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련소를 다녀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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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소를 다녀오다
  • 한울안신문
  • 승인 2015.05.29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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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조세웅 / 둔산교당, KAIST 원불교 교우회


이공계 대학원생 및 연구 종사자들은 전문연구요원으로 선발되면 3년간의 병역 대체 복무를 하게 된다. 그 기간 중 4주 동안 군사훈련을 받게 되는데 그것이 내게는 지난 4월이었다. 예전에도 군종 법회 참석차 두어 번 다녀갔던 곳인데 이번에는 머리를 깎고 들어간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묘했다. 훈련병으로 참가하는 훈련소 법회는 어떤 느낌일까? 다른 종교는 어떻게 예회를 볼까? 궁금하기도 했다.


감기와 원불교는 참 숨기기 어려운 것 같다. 첫 주말부터 사람들이 모두 내가 원불교 교도인 것을 알아버렸으니 말이다. 법회가 끝나고 상·하의 주머니마다 초코파이를 두둑히 채워주신 교무님 덕택이 크다. 매주 원불교 법회에 훈련병들을 인솔하는 조교들도 실제로 원불교 교도를 본 적은 거의 없는 듯 했다. 그 뒤로 다른 종교의 행사에 참석할 때면“12번 훈련병 원불교라고 하지 않았습니까?”하는 꼬리표가 따라다녔다.


원불교 교도가 소수이다 보니 훈련병들을 잘 보내주지 않는 경우도 많다고 들었는데 다행히 우리 중대에서는 그런 문제가 없었다. 첫 주에는 다들 불교나 기독교를 선택해서 가는 길이 쓸쓸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원불교도 한 번 가보자’는 사람들이 늘었다. 원광보건대 간호학과 학생들이 온다는 소문이 퍼진 3주차에는 우리 중대 훈련병들의 절반을 넘는 수가 원불교로 몰리는 격변이 일어나기도 했다.


타종교 역시 만만치 않았다. 천주교만 정석대로 미사를 진행하는 가운데, 불교는 걸그룹, 개신교는CCM 가수들이 매주 찾아왔고, 훨씬 많은 인력과 물량으로 행사를 진행하며 사람들을 끌어들였다.


최신곡 댄스로 무장한‘불교 나이트’도 인기가 좋았지만, 개인적으로는 찬송을 마친‘누나들’이 직접 신앙 감상을 나누는 개신교의 분위기가 더 프로답게 느껴졌다. 종교 간 경쟁이 과열된 탓인지 인솔을 맡은 기간병과 부사관들은 특정 종교에 훈련병들을 많이 보내라는 윗선의 압박에 시달리기도 했다.


이런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밀리지 않고, 천여 명의 훈련병들과 함께 원불교 법회를 볼 수 있다는 사실이 참 감사하게 느껴졌다. 법회 레크레이션 코너인‘슈퍼스타 훈련병’은 외부 공연팀의 지원이 없이도 훈련병들이 스스로 장기를 선보이며 즐거운 분위기를 만들어 나가는 모습이었다. 또한 떠들지 말라며 훈련병들을 윽박지르곤 하는 타종교들과 비교할 때, 끝까지 경어를 쓰면서 친절한 미소를 잃지 않는 교무님들의 신사적인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법회가 끝나면 훈련병들은 멈추고(스탑 stop), 생각하고(씽크 think), 실행하고 (액션 action),대조한다.(리뷰, review)의 스타(S·T·A·R) 마음공부법을 기억해내곤 했고, 이를 바탕으로 마음일기를 써오기도 했다.


한 조교는 원불교가 인솔 담당 기간병들을 가장 잘 챙겨줘서 원불교를 좋아한다고 얘기했다. 훈련소를 마치고 그 조교의 페이스북을 찾아 들어갔더니‘원불교는 치킨 먹어도 됨’의 게시물이 공유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었고 뒤늦게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훈련소에서나 온라인에서나 원불교는 더 이상‘사회 책에만 나오는 미지의 종교’는 아니었다.


4주간의 훈련은 무사히 마무리되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서늘한 날씨부터 사람들 하나하나까지 많은 은혜가 가득했다. 법회시간마다 집에 온 것처럼 편하게 대해주시고 밖에서는 원불교 교도로 자부심을 느낄 수 있게 해준 훈련소 교무님들께도 감사한 마음이다. 무엇보다 훨씬 오랜 시간, 삶의 일부를 나라에 헌신하는 현역병 친구, 형, 동생들이 특히나 고맙게 느껴졌다. 잊고 살았던 은혜들을 되새기며 현재의 내 모습을 다시 한 번 챙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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