시사 그 지도 강령을 표어로서 정하시기를“물질이 개벽(開闢)되니 정신을 개벽하자”하시니라 -서품4장-


여기서 시국이란 식민지 치하의 조선에 대한 시사적 정세 상황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당시는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일 때였다. 소태산은 전라남도 영광의 궁벽한 촌구석에서 이미 세계의 상황에 대해 돈오하고 있었다. 세계의 발전과 발전 방향에 대한 소태산의 깨달음은 분별적 지식에서 온 것이 아니라 반야적 지식을 통해 스스로 읽어낸 것이었다. “만유는 한 체성”이라 고‘깨달은 자’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특히 당시는 소위 엔진이라고 불리는 내연기관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던 시기였다. 증기에서 디젤로, 2기통에서 4기통으로의 내연기관의 발전은 자동차며 비행기, 전차, 기차 등의 눈부신 발달을 가져왔다. 아마도 당시 영광에서는 내연기관으로 움직이는 그 어떤 기계장치도 볼 수 없었을 터였다. 하지만 젊은 소태산의 반야지는 과학적 논리와 이성을 뛰어넘는 기나긴 수행의 결과로 만유의 개벽을 인식했다.


물질의 발달로 인한 인간 삶의 질적 변화 또한 눈부셨다. 소태산은 그것을 ‘물질의 개벽’이라고 표현했다. 개벽된 물질들은 모두 전쟁터로 모여들었고, 인간은 전선의 참호 속에서 비참하게 물질의 바퀴에 깔려야 했다. 물질은 개벽했으나 정신이 개벽되지 못한 상황을 소태산은‘개교의 동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현하 과학의 문명이 발달됨에 따라 물질을 사용하여야 할 사람의 정신은 점점 쇠약하고, 사람이 사용하여야 할 물질의 세력은 날로 융성하여, 쇠약한 그 정신을 항복 받아 물질의 지배를 받게 하므로, 모든 사람이 도리어 저 물질의 노예 생활을 면하지 못하게 되었으니, 그 생활에 어찌 파란고해(波瀾苦海)가 없으리요.


원불교 교전의 첫 페이지 첫 문장의 첫 단어는‘현하(現下)’이다. 현하는 ‘현재의 조건과 상황’이라는 뜻이다. '현하…’로 시작되는 개교의 동기를 읽으며 어떤 전율을 느꼈다. 팔뚝에 소름이 돋았다. 100년 전의 현하와 100년 후의 현하는 거의 동일하다. 100년 전의 현하도 물질의 노예 생활을 면하지 못한 파란고해였고, 100년 후의 현하도 물질의 노예 생활을 면하지 못한 파란고해이지 않은가.



교전의 첫 단어인‘현하’는 원불교의 현재성을 상징하는 단어이다. 원불교는 언제나‘현하’로 시작한다. 인간의 삶이 언제나‘현하’에서 전개되기 때문이다. 현하는‘지금 이 순간’이다. 지금 이 순간의 사랑, 지금 이 순간의 배신과 상처, 지금 이 순간의 감정의 소용돌이, 지금 이 순간의 의지, 지금 이 순간의 권력, 지금 이 순간의 애매함, 지금 이순간의 아득함, 지금 이 순간의 절망, 지금 이 순간의 기도, 지금 이순간의 노래, 지금 이 순간의 마음, 지금 이 순간의 문장, 지금 이 순간의...



지금 이 순간의 경계는 물론이고, 지금 이 순간의 본성까지를 아우르는‘현하’는 소태산 이전에 먼저 왔던 모든 앞 부처에 대한 소태산이라는 뒷 부처의 현재성과 당대성을 나타나는 원불교적 시간의 개념이기도 하다. 나는 그렇게 읽었다.


(02-2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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