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지혈인白紙血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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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지혈인白紙血印
  • 한울안신문
  • 승인 2015.08.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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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정도상작가의‘인문학으로대종경읽기’05 정법현 교도 / 북일교당


“지금 물질문명은 그 세력이 날로 융성하고 물질을 사용하는 사람의 정신은 날로 쇠약하여, 개인·가정·사회·국가가 모두 안정을 얻지 못하고 창생의 도탄이 장차 한이 없게 될지니…”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소태산이 아홉 명의 제자를 불러놓고 한 말이다.


이 문장을 읽는데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100년 전 1916년에 소태산이 직시한 현실, ‘창생의 도탄이 장차 한이 없게 될’것이라는 법어는 그대로 예언이 되었다. 소태산의 예지와 직관은 100년의 세월이 흘렀어도 여전히 유효하다.



소태산의 예지와 직관의 위대함에 경탄하기 전에 먼저, 100년의 세월이 흘렀어도 정신개벽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점과 창생의 도탄은 여전하다는 현실에 대해 어떤 자괴감이 들었다. 성찰과 사유의 언어에 기대어 살아가는 작가로써 부끄럽기 짝이 없었다. IT산업의 총아인 스마트폰에는 통신의 기본 기능과 인터넷, 지도와 화폐, 편지와 전보, 텔레비전과 화폐, 게임과 사진, 기억과 복제의 기능이 모두 담겨 있다.


이처럼 물질문명의 패러다임과 발전을 한꺼번에 보여주는 기계는 일찍이 없었다. 가히 물질개벽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물질개벽은 참으로 눈부셨다. 서울에서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면 열에 아홉은 모두 스마트폰 화면과 마주하고 있다. 아무리 커도 손바닥 크기를 넘지 못하는 그 화면에 눈길을 던지고 있는 사람들. 스마트폰 중독자가 된 줄도 모르고 있다. 뿐만이 아니다. 친구들과 만나서도 모두들 바로 앞에 앉아 있는 친구들과 대화를 하면서 소통하기보다는 먼 곳에 있는 친구들과 소위‘톡’을 주고받느라 정신이 없다. 커피가 나오면 커피를 찍고, 음식이 나오면 음식을 찍어 SNS에 게재하느라 바쁘기만 하다. 정작 가장 가까운 친구들을 소외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소태산이 예언한 물질의 노예가 된 상태인 것이다. 그리하여 스스로의 생이 도탄(塗炭)에 빠진 줄도 모르고 있는 것이다.


소태산은 아홉 명의 제자들에게“세상을 구할 뜻을 가진 우리”가 하늘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기도를 하여 물질의 노예가 되어 있는 중생 구제에 나서야 한다고 했다. 아홉 명의 제자들은 소태산의 말을 그대로 따랐다. “신앙과 수행은 우리 인생의 가장 성숙한 모습이다. 신앙과 수행을 통해 인간은 극치의 영성 세계에 들 수 있기 때문이다.(이광정 지음, 「마음수업」, 한겨레출판, 17쪽, 2011년)”아홉 명의 제자들은 소태산과 법신불 사은을 신앙하면서 죽음을 불사한 기도의 수행에 들어가게 된다. 그들은“~까지”기도했으며 영성세계로 나가기 위해 용맹정진 했다.


일원상서원문의 마지막은“일원의 위력을 얻도록 까지 서원하고 일원의 체성에 합하도록 까지 서원함”이라고 되어 있다. 우리는 과연“~까지”서원하고 기도하는가, 라고 묻지 않을 수 없다. 불행히도 대답은“아니요”이다. 우리는 기도의 흉내만 내고 있는 것이다. 간절히 기도하고“~까지”서원하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의 영성(靈性)은 엉성하기만 하다. 용맹정진의 수행이 없는, 신앙과 수행의 흉내만 내고 지극한 영성세계에 들어가지 못하는 종교생활은 중생을 구제하기는커녕 오히려 도탄에빠트릴 뿐이다.


세상의 모든 성직자들은 지극한 영성 세계에 몸과 마음이 담겨 있는지 스스로 질문해보아야 한다. 소태산은 사람의 마음이 하늘의 마음이 될 때까지 간절히 기도하기를 원했다. 소태산이 말한 정신개벽은 바로 그런 것이었다. 소태산은 물질문명의 노예 상태에서 벗어나 물질을 사용하는 주인이 되는 삶에 대해 여러 차례 강조했다.


대표적으로 서품 4장을 비롯하여 교의품 30장, 31장, 32장, 34장에서 그것을 반복하여 말하고 있다. 심지어는 영모전(永慕殿)에 있는 소태산의 비(碑)에도“정신이 세력을 잃고 물질이 천하를 지배하여 생령의 고해가 날로 증심(정산종사법어, 『원불교전서』, 원불교출판사, 765쪽, 2011년)하였다”고 새겼을 정도이다. 아홉 명의 제자는 사람의 마음이 하늘의 마음이 되도록 까지 간절히 기도하였고 마침내 정신개벽을 이루어 내었다. 그 증거가 바로 흰 종이에 찍은 지장이 핏빛으로 나타난, 백지혈인(白紙血印)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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