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울안이만난사람)몽당연필로 그리는 희망이야기(2)
상태바
(한울안이만난사람)몽당연필로 그리는 희망이야기(2)
  • 한울안
  • 승인 2015.09.16 16: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연기자 권해효(조선학교를 후원하는 '몽당연필'대표)

박대성 편집장(이하 박) : 최근 개봉된 영화‘소수의견’을 봤습니다. 약간은 짜증스럽고 귀찮아하는모습의 판사역할이 인상적이더군요.



권해효 대표(이하 권) : 법조계 사람들이 제일 판사 같다고 하더라고요. ‘소수의견’을 보신분이 많지않았지만, 장르영화로서는 그럴 듯하게 만든 영화 같아요. 보통의 영화 속에서 판사라고 하는 특히한국이라는 정치 사회적인 환경속에서의 판사는 극단적으로 다뤄야 하는 경우가 많아요.



노골적으로 권력에 손에 들어간 판사, 아니면 불편부당(不偏不黨)한 완벽한 솔로몬 같은 사람이 나타나는 경우도 있죠. 물론 별로 본적은 없지만. 또 한 가지는 한국의 법정영화라는게, 장르로서 경험치가적어요. 왜냐하면 우리가 아는 외국 법정영화는 배심원제가 있는 서양의 공판중심의 영화입니다.한국의 법정영화가 흔치 않은 이유는 온전히 하나의 권위인 법관(法官)을 향해 바라보고, 변호사와검사가 토론을 해야 됩니다.



그래서 한국의 법정영화는 카메라에 담아도 별로 극적이지 않아요. 그런 점을 의식해서였는지 ‘소수의견’의 재판장면이 좀 다르게 보였던 같아요. 반면에 저는 한번도 법정에서 판사를 본 적도 없고 그리고 영화를 본 사람 역시 재판장에 들어간 사람도 많지 않을 거예요.



박: 본인 스스로 동의하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그간의 사회참여와 발언을 통해서 대중들은 대표님을 소셜테이너(Socialtainer : 사회와 현실에 참여하는 연예인)로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편향된 시각 때문에 일종의 손해를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거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권: 사실 그 점에 대해 특별한 생각을해본 적이 없어요. 소위 한국의 대중문화 쪽 사람들이 현실정치라는 공간과 선이 닿는 순간 안 좋은 기억들이 있는거죠.



80년대 이후에는 유력한 여권 정당에 차출되어 국회의원 배지를 달았던 선배들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건 좋은데 나중에‘정치판이 엉망이더라’라고 말하면서 왜 도로 나오는지 모르겠어요. 그러다보니 대중들이 문화예술계 사람들의 정치 참여를 어떤 당파적 태도와 상관없이 부정적 시선을 가지고 있는 건 사실입니다.



우리 사회가 한 사람을 어떤 틀에 넣지 않으면 못 견디나 봐요. 만나면‘어느 학교 나왔어?’,‘ 고향이 어디야?’, ‘어느 동네 살아?’하면서 학벌이나 성별의 틀에 넣습니다. 심지어 배우들에게 수준을 설정하고, 주연급이니 조연급이니 이렇게 구별을 합니다.



저는 공인(公人)이 아닙니다. 세법상개인사업자로 볼 수 있고, 저의 사적인 이익을 위해 애쓰는 사람이고, 그리고 좋아하는 작품을 하기 위해 애쓰는 사람입니다.


단지, 제가 하는 일이 일종의 공적인 영역과 겹쳐있고, 대중의 관심과 겹쳐지는 일이라 그런 평가를 받을 수도 있겠다 싶어요. 제가 어떤 정치적 선택을 하는 것은 그 위험부담을 고스란히 떠안는 일이니까요.



박: 대표님은 천주교 신자이시죠? 대표님의 종교관이랄까? 또는 종교 일반을 바라보는 시각을 듣고 싶습니다.



권: 성당에 나가지 않게 된지 오래됐어요. 저는 사실 그런 특별한 종교적 믿음이 없는 사람이에요.제가 제일 신봉하는 가치는‘합리성’입니다. 종교자체를 합리와 비합리의 대상을 보는 것은 의미 없는 일이지만, 군대에서 만난 후배가 2차 바티칸공의회(1962년~1965년까지 카톨릭의 혁신을 가져온 공적인회의)와 관련된 방향에 관해 자세히 들어 봐야한다며 권했습니다. 그렇다면 한번 나가보자. 모든 성서적인 표현에서 ‘예수’를‘사랑’으로 변화시킨 후 잠깐 성당에 나갈 수 있었어요.



박: 한국 사회에서 종교인이 세상을 걱정하는 게 아니라 세상이 종교를 걱정한다고 합니다. 원불교에 대한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쓴 소리도 좋고 방향 제시도 좋고요.


권: 전 원불교에 대해 잘 모르지만, 지금 원불교의 가장 큰 문제는‘너무 조용한 거 아닌가?’입니다.너무 조용해서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겁니다. 원불교의 외형적 성장을 요구하는건 아니지만 너무 점조직으로 은밀하고, 조용하게 존재하는 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어요.



원불교가 이제는 세상에 대해 소리를 좀 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예전에 원불교와 관련된 시설을방문했을 때 ‘아!여기서 또 하나의 기성조직이 만들어지는 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원불교는 전국적 조직을 가지고 있고, 폭넓은 외적 토대를 가지고 있는 종교임에도 뭔가 바른 소리를 낼 것 같은데 ‘왜 이렇게 조용하지?’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물론 사회적 이슈에 원불교 교무님들이 이전보다 많이 행동하는 걸 종종 보고 있어요. 그러나 이제는 일반 교도들도 적극적으로 결합을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박 : 따뜻한 조언 감사합니다. 늘 건승하시기를 기원하겠습니다.
권 : 감사합니다. 저희 조선학교에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끝)



(몽당연필 가입문의 02)322-5778)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