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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울안신문
  • 승인 2001.07.28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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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전통 공예"매듭의 멋"


김희진"한국매듭연구회 회장


타고난 끼
반갑습니다. 생활문화와 우리의 전통에 대해서 강연을 부탁하셨는데 제가 직접 하고 있는 매듭에 대해 설명하고 사진을 통해 매듭전통의 멋을 느껴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태어날 때부터 남보다 손재주를 타고난 것 같습니다. 어릴 적부터 손이 가만히 있으면 심심해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어렸을 때 아침 먹기 전 짧은 시간에는 뜨개질을 하거나 긴 시간에는 무언가를 자꾸 만들어 버릇하였습니다. 손에 아무거나 쥐어져있지 않으면 안심이 되지 않더군요. 8.15 해방이후 사회가 불안해지자 황해도에서 사업을 하시던 아버지 손을 잡고 서울로 내려오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딸인 저에게 그다지 사회적 진출을 바라지 않으셨나 봅니다. 저는 뭔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거라는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편물, 자수 등 손에 닿는대로 했습니다. 손재주가 있어서인지 무엇이든 빨리 배웠습니다. 그런데 배우고 나면 그렇게 빨리 싫증이 나더군요.

훌륭한 스승을 만나다
우연찮게 한국일보 문화재 논설위원의 글을 보게 되었습니다. 신문 반절지에 해당하는 아주 큰 기사였는데 ‘화각전’의 전수자가 없어 맥이 끊겨간다고 누가 이어줄 사람이 없겠는가? 라고 쓰여있더군요. ‘아! 저거다’ 저는 그 길로 논설위원인 이영애 선생님을 찾아가서 제가 그 일을 할 수 없겠는가 물어보았습니다. 그러자 이영애 선생님이 젊은 처자가 산골에 가서 그걸 배울 수 있겠는가? 라고 물으시며 매듭하시는 정영수 선생님께 소개를 시켜 주더군요. 제가 정영수 선생님을 처음 뵐 때 상여에 쓰는 매듭을 달고 계셨는데 그것을 보고 정신을 잃어 버렸습니다. 삼원색과 매듭의 멋에 제 스스로 홀리는 듯 했습니다. 그 후로 저는 매듭의 포로가 되었습니다. 선생님이 기본적인 매듭을 저에게 보여주시면서 해보라고 하셨는데 어찌된 일인지 매듭도 빨리 배웠습니다. 선생님이 참 신기해 하시더군요. 저도 속으로 이렇게 빨리 배우는 사람이 없었다는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고 내심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 후로 이영애 선생님이 저를 불러서 한국문화의 멋에 대해 이야기도 해 주시고 책도 권해 주셨습니다. 한국명으로 ‘유종렬’이라는 일본인의 책을 대여섯권 읽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때 이영애 선생님은 전통공예를 하는 사람으로서 전통의 멋에 대해 눈뜨기를 바라셨나 봅니다. 저는 매듭과 전통에 대한 책을 통해 매듭전통에 대해 눈을 떠 갔습니다. 공부하면 할수록 매듭의 매력에 푹 빠져 들어갔습니다. 정영수 선생님께 매듭을 배우던 중 남원에 매듭을 하시는 분이 있다고 해서 내려갔습니다. 그 곳에 가서 매듭을 배우고 싶다고 했더니 먼지가 풀풀나는 수동식 매듭틀을 내어 오시더라구요. 전 그 분이 하시는 걸 천천히 살펴 보았습니다. 주위 어르신네들이 배우는데 6개월은 걸릴거라고 하셨는데 골똘히 살핀 탓인지 고드레 줄 8개가 교차해서 한다는 것을 금방 터득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그 자리에서 매듭을 짜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주위 분들이 참 신기하다고 하시며 “서울에서 매듭 만드는 학원 만들거냐”면서 물어보시더라구요. 젊은 처자가 산골에 나타나서 매듭을 그렇게 빨리 만들어내니 모두들 놀라우셨나봅니다. 점점 매듭공부에 재미가 붙어갈 즈음 인사동을 돌아다니는데 제가 알 수 없는 매듭이 발견되더라구요. 선생님께 물어도 모르시겠다고 하시고 참 알 길이 없더라구요. 그러던 중 대구에 요양하시는 분이 매듭을 하신다길래 찾아 갔습니다. 그런데 그 분이 제가 알고 싶어하던 매듭을 하시더라구요. 너무 놀랍고 감사했습니다. 저는 여러 선생님들의 솜씨를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되어 차차 매듭에 대한 모든 것을 종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매듭전통의 계승
매듭은 금속같은 유물과는 달리 대수롭지 않게 여겨졌나 봅니다. 한국에는 유물이 거의 없고 기록도 거의 없습니다. 매듭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전통 공예입니다. 그래서 매듭을 보존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가끔 외국에 가면 ‘섬유 박물관’을 찾는데 체계적으로 연구 보존되어 있는 것을 보고 참 부러웠습니다. 저는 섬유박물관을 짓는게 가장 큰 소원입니다. 한국매듭연구회를 만든 이유도 매듭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와 보존을 위한 길입니다. 매듭전통을 계승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한국 매듭의 멋에 눈 뜨고 보존하는 일이 가장 시급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나무 한그루 한그루가 숲이 되듯이 전통의 계승이라는 것도 한 사람 한사람이 한국의 멋에 눈 뜰 때 이룰 수 있는 것이라고 봅니다. 매듭이 아주 미약하지만 한국 멋의 단편을 보여줄 수 있는 공예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정리: 전재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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