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촌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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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5.01.20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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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촌교당 신입교도 박보은 감상담
이십 대 중반까지 기독교는 내 인생의 전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턴가 기독교 특유의 ‘원죄의식’과 ‘유일신 신앙’에 대해 자꾸 의심이 가고 회의하는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교리와 일상 생활이 함께 가지 못하는 이중성과, 타종교에 대해 지나칠 정도로 배타적인 자세를 보면 울컥 화가 치밀어 오르기도 했다. 갈등과 방황과 자책을 일삼던 중 단전호흡을 하는 기 수련 단체를 알게 되었고 한동안 그 수련에 푹 빠져들었다. 기 수련을 통해서 교회에서 느꼈던 의심과 회의가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지만 마음 한구석에 쌓여진 답답함은 어쩔 수 없었다.
기 수련과도 점점 멀어지던 찰라, 어머니께서 말기 암으로 갑자기 돌아가셨다. 나이만 찼지 철부지나 다름없던 내게 어머니의 죽음은 크나 큰 충격이었다. 맏딸인 내가 당장에 가정 살림을 맡아 꾸려가야 했는데, 어머니 빈 자리를 채워가려니 힘든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게다가 하루에도 몇 번씩 죽음에 대한 공포와 허무감이 기승을 부리고,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죄책감과 그리움으로 요란해지고, 아버지와 두 동생들에 대한 원망심과 안쓰러움에 휘둘리는 통에 견디다 못해 몸까지 아프게 되었다. 그 와중에 인생이 도대체 무언가? 어찌 살아야 하나? 하는 근원적인 물음도 끝없이 밀려왔다 밀려가곤 했다. 이러다간 안 되겠다 싶어 치유를 받고 해답을 구하고자 이런 저런 수련 단체와 절들을 찾아다니던 중 우연히 공황교당 교무님 정토이신 진선님을 만나게 되었다. 그분의 인도로 원불교를 처음 접하게 되었고 그곳 교도인 정원님을 통해 서울 정전 마음공부 모임에도 나가게 되었다.
그렇지만 죽음의 문제는 내게 늘 수수께끼로 남아 있었고 그러던 어느 날 마음공부 모임에 오신 장산법사님의 권유로 어머니 천도재를 드리게 되었다. 그 계기로 입교를 하여 지금은 신촌교당에 나가고 있다. 처음엔 법회 분위기부터 시작해 모든 것이 다 낯설었지만 일상수행의 요법만큼은 구절구절이 너무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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