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가교역자협의회 특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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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울안신문
  • 승인 2002.07.18 18: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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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의 화두로 하나되는 21세기


정현경"신학박사


내가 아는 원불교
만나서 반갑습니다.
제가 원불교의 펜입니다. 이화여대 있을 때 교무님들이 제 강의를 들으러 왔습니다. 한국의
종교에 대해 배우면서 소태산 선생님과 같은 사람이 어떻게 그 당시에 나올 수 있었을까?
어떤 계시를 받지 않았을까? 어떻게 이런 깨달음을 갖게 되셨을까하면서 대단히 궁금해했던
적이 있었어요. 또 남녀평등, 만민평등에 대한 그런 생각뿐만 아니시라 그것을 구체적으로
가르치는 방법도 약간 들었는데 여자들이 대외적으로 말을 하지 못하니까 천막을 치고 말하
는 법을 회전시키셨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제가 아주 참 많은 궁금증과 배우고 싶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유엔에서 여성관계에 대해 일
하다가 이정호 교무님을 만나서 뉴욕에 있는 원불교교당에 가서 많이 놀랐습니다. 그래서
학생들을 많이 보냈습니다. 그래서 많은 학생들이 뉴욕 맨하튼에 있는 원불교 교당에 많이
나가고 있습니다. 그런 좋은 한국문화, 종교에 대해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셔서 감
사하구요. 제가 캄보디아에 지뢰퇴치를 위해서 갔었는데 원불교가 캄보디아에서 많은 선교
를 하고 계시는 것 같아요. 원불교에서 캄보디아에 고아원을 지으시고 학생들을 도와주고
있다고 하시더군요. 정말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는 종교인데 그 동안 많은 성장을 했고, 교
세에 비해 많은 활동을 하시는 것에 대해 같은 신앙인으로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종교
의 첫 번째 비젼에 충실해 하시는 것에 대해 대단히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여러분과 21세기의 문명비젼과 신앙인들이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에 대한 고민을 나누
고 싶습니다.

9.11테러와 종교화해
제가 사는 동네가 맨하탄이었습니다. 여러분들도 다들 아시는 9.11사태가 있던 곳입니다. 그
전날 논문을 쓰고 늦게까지 자고 있었는데 친구들이 전화를 해서 TV를 보니 쌍둥이 빌딩
이 무너지고 있더군요. 저는 그것을 보면서 두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주의 경고와 미국
의 자본근본주의와 권력근본주의의 세력과 이슬람의 종교근본주의가 맞붙고 있는 것 같았습
니다. 또 이 두 근본주의는 남성중심주의가 부딪혀서 큰 사고를 내고 있는 듯 했습니다. 그
런데 이런 군사, 종교 근본주의가 부딪히면 결국은 서로 죽이고, 해치는 사고가 날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자기가 갖고 있는 것만 옳다고 얘기할 때 우리는 부딪
힐 수밖에 없는 것이죠, 미국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너무나 큰 비극적이지만, 이슬람의 한많
은 세계역사에서 보면 미국의 테러범이지만 민족의 영웅이죠. 이슬람의 입장에서 보면, 이렇
게 멋있게 서구의 교만과 권력을 한칼에 날렸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미국 돈의 상징인 무역센터와 권력의 상징인 펜타곤을 부쉈다는 것은 세계역사에 남을 일
인 것 같습니다. 정말 너무나 슬픈 일이 일어났고, 정말 비극이였습니다. 더 큰 비극은 그때
죽은 사람들이 사실 이슬람사람들이 미워하는 미국의 군사, 경제, 권력의 중심자들이 아니였
습니다. 조금 더 잘 살아보려는 세계이민자들이였습니다. 아침에 무역센터에 출근한 많은 사
람들은 주로 아프리카에서온 청소부, 커피를 배달하는 남미의 배달원, 중국에서 온 청소부
아줌마라든지 그런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이 더 많았습니다. 그리고 큰 회사들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라고 할지라도 세력이 큰 사람들은 점심후에 출근을 합니다. 9시도 되기 전에 온
사람들은 말단사원들, 힘없는 사람들이였습니다. 뉴욕을 야수의 뱃속이라고들 하지만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어메리칸 드림’을 찾아서 오는 꿈의 공화국이라고 합니다. 수많은 외국인
들이 자기의 다름들을 서로 양보하면서 그 다름 속에서도 다양성과 화해를 하면서 잘 살아
보겠다는 꿈들이 무너지는 순간이였습니다. 이런 가슴아픈 일들이 있었지만 반면에 좋은 일
은 미국인들이 처음으로 종교적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미국은 항상 세력의 중심에 있었기
때문에 두려움이 없는 나라였는데 처음으로 이런 질문들을 하게되었습니다. ‘왜 저 사람들
이 우리들을 이렇게 미워할까? 도대체 우리가 무슨 짓을 했기에 이렇게 젊은 꿈 많은 청년
들이 자신의 몸을 산화하면서 테러리스트가 되어서 죽을까’하는 것이 너무나 궁금하다해서
최초로 미국의 신학대학교에서 이슬람을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세계종교의 화해라
는 면에서 굉장히 좋은 씨를 뿌렸다고 생각합니다. 그 누구도 다른 종교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모든 학교에 이슬람과목이 생기고 세계의 다른 종교에 대해
배우려고 하는 그런 마음이 생겼습니다.
저는 이런 것들이 너무나 큰 수확이라고 생각합니다. 뉴욕사람들이 종교적이 되어 조금 더
친절해지고, 삶과 죽음의 의미에 대해 알아보고, 수많은 공원들이 간이성당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초와 꽃을 가지고 가서 자기식대로 기도문을 써서 붙이고, 죽은 부모들이 ‘내 자
식의 이름으로 다른 자식들을 죽이지 말라’며 아프간전쟁반대시위도 하고, 평화시위가 일
어나고, 그리고 죽은 자녀의 가족들이 아프가니스탄으로 가서 미국국력의 의해서 자녀가 죽
은 가족들과 자매결연을 맺는 아름다운 일도 많이 일어났습니다.
사람들이 뉴욕테러사건 때문에 군사주의가 더 판을 치게 되었고, 세계가 더 폭력의 시대로
들어갈 것이라고들 말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다르게 생각합니다. 우리 나라 메스컴에 알려지
지 않아서 그렇지 정말 이 사건 때문에 아름다운 모습의 인간과 인간의 만남이 이루어지고
여태까지 세계의 중심에 살면서 전혀 다른 종교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이 마음을 열게 되기
도 하였습니다. 저는 이것이 우주의 경고의 사건이라고 봅니다. 이제 마음을 돌려 서로를 받
아들이고 양보하고 살면 우리가 새로운 삶을 살 것이고, 아니면 세계가 멸망하고 말 것이라
는 어떤 그런 경고를 하시는 것 같습니다.
저는 신학자로써 이런 생각을 합니다. 19세기가 계몽의 시대, 과학의 시대, 진리가 무엇인가
를 알기 위해 과학이 발달하고 학문이 발달한 시대였다면 20세기는 세계의 많은 식민지들이
해방이 되고 인권이 존중되고 평화운동이 일어나는 정의의 세계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21세기는 어떤 세기일까요? 진(眞)을 향한 갈등, 선(善)을 향한 투쟁, 이런 것들이 수렴되면
서 아름다움이라는 화두로 전세계 사람들이 하나가 되어야 하는 세기가 21세기라고 생각합
니다.
그런 면에서 21세기 시작이 비극적 사건으로 시작되었지만 그러나 더 큰 아름다움과 더 큰
평화가 오기 위한 전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에코페미니스트와 페미니즘
저는 에코페미니스트입니다. 이것은 자연에 대한 억압과 여성에 대한 억압이 같은 선상에
있다고 보면서 여성해방과 자연해방이 같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 에코페미니스트의 비젼은 여태까지 가부장적인 문화는 지배와 종속이 우리문화의 상징이
였습니다. 그래서 예전 가부장제 문화적 상징은 세모꼴의 피라밋이였습니다. 피라밋의 제일
위에 권력자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여태까지 백인 남성 엘리트가 꼭대기에 있었고, 그 밑에
백인 여성, 그 밑에 유색 인종 등으로 이루어지는 존재의 화살이 힘이 적은 사람은 억압당
하는 지배와 종속의 관계에 있었습니다. 이때는 경쟁, 적자생존, 무한경쟁이 우리의 어떤 문
화적인 가치였습니다. 그런데 저는 21세기의 비젼, 제가 말하는 에코페미니스트 생명여성주
의의 비젼은 바로 피라밋이 동그란 원으로 바뀌는 이러한 문명의 비젼을 생명여성주의의 생
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원불교의 일원상은 아직 잘 모르겠지만 생명여성주의에서 말하는 것
과 일치하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원으로 바꾸자는 것은 모든 존재가 원의 중심으로부터 같은 반지름에 있는 생명평등
주의, 생명의 평화를 이루기 위해 원을 생명의 상징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21세기가 세
계의 많은 예언자들이 여성의 세계라고 했습니다. 소태산 선생님께서도 그 중 한 분이기도
하지만, 한국의 신흥종교에서도 보면 이러한 힘의 세력이 어떤 양의 세계가 치유받기 위해
서는 음의 세계, 여성의 힘이 올라와서 한쪽으로 기울었던 지배, 종속의 양의 문화를 보살핌
과 나눔이라는 음의 문화에 의해서 균형잡고 치유하는 그러한 세계로 들어갈 것이라고 했습
니다.
서양에서도 비슷한 예언이 있었습니다. 미국의 셰이커라는 기독교의 종파인데 그분들이 첫
번째 예수는 남자의 몸을 입고 와서 인간을 구원하는 사역을 시작하셨는데 완성을 못하고
돌아가셨다는 거죠. 두 번째 예수는 여자이며 첫 번째 예수가 못 이룬 일을 대신하여 문명
을 완성시킬 것이라는 예언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동서양의 예언이 만나는 시기가 21세기가
될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에릭프럼이라는 사회심리학자가 20세기의 혁명 중에 가장 진보
적인 것은 여성해방운동이라고 하며 문화적인 전통이 21세기를 이끄는 이념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무서운 여자들이, 미운 여자들이 남자들에게 사랑을 받지
못해서 일으키는 운동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런데 저를 보시는 사람들이 생각
했던 것보다 참 다르게 생겼다고 합니다. 그래서 전 ‘사실은 뿔과 꼬리는 집에 두고 왔
다’고 농담을 하곤 합니다.
이화여대에서 여성학을 가르칠 때도 학생들에게 ‘여성학을 왜 들으러 왔냐, 페미니스트 손
들어 보라’고 하면 아무도 안 들어요. 그러면 ‘왜 안 들어’하면 학생들이 페미니스트는
못생긴 여자들이고 남자를 혐오하는 여자들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손을 들지 않는다는 거에
요. 제가 농담으로 “나 어때? 나도 이쁘잖아? 나도 페미니스트야”하면서 얘기를 하는데
“정말 자신있는 여자, 생명력이 있는 여자, 그리고 그 여자만 보면 따라가고 싶은 여자 이
런 여자들이 페미니스트여야 된다. 내가 만난 세계의 페미니스트들도 그런 여자들이였다. 예
수님도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라고 했다. 나는 페미니스트들은 좋아서 좇아가는 그런 사람
이 되어야 한다”는 농담을 했어요.
페미니즘은 절대 남성에 대항하는 그런 운동이 아닌데 남성중심의 메스컴에서 많이 왜곡된
것 같아요. 페미니즘은 만민평등사상입니다. 남자와 여자의 평등, 백인과 흑인, 이성애자와
동성애자, 인간과 자연도 서로 평등해야 한다고 믿는 그것이 진정한 페미니즘입니다.

살림이스트
그래서 제가 페미니즘이 오해가 많아서 저의 책에다가 한국적인 새로운 이름으로 살림이스
트로 만들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한국이 세계로 가지고 나갈 가장 아름다운 언어가 살림
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한국의 어머니들이 살림살이 하시면서 밥하고, 청소하고, 곡식도
만들고 가꾸고 하는 등 우리를 하루하루 살게 하는 그 사랑의 행동이 살림이였습니다.
저는 ‘우리는 철학적, 우주적으로 더 크게 만들어야 된다. 살림하는 모든 사람들은 살림이
스트다. 이것은 또 모든 이 세상의 죽임당하는 사람을 살려내는 사람들이다. 그 사람들이 다
살림이스트다’이런 말을 하면서 죽기 전에 옥스퍼드 사전에 고유명사로 들어가길 꿈꾸고
있습니다. 정말 그렇게 만들기 위해서 살림이스트라는 비젼을 가지고 세계에 나가서 한국의
여성운동을 퍼뜨리려 합니다. 저는 너무나 아름다운 사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내 가족
만이 아니라 더러운 정치도 청소하고 내 가족만 잘 먹여 살리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도
먹여 살리고, 내 집만 청소하는 것이 아니라 더러워진 산과 강도, 더러운 경제도 청소하는
이런 모든 살려내는 사람이 살림이스트라고 생각하고, 특히 어떤 종교를 믿든 모든 종교는
정말 살아있는 태초의 해방의 메시지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많은 종교가 왜곡되어 있습니
다. 종교 때문에 평화가 오기보다는 너무 많은 싸움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21세기는 종교인
들부터 다 살림이스트가 되어 종교 때문에 싸움은 안 한다고 해야 합니다.
제가 아름다운 이야기를 한번 들었습니다. 종교간 대화를 한다고 하면서 개신교에서 “불교
에서는 기막힌 진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역시 구원은 예수님만으로...”하면서 마지막에 그러
나를 붙힙니다. 신부님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그때 성철스님이 한마디도 하지 않고 계
셨는데 사회자가 물었습니다. “스님은 종교간 대화 동안 한마디도 안 하셨는데 여기서 밥
도 드셨는데 밥값으로 한마디만 해 주십시오”하자 성철스님이 가만히 계시다가 “만약 종
교간에 진정한 이해와 평화가 올 수 있다면 우리 불교는 영원히 없어져도 괜찮습니다”하셨
습니다. 이처럼 깊은 마음, 품는 마음이 21세기 마음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름다운 21세기를 위한 화두
그래서 이런 21세기를 만들어가면서 기독교 신학자로서 여러 고민을 하는데요. 그 고민 중
에 가장 큰 화두가 3개가 있는데 첫 번째 화두는 무섭게 일어나고 있는 지구화에 대해서 어
떻게 전통성, 정체성을 지키면서 동시에 세계화와 대화할 수 있을까하는 그 정체성을 만들
어 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다음은 극단적인 자본주의가 만들어내는 무한생산과 무한소비 속에서의 이 지구의 죽음,
지금 생태계가 빙하기보다 종이 빨리 없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지구의 죽음의 문제에 대해
종교인들이 어떻게 대응해가야 하는가입니다.
세 번째가 다름의 정치학을 넘어서 어떻게 평화를 만들 수 있을까입니다. 20세기에 인권화,
권리의 세기였죠. 식민지가 해방되면서 흑인운동, 여성운동, 노동운동 등 수많은 인권운동과
해방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자기의 권리를 주장하는 시기였습니다. 굉장히 중요했죠. 그런데
문제는 나의 권리가 중요하다는 것을 넘어서서 어떻게 공생하고 상생할 수 있을까하는 것이
우리 모두가 겪어야 하는 문화적인 과제, 종교인들의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원불교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지만, 소태산 선생님에 대해 배운 것을 보면 정말 21
세기의 비젼을 19세기에 사셨던 분이 말씀하시고 가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원불교에서도
그 비젼을 어떻게 살려낼까가 굉장히 큰 문제일 것 같습니다. 예수님도 정말 멋있는 분이셨
습니다. 그런데 기독교가 313년에 로마제국에 제도적 종교가 되면서 그 많은 아름다운 메시
지를 많이 잃어버렸습니다. 요즘 교회들도 예수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 우리를
따라오십시오’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원불교는 어떻게 가고 있는지 잘은 모르지만 의심이 생겼던 것이 남자 교무님들은 혼인을
하지만, 여자 교무님들은 왜 하지 않을까, 아니면 못 하실까하는 것이 궁금했구요. 창시자는
이루 말할 수 없이 남녀평등에 대해서 말씀하셨는데 원불교는 남녀평등을 할까하는 궁금증
도 있습니다. 제가 이화여대에서 오랫동안 일을 했기 때문에 또, 여성운동을 하면서 느낀 것
은 여자들이 지도자가 많이 되어 여자들끼리 어떠한 일을 해갈 때 가장 가슴 아팠을 때가
여자들끼리의 수평적 폭력이였습니다. 가부장제에서 남자한테 당하면 덜 억울하겠지만 같은
운동을 하는 여자들끼리 서로 반목하고, 비난하고 했을 때 너무 힘들었습니다. 원불교는 잘
모르겠어요. 어떻게 여성분들의 지도력이 굉장히 많으신데 특히, 가부장제 사회에서 어떤 식
의 권력을 가진 여성들은 몇 배로 깊이 자신을 돌아봐야 하는 것 같습니다.
개신교에서도 최초로 여자 목사들이 어떤 경우는 남자 목사보다 더 권위적인 목사가 나타나
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너무 권력 없이 살다가 처음으로 권력을 가져보니까 남자들이 했던
권력을 휘두르는 경우라는 것이죠, 남자들이 갖고 있는 힘의 세계에서 여자들이 몇 개 되지
않는 그 권력을 가지려 하니까 여자들 사이의 질시, 반목 등의 서로를 깎아 내리는 모습들
을 많이 보았습니다. 가부장적 사회 안에서 여자는 서로를 미워하도록 길들여졌습니다. 남자
를 중심으로 모든 것이 만들어지기 때문에 여자는 그 남자의 사랑과 관심과 그 남자의 상에
서 떨어지는 권력을 받기 위해서 다른 여자를 모함하고 도와주지 않게 훈련 될 때가 참 많
은데 저는 여성운동을 하면서 여자들끼리 자매애를 키워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가부장적 제도의 지배와 종속이라는 굴레를 벗어나기가 힘듭니다. 여자 안에서 또
피라밋을 만들거든요. 그래서 피라밋이 아니라 원으로 나가는게 모든 종교인들, 여성운동을
하는 사람들의 비젼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우리 안을 들여다보면서 우리는 세
모인가, 아니면 우리는 원인가를 생각해야 할 것 같습니다.

붉은악마 그리고 작음의 참의미
제가 두권의 책을 썼습니다. ‘결국은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거야’는 기독교 페미니스
트 신학자로서 만나는 불교의 수도생활에 대한 순례기를 썼구요. ‘미래에서 온 편지’는
미래를 만들어 가는 사람, 따라가고 싶은 아름다움을 만들어 가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해서
여신의 십계명을 썼어요. 보통 기독교의 십계명은 ‘00하지 말라’인데요, 그런데 젊은 사람
들은 하지 말라를 얼마나 싫어합니까? 그래서 요즘 김남일 선수가 인기잖아요. 왜 그 사람
을 그렇게 좋아할까요? 너무 불량하고, 터프하고 자기 멋대로 하는 등의 자유에 대해 동경
하는 거에요. 자유에 대한 동경에 이해는 갑니다.
저는 요즘 붉은악마들을 보면서 너무 너무 즐거웠습니다. 제가 한국을 떠날 때 이런 명언을
남기고 떠났습니다. “작은 고추는 맵지 않다. 오직 작을 뿐이다”그리고 “한국은 아직도
고추제국주의가 너무 판을 치기 때문에 나는 떠난다” 그리고 버지니아 울프처럼 “여자인
내게 조국이란 없다. 여자인 나는 조국을 원하지 않는다. 여자인 네겐 온 세상이 조국이다”
이렇게 여자인 나를 못 알아주는 고추제국주의인 이 나라를 떠나서 난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뿐만 아니라 세계는 넓고 남자도 많다. 난 넓은 세계로 가겠다고 하면서 뉴욕으로 갔
습니다.
월드컵 기간 중에 시청 앞에서 붉은 악마들과 함께 응원했습니다. 제가 한겨레에도 칼럼을
썼지만 이것이 ‘해원의 제례‘였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학생운동을 하던 시절 제 친구들이
맑스의 책을 읽었다고 재판도 못 받아보고 교수형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붉은악마 옷을 입
은 사람들에게 쓰여있는 “Be the reds”는 번역하면 빨갱이가 되라는 뜻입니다. 전국민이
반공주의 때문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죽인 나라에서 온 국민이 빨갱이가 되자는 옷을 입
고 날뛰었다는 것은 우리 나라에서만 있을 수 있는 일 이였습니다. 그 다음에 제가 맨날 시
청에 나간 것은 데모하려고 나갔는데 언제 제가 춤추러 나갈 수 있었겠습니까? 그 데모할
때의 한을 다 풀었습니다. 트럭을 타고 태극기를 흔들며 달리는 사람들을 보면서 광주의 학
생들이 태극기를 들고 다니다 살육당한 그 생각이 나는데 이제는 너무 기뻐서 그 트럭에 올
라서 태극기를 흔들며 재미있게 보냈습니다.
이제 제가 한국 남성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작은 것이 아름답다입니다. 이것이 남성에게만
한 것이 아닙니다. 문명의 규제인 것 같애요. 무조건 크게가 아니라 작지만 아름답게, 작지
만 생명력이 넘치게, 작지만 정말 따라가고 싶게 이렇게 만들어 내는 것이 21세기의 비젼이
라고 생각합니다. 원불교도 아직 작지만 아름답게, 따라가고 싶게 되었으면 합니다. 제가 세
계를 다니면서 강연을 하고 있는데요. 특히 유럽과 미국은 이 자본주의와 개인주의의 끝까
지 가서 이들의 문명이 동양으로 자연으로 여성으로 돌아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지
혜에서 배우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21세기의 원불교 여러분께서도 아직은 작은 종단이지만, 작은 것이 정말 아름다운 것 같습
니다. 정말 아시아로 동양으로 여성으로 자연으로 돌아가는 이때 세계의 모든 사람들에게
원불교의 만민평등사상을 많이 전파하셔서 많은 사람들이 깨달을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작
지만 아름다운 그러한 종파로 21세기 문명을 이끌어 가시기를 바라면서 미숙한 저의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리 김산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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