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림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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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4.08.0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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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림교당 사회자...박홍원 교도

“가진 마음을 버리는 사람은 성인이요, 비뚤어진 마음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것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지난 18일 신림교당에서 박홍원 교도가 법회에 앞서 마음을 여는 한마디를 하자, 120여 명 교도들은 법회 시작 전부터 진리 앞에 법열로 충만해짐을 느낀다. 그가 법회에서 사회를 본 것은 벌써 3년째.
온전하게 사회를 보는 시간은 10분이 채 안되지만, 그는 토요일 저녁 10시면 꼬박 2시간씩 인터넷을 이 잡듯 뒤져가며 다음날 사회의 시나리오를 준비한다.
아무리 애를써도 일년이면 3분의 1은 빠지게 되는 법회. 7년 전 그는 ‘어떻게 하면 법회를 안 빠질까?" 연구를 하다 주보를 나누어주는 일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4년이 지나면서 교당 식구들과 얼굴을 알아갈 무렵, 사회자 2명이 모두 사회를 못 볼 형편에 처했고 그는 ‘사회를 보는 것이야말로 확실하게 법회출석을 높일 방법이다" 싶어 사회를 맡게 되었다.
지금은 누구나 알아주는 성실한 일원가족의 가장이지만, 박홍원 교도(46세)는 한때 천주교 세례까지 받은 천주교 신자 ‘박시몬" 이었다. 원불교의 ‘원"자도 몰랐던 그가 원불교에 입교하게 된 것은 바로 그의 아내 서인숙 교도(44세)가 장시간을 두고 작업(?)한 결과라고.
부인 서인숙 교도는 처녀시절 전무출신을 권유받기도 했다. 그런데 16번째 선에서 박 교도를 만났고, 첫눈에 서로 반해 전무출신을 포기하고 결혼할 맘을 먹었단다. 두 사람이 결혼해서 큰아이가 5살 때(87년) 아내는 가까운 유치원을 마다하고 부산 대연교당 원광유치원에 아이를 보냈고, 그는 유치원 아빠참관수업에서 처음 원불교란 종교를 들었고, 교당도 처음 가봤다.
아내가 아이 둘을 데리고 일요일 법회에 다니기 시작한 것을 말리지 않았던 그는, 아내가 자꾸 입교를 권유하자 아내의 체면 때문에 마지못해 이름만 올리라고 승낙했다. 그 때가 1994년도.
1년 쯤 지난 겨울 어느 날 외풍이 심한 단독주택에 살고 있던 때, 이불 속에 누워 TV를 보고 있던 그는 아내에게 장난삼아 물어보았다.
“정말 날 부처로 모신다면 부처가 화장실에 갈 수는 없으니 요강을 갖다달라"
아내는 “당신이 부처 되고 싶다면 그렇게 하죠" 라며 선선히 다락에 가서 요강을 가져다 주었다.
아내의 모습에 내심 놀란 그는 원불교에 대한 생각을 바꿨고, 이때부터 교당에 나가게 되었다. 말도 안되는 질문에도 진지하게 대답해 준 영진 교무는 의심많던 그의 마음을 열게 했고, 게송을 프린트로 뽑아 책상 앞에 붙여놓는가 하면 급기야는 “원불교가 아니면 내가 어찌 부처가 되리라는 서원을 세웠겠는가?"라며 96년엔 조 교무께 감사하다는 신앙수행담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신림교당은(안민순 교무) 그가 (주) 캔비텍 이사로 발령받아 96년말 서울로 이사오면서 다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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