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정원 서울이전에 따른 조직과 예산 방안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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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정원 서울이전에 따른 조직과 예산 방안 ①
  • 한울안신문
  • 승인 2015.07.17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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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강정갑 교도 / 강남교당, 화성도시공사사장


창립 초기 원기2년 대종사님께서는 장차 시방세계를 위하여 함께 큰 공부와 사업을 하기로 하면 먼저 공부할 비용과 사업을 할 자금을 예비하여야 한다고 하시며 저축조합(금융업)을 창설하셨고, 숯을 사두었다가 시세차익이 발생하자 이를 매각하여 큰 자금을 만드셨다.(유통업)


원기3년에는 정관평 방언공사로 2만 6천 평의 농토를 만들어 교단의 재정적 기틀을 만드셨고(농업,건설업), 원기9년에는 상조조합을 만들어 기존의 조합을 이어받고 공부자금 등을 마련하는 등, 초기 회상의 금고(金庫)역을 담당케 했다(금융업의 확장). 원기19년에는 보화당을 열고 자선병원의 뜻을 밝셨다.(제약업과 의료사업)


이와 같이 대종사님께서는 창업 초기에 주요산업에 참여하여 교단의 자립, 자력종교를 만들기 위해 애쓰셨다. 그러나 이와 같은 정신은 그 후 발전적으로 계승되지 못하고 대한민국의 산업발전과 함께하지 못했다.


각 분야별로 건설업은 현대, 삼성, 대우 등으로 금융은 국민, 신한, 우리은행, 미래에셋 등으로 제약업은 동아, 유한양행 등으로 유통은 삼성물산, 대우인터내셔널 등으로 농업은 바이오 식품산업으로 발전했으나 그보다 일찍 출발한 원불교의 각 사업은 현대적 모습으로 발전되지 못했다.


이는 원불교의 교화능력을 물적 측면에서 지원하지 못함으로써 교화 활성화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생활불교를 기치로 사업을 통해 전무출신 교육과 자립종교로 자리 잡으려 하신 창립정신을 제대로 담아내고 발전시키지 못했다.


그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원불교 교사」를 보면 대종사님께서 원기9년 3월에 익산에 총부를 정하시면서“이리 부근은 토지도 광활하고 교통이 편리하여 무산자들의 생활과 각처 회원의 내왕에 편리할 듯하니, 그 곳으로 정함이 어떠하냐 하니 일동이 그 말씀에 복종하였다”고 되어있다.


이는 그 당시에는 현재의 익산이 전라선과 호남선이 교차하고 평야가 광활하여 물산이 풍부하기 때문에 교화하기도 좋고 자력종교로 발전시키기에 최적의 땅이라는 말씀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것은 변하듯이 우리 국토의 모습도 역사의 흐름에 따라 계속 변해왔고 1960년대 후반부터 경제성장의 축이 수도권을 제1의 중심축으로, 부산권을 제2의 중심축으로 경제성장이 이루어졌고 특히 국토 대비 수도권의 면적은 11.8%이나 인구의 절반이 넘고 대기업의 90%, 금융은 70%가 넘고 공공기관, 주요 교육 연구기관이 입지하게 되었다.


즉 경제, 사회, 문화, 정치, 교육의 중심지가 되었고, 세계적으로 인정하는 경쟁력 있는 공간이 되었으며 세종시와 혁신도시로 공공기관이 이전하고 있으나 이러한 집중현상은 계속될 전망이다.


(다음 주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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