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포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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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5.02.03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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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가 모여사는 원불교 가족...반포교당 김성훈 가족
“할아버지 할머니 교당 가요!”
일요일 아침이면 어른들보다 더 서두르는 손자와 손녀의 등쌀에 김성훈, 강연훈 부부의 마음은 벌써 교당에 가 있다. 김성훈 교도의 부인(강연훈)은 반포교당 봉공회장이고, 맏사위(김원술)는 사회를 보고, 첫 손자인 김대종(초등학교 5학년)군은 성가 반주를 맡고 있어 일요일이면 늘 마음이 바쁘다.

저녁 9시반이면 목탁치며 심고시간을 알리는 외손녀
친구랑 집에서 놀고 있으라고 해도 법회에 꼭 따라 나오는 손녀(김도준)는 저녁 9시 반이면 목탁을 두드리며 가족들에게 심고시간임을 알린다. 유치원에서 소풍을 다녀와 잠이 쏟아지는 날이면 “9시 반 심고를 9시로 앞당기자“고 조르는 도준이는 아주 어려서부터 어른들이 20분 씩 선을 해도 울지 않고 조용히 있어 교당 어른들로부터 “신통하다”는 칭찬을 많이 들었다. 도준이가 법회 시간 내내 앉아 있는 곳은 엄마 옆도, 외할머니 옆도 아닌 외할아버지 옆자리. 그만큼 외할아버지와 일곱 살 손녀의 사랑은 각별하다.
도준이의 오빠 대종이가 성가 반주를 시작한 것은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한지 1년,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처음엔 일요일에 부를 성가를 미리 알아내 피나게 연습해가며 시작했다. 지금은 다른 사람에게 피아노 반주를 맡기자고 해도 “싫다”면서, “나중에 여동생에게 물려주겠다”고 틈틈이 집에서 여동생에게 성가 반주를 가르치곤 한다.
두 남매의 엄마(김민영 교도)는 서울대 약학과 85학번으로 ‘서원회’에서 남편을 만났는데 어려서부터 영특해 항상 부모의 자랑거리였다. 하지만 자랑스런 딸이 아버지를 가장 기쁘게 한 것은 “서원회장인 선배와 결혼하겠다”고 말했을 때였다고. 고등학교 시절 의형제를 맺은 박정훈 전 서울교구장의 주례로 서울교구청에서 큰 딸을 결혼시킬 때 김성훈 교도는 어깨춤이 절로 나왔다고 회상한다.
한편, 10년째 사회를 보고 있는 맏사위(김원술 교도)는 이 집안에서 가장 오래된 반포교당 고참으로 서울대에 입학하면서 20년 째 반포교당에 다니고 있다. 김원술 교도는 “장인 어른이 중심을 잘 잡아주셔서 우리 집안의 원불교 뿌리가 튼튼하다”고 자랑한다. IT관련 벤처기업의 이사로 있는 사위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와중에도 6년 전부터는 교당 주보까지 만들고 있어 소리 없이 일하는 일꾼으로 칭찬받고 있다고.

내가 원불교도라는 것을
한시도 잊어본 적없어 ….
고향이 남원인 김성훈 교도는 학생 시절 남원교당에 계시던 양도신 종사의 법력을 흠모해 입교했다. 6.25를 겪으면서 학업을 중단해야 했던 그는 당시 전주여고를 다니던 박청수 교무(8촌 조카)를 보며 학업을 계속할 뜻을 불태웠고, 후일 전주고, 전주여고 원불교 동아리인 ‘연화촌’ 7대 회장을 맡기도 했다. “자녀들이 대학에 진학하면서 가족 모두가 서울로 이사 가고 나는 무주, 진안, 부안으로 발령받는 등 타지에서 공직 생활을 하느라 지속적으로 출석하는 교당은 없었다”는 그는 “비록 교당에 안 나가도 내가 원불교도라는 것은 한시도 잊어본 적이 없다”면서 “가치관이 형성되는 성장기인 중고등학교 때 학생회 활동을 왕성하게 했던 것이 내 인생에 많은 도움이 됐다”고 강조했다. “담배나 술을 처음부터 멀리해 올바른 습관을 형성할 수 있었고, 대부분 친한 사람들이 모두 종교에서 비롯된 인연들이라 원불교 안에서 생활하게 된다”는 것이 학생회 활동을 중시하는 그의 지론.
“지금까지 무탈하게 살아온 것이 모두 사은님 은혜 덕분”이라고 감사해하는 그는 결혼하면서 바로 아내를 입교시켰고, 어머니도 입교시켰다. 그는 정년퇴임 후 “아내와 함께 마음공부에 전념하고 있다”면서 올해 봉공회장으로 선출된 아내(강연훈 교도)를 함께 힘닿는 대로 교당 일을 도울 생각이다.
서원정 기자 swon@won.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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