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신을 찾으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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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신을 찾으십니까?
  • 한울안신문
  • 승인 2015.11.01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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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우세관 교무 / 강원교구 김화교당


나에게 한 권의 경전이 있으니 지묵으로 된 것이 아니라, 한 글자도 없으나 항상 광명을 나툰다 하였으니 그것이 무슨 뜻인가.


의두요목의 마지막 20조 두 번째 시간입니다.


#1. 신의특징


자, 평범한 사람과 구분되는 하나님(신)이나 부처님의 특징이 있는데 뭘까요?


많이 있겠지만 딱 두 가지로 요약해 보면, 요술처럼 생각한대로 이루는 것과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동의합니까? 그런데 이 의두에서 이 두 가지가‘평범한 사람’에게도 있음을 알려 줍니다. 다시말해 평범한 사람과 하나님이나 부처님이 동격이라는 비밀을 알려줍니다. 시작해 봅시다.


#2. 글없이나투다


먼저‘나의 경전’이라는게 지묵으로 된게 아니라 한 글자도 없다고 했습니다. 말을 아무리 잘하고 글을 아무리 잘 써도 거울로 비추거나 사진으로 찍어서 보여주는 것 보다 분명하지는 않지요? 경전의 글은 애써 진리(하나님, 부처님)를 가리키고 있지만 한계가 분명한 수단일 뿐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알아듣게 하지는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말과 글을 그치고 사진을 찍어야 합니다. 왜곡이나 불완전함이 없이 (거울로) 비추어 봐야 합니다. 말과 글을 놓고 그대로 비추어 보는 것, 이걸 유식하게‘언어도단의 입정처’라고 합니다.


설계도가 뭘까요? 내가 생각하고 구상했던 것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을 말합니다. 이처럼 생각을 밖으로 표현해내는 것을‘나툰다’고 합니다. ‘나투다’는 말은‘나타낸다’는 말입니다.


말이나 글이 끊어진 자리라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말이 필요없고 오로지 행동으로, 실천으로, 그대로 나타낸다는 뜻입니다. 즉 거울이 그대로 비추어 내듯이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자리라는 겁니다.


오염된 중생들은 말만 하다가 말지요. 생각으로는 1등도 하고 싶고, 돈도 많이 벌고 싶고 하지만 생각 따로, 말 따로, 그리고 나타나는 것 따로지요? 그런데 절대자(神)는 생각한 것이 그대로 나타나고, 말 한 것이 그대로 나타납니다. 우리가 흔히 위력이라고 생각하는 마술과는 달라요. 쇼에 나타나는 마술은‘눈속임’이며, 예전에 몰랐으나 지금은 놀라움으로 나타나는 것 예컨대 비행기나 스마트폰은‘과학’입니다.


다시말해‘지묵이 없는 경전’은 말과 행동이 하나되는 자리를 그대로 나투어내는 것입니다. 신(神)이 따로 있지 않아요. 생각한 바를 실천으로 그대로 나툴 수 있으면, 다시 말해 말과 행동이 하나되는 자리를 만들어 내면 그게 바로 하나님이자 부처님이며 본래 면목입니다.


#3. 항상광명을


신들의 두 번째 특징은 영원히 안죽는거라 했지요. 불로초를 안먹어도 영원히 산다는 거예요. 이게‘유무초월의 생사문’입니다.



유무(有無)는 생노병사와 같이 변하는 것을 말합니다. 변화를 뛰어 넘는, 생사를 왔다 갔다 하는 문(門)이 있다면 영원히 사는 것이지요. 타임머신 같은 겁니다. 그게 있어요. 두려워서 자꾸 부정을 해서 탈이지만요.


우리가 착각을 해서 이 몸뚱아리로 영원히 사는 방법을 찾습니다. 하지만 정말로 착각입니다. 이 몸의 유효기간은 대략 100년입니다. 그래서 100년 뒤에는 다른 새 몸을 찾아 가면 되는 겁니다. 이렇게 하면 영원히 살지요.



그런데 우리는 100년만 살다가 이 몸이 가면 나 자신도 끝나는 걸로 생각을 해요. 그래서 선업을 쌓으러 고생해봐야 뭐하냐 하면서 함부로 살지요. 그런 어리석음 때문에 내생을 망칩니다. 영원히 산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다만이 몸은 100년씩만 사용한다는 것. 그뒤에는 지은 바에 따라 새 몸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변화에 집착하지 않으면 된다는 말입니다. 눈에 보이는 이것에만 집착하지 않으면 우리는 자꾸 변화하며 영원히 삽니다.


그래서 죽지않고‘항상’광명을 나툰다고 했습니다.


#4. 신이따로있나?


원불교식으로 표현을 해봅시다.


‘나에게 있는 한 권의 경전’은‘일원상 진리’즉 변치않는 성품을 말합니다.



‘한 글자도 없이 광명을 나툰다’는 말은‘언어도단의 입정처’로 본래 자리를 그대로 나투어 내는 것입니다. ‘항상’은 '유무초월의 생사문’으로 잠깐만이 아니라 영원히 그렇게 한다는 말입니다.
영원히 본래 자리를 떠나지 않고 세상사에 임한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살면 중생이 아니라 내가 신과 동격이 되는 것입니다. ‘감히 신을 운운’이 아니라‘원래대로 못산 내가 만들어 낸 것이 신’이며, ‘이제야 하나로 합일’되니‘나와 신이 동격’이라는 겁니다. 어찌‘나’를 되찾으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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