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동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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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4.11.0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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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사가 둘이 아닌 또 하나의 확인-박도정
긴 여름의 무더위를 지나 계절은 올해도 어김없이 가을을 느끼게 한다. 멀고 높은 산 정상에서부터 붉고 누렇게 변하여 내 집앞까지도 물들이리라. 여전히 아름다운 자태로.
단풍현상은 낙엽수가 겨울을 나기 위한 자구책의 결과라 한다. 즉, 삶을 영위하기 위한 과정이라는 것이다. 나무는 햇빛과 수분, 이산화탄소 등과 함께 잎의 광합성 작용에 의한 양분으로 살아간다고 알고 있다. 겨울에는 온도가 낮고 수분이 부족해 광합성을 제대로 할 수 없으며, 만약 잎이 그대로 있으면 잎의 기공을 통한 수분배출로 나무가 동사하게 된다고 한다.
小가 죽어 大의 삶을 유지하게 되는 것이다. 곧 죽음으로서 사는 것. 그것은 동시적 상황이고 행위 아닌가!
가을로 접어들면, 나무는 스스로 기공을 닫아 잎에 공급되는 수분을 차단하고, 기공이 막힌 후에는 나뭇잎은 일정 시점까지 양분을 만들어 그로 인한 화학작용으로 엽록소가 파괴되고 가려진 색소나 없던 색소가 나타나 소위 단풍이 들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것의 아름다움을 찬양하고, 감사를 드리며 즐거이 바라본다. 잎의 죽음의 행위를!
인간의 죽음도 법신불이나 大 자리에서 보면 아름다운 행위인가? 단풍의 아름다움 여부를 떠나 분명한 것은 그들의 삶의 전제라는 것이다.
그들이나 우리나 은혜의 질서체계, 진리의 순화체계에서 본다면 하나의 아름답고 고귀한 진리적 행위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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