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벽은 현재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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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벽은 현재 진행형이다
  • 한울안신문
  • 승인 2015.06.11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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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정법현 교도 /북일교당


정도상작가의‘마음으로대종경읽기’02-2


개벽이란 무엇인가? 개벽에 대해 알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알고 있는 것을 문장으로 연결해내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머리가 하얗게 빈 상태로 며칠을 흘려보냈다. 개벽을 어찌 몇 개의 문장으로 정의할 수 있겠는가? 개벽은 문장으로 정의되는 개념이 아닌데도, 정의할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겨우 몇 권의 책을 읽어낸 요량으로 개벽에 대해 아는 척을 했다니 부끄러웠다.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 어찌 되었든 무언가를 하긴 해야 하는데, 그저 캄캄한 어둠 속이었다. 어둠 속에서 장님처럼 길을 찾아 더듬거렸다. 토요일이 되었는데도 여전히 암중 모색일 뿐이었다. 토요일 아침 일찍 지리산 마음 밭에 왔다. 지리산 마음 밭에 오니, 여기저기에 하얀 매화가 보였다. 이제 막 피기 시작하는 듯했다. 스마트폰을 꺼냈다가 도로 주머니에 넣었다. 역설적이게도 매화를 사진에 담으려면 밤에 찍어야 한다. 낮에는 빛이 많아 그저 그런 흔하게 보는 매화를 사진에 담아낼 수 있을 뿐이다.


석양을 기다리기로 하고선 도끼와 낫과 정글도의 날을 세웠다. 전지용 작은 톱과 긴 톱, 엔진톱, 전지가위, 낫, 도끼, 정글도를 챙겨 매화나무가 있는 곳으로 올라갔다. 꽃망울이 맺혀 있거나 꽃이 핀 가지라도 나무가 견디지 못할 정도로 늘어진 가지들을 매몰차게 잘라냈다. 그러지 않으면 매화나무가“너무 무성해져서”가지가 찢겨“죽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무를 살리기 위해 나무 가지를 자르는, 역설의 노동에 집중했다. 그렇게 몸을 움직이는 일에 극한으로 집중하면 한 오라기의 잡념도 틀어올 틈이 없다. 온몸에 땀을 뻘뻘 흘리며 일에 집중할 때 찾아오는 무념무상의 명상 상태…… 하지만 엔진톱은 너무 무거웠다.


물질의 개벽은 나날이 눈부시고 새롭다. 하지만 정신의 개벽은 물질의 개벽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정신의 개벽은 느리며 덜커덕거리고, 위선과 거짓말에 막히며 안개에 갇힌 듯 애매하고, 끝없는 욕망에 가로막혀 있는 것이다. 나 또한 욕망에 갇혀 허우적거리며 살고 있다. ‘욕망한다. 고로 존재한다.’


중생의 실존에 가장 가까운 말이 아닌가 싶다. 그러기에 중생이 아니던가. 나 역시 중생의 한 사람이다. 돈, 권력,물질, 명예, 사랑, 욕정, 배신을 욕망하면서 중생은 일상을 견디고 존재한다. 욕망은 깊은 상처를 낳는다. 깊은 상처에 온 존재가 망가져 허덕거리며 중생은 겨우 살아가고 있다. 그러다 너무 아프면 무언가를 찾는다. 소위 힐링을 위해 인문학을 운운하며 찾는 것, 그것을 내면의 자아’라고 부른다.


상처받은 존재(Being)들이 찾고자 하는 자아란 서구의 인문학이나 정신분석학이 찾아낸 말랑말랑한 괴물이다. 그 괴물을 찾으면 힐링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발목이 삐었는데 신발만 바꾸는 격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너무나 자주 신발만 바꿔 신었다. 어쩌면 곧, 발목을 잘라야 할지도 모르겠다.


불가를 비롯한 원불교에서 말하는 중생의 실존은 결정론적이며 서구적인 ‘Being’이 아니라‘그렇게 되어가는 존재’즉 연기적‘becoming’이다. 개벽이란‘Being’을‘Nothing’으로 만드는게 아니라 끊임없이 연기적 인과의 ‘becoming’이 되는 것이다. 여기에 원불교 개벽의 비밀이 있다고 나는 생각
한다.


천도교는 개벽을 혁명으로 이루고자 했고, 증산교는 개벽을 신비적인 도(道)로 이룩하고자 했다. 원불교는 생활적 대승불교의 길에서 개벽을 이뤄내고자 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원불교의 개벽은 완료형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이며, 돈오가 아니라 점오며, 일거에 한꺼번에 이루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느리게 이뤄가는 것이며, 무엇보다도 전면적 전환이 아니라 성찰적 전환이며, 생활 밖에서가 아니라 생활과 함께 이뤄내는 것이며, 자아를 찾는게 아니라 마음을 공부하여 본성에 이르도록 노력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어두워지자 스마트폰의 카메라 설정을 후레쉬로 바꾸고 매화를 촬영했다. 하얀 매화를 가장 도드라지게 촬영하기 위해 석양의 시간을 기다렸던 것이다. 너무 어두워도 촬영이 불가능하다. 이제 꽃에 빛을 최대한 집중하고 셔터를 누르기만 하면 된다. 찰칵, 매화가 내 마음에 새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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