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암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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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4.08.0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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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을 한결같이, 나보다 남을 위해-김유영 교도
“대소변도 아직 못 가리는 딸아이를 방 안에 요강과 함께 두고, 무연고 할머니 서류 떼어다 극빈자 자격으로 만들어 주려고 돌아다니곤 했죠."
요즘처럼 각박한 세상에 10년 이상 한결같은 봉사활동을 해와 그야말로 ‘봉사인생"이라고 불리는 김유영 교도(안암교당, 55세). 막상 김 교도는 “직장을 못 다니니까 봉사가 되더라"고 수줍어한다. 생색 따위는 안중에도 없고 봉공회 수첩조차 들고 다니지 않는다. 그의 신조는 다만 “집안 일은 미뤄도 봉사는 미루지 않는다"였다.
불암초등학교 녹색어머니회 13년 봉사, 중계본동 부녀회 10년째, 안암교당(서진화 교무) 봉공회장 6년째, 시립노인요양원, 천애재활원, 늘편한집 목욕봉사, 신내동 장애인복지관 야외수업 학습보조, 중계3단지의 중계종합사회복지관 치매노인 학습보조 등 대부분 그녀가 10년 넘게 계속해 오고 있는 봉사들이다.
큰 아들을 초등학교에 입학시키면서 녹색어머니 교통봉사를 시작해 13년 동안 계속한 그녀는 아들(현재 28세)을 등교시키러 나갔다가 ‘아이가 채 발을 집어넣기도 전에 출발하는 버스를 보고 안되겠다" 싶어 봉사를 시작했다. 당시 그녀는 막내(현재 16세)를 임신한 몸이었는데, 뱃 속에 있던 아이가 중학생이 될 때까지 하루도 거르지 않고 계속한 것이다.
7시50분부터 9시까지 교통봉사를 하려면, 새벽 5시에 기상해 도시락 7개를 싸고 늦어도 7시까지 식구들 식사준비를 마쳐야 했다고. 그는 ‘어떤 팔자가 시간 맞춰 조석 심고를 올리나’부러워하며 “오늘도 이렇게 바빠서 뛰고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법신불 사은님"하며 심고 올리기가 다반사였다.
교통봉사가 끝나면 10시부터 5시까지 부녀회 봉사를 비롯, 각종 자발적 봉사를 했고, 해질 무렵이면 자식들이 기다리는 집에 들어가 12시까지 집안 일을 했고 시아버지의 모시 두루마기 수발까지 군말없이 해냈다.
남을 위해 봉사하면서“나같이 복있는 사람은 없다"며 오히려 감사했다는 김 교도는 “남을 위해 살다보면 정신과 육신의 건강을 오히려 받게된다"며 웃을 따름이다.
남편 역시 김 교도가 한밤중에 불쌍한 할머니를 응급실로 모셔가느라 앰뷸런스를 부르면, 할머니를 업어다 드리기 위해 아내를 따라나섰고, 정부 지원이라도 받게 하려고 증명서류를 떼야 할 일이 있으면 생판 모르는 동네에 가서 헤매야 할 아내가 안쓰러워 길 안내를 자청했다고 한다.
베풀 줄 아는 어머니를 보고 자란 7남매는 약속이라도 한것처럼 어느 하나 속 썩이는 자식 없이 반듯하게 자라 자랑스럽기만 하다. 그 흔한 과외 한번 안 시켰건만 일곱 중 2명이 서울대에 들어갔다. 고3때도 엄마가 봉사하러 나가면 알아서 할아버지 진지까지 봐드리는 신통한 자식들이다. 올해 다섯째가 고3이라 12시에 오는데, 형제들이 알아서 순번을 정해 버스 종점까지 마중을 나갈 정도로 우애가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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