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랑카에 은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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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랑카에 은혜를
  • 한울안신문
  • 승인 2002.08.22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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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서연 교무 " 서울외국인 센터


호기심에 가득찬 아이들


성대한 환영 원기87년 8월8일, 스리랑카 암발랑고다에 있는 불교사찰 스리-다르멘드라라마야 입구에는 야자수와 바나나, 대나무 등 자연재료로 만들어진 아름다운 아취가 그 곳에 들어서는 우리 일행을 환영하고 있었다. 특별한 재주를 가진 예술가가 만들었다는 이 아취에는 태극기와 스리랑카국기가 좌우에 장식되고 중앙에 일원상이 봉안되어 있어서 우리에게는 더욱 큰 감동으로 다가왔다. 아취에서부터 절 안으로 이어지는 길 양쪽에 줄지어 서서 우리를 환영하는 마을 청소년들의 호기심 어린 눈동자와 환영의 미소로 말미암아, 열대의 기후에 법복을 입어 등줄기에는 땀이 졸졸 흐르는 우리였지만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상쾌함과 보람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암발랑고다는 콜롬보에서 차로 1시간 30여분 떨어져 있는 중소도시로 스리랑카 전통가면 제작으로 유명한 곳이다. 그리고 지역에 오직 불교사찰만 있고, 스리랑카 곳곳에서 볼 수 있는 교회나 모스크, 힌두사원이 없는 스리랑카 유일의 불교마을이라고 한다. 장학금 전달식 600여명의 어린이들과 학부모, 교사, 그리고 마을유지들로 강당과 절 마당은 포화상태였다. 강당 밖에서도 창문으로 안을 주시하는 많은 눈빛들... 이들이 원불교를 진정으로 알아보고 배우러 온 사람들이 아닌게 아쉬웠지만 앞으로 그러하기를 염원하고 염원하였다. 식순에 따라 폴와테 주지스님을 비롯한 초청연사들이 나와서 연설을 하였고, 나도 연설을 하였다. 통역을 통해 전해진 다른 사람들의 연설요지는, 다른 나라를 도울 수도 있고, 다른 어린이들을 도울 수도 있는데 이렇게 우리 마을의 어린이들에게 특별히 수혜를 준 한국의 원불교에 대해 감사한다는 것, 앞으로 장학금수혜자들이 훌륭하게 자라서 대통령도 되고 국회의원, 시장 등 나라와 마을의 지도자가 되어 이 은혜에 보답하라는 것, 월드컵을 성공적으로 치룬 한국에서 배울 점, 그리고 원불교에 대한 내용 - 세계는 하나, 진리는 하나, 인류는 한가족, 저 일원상은 이런 뜻이 있다 - 이었다. 나는 부처님으로 인하여 맺어진 우리의 소중한 만남을 앞으로 더욱 잘 이어가고 발전시키기를 바라며, 그 구체적인 방법으로 어린이들에게 일기 쓰기를 제안하고, 그 방법을 설명하였다. 단점을 고치고 장점을 발전시켜나가기로 다짐하고, 일기를 써서 그 과정을 점검하여야 진급할 수 있다고 강조하여 현지인들의 호응을 받았다. (내년에는 일기 점검을 하여 우수자에게는 별도의 선물을 주려고 한다.) 5년뒤의 장학금 뜻있는 교도님들(화곡 김윤운교도님, 서진주 조현관교도님)이 지원해 준 문구류와 선물을 어린이들과 봉사자들에게 선물하는 일도 성황을 이루었다. 현지인들끼리 해도 된다고 하는 것을 우리가 직접 해야한다고 땀을 비오듯 흘리면서도 일일이 선물을 포장하며 이 선물을 받는 아이들에게 일원의 가지가 접목되기를 염원하였다. 정성이 없는 행사는 그리 의미가 없는 것이다. 장학금과 선물 전달 사이사이에는 마을 어린이들이 민속춤과 노래를 선보였다. 환영의 마음으로 하는 그들의 몸짓과 목소리는 우리의 마음에 잔잔한 감동으로 다가왔다. 이번에 장학금을 받은 아이들은 모두 11명이다. 장학금 수혜 대상은 현지의 5학년 어린이들로 6개월마다 1000루피씩 지급하는데 3회 지급하므로 1인당 3000루피(한화로 4만원)를 받게 된다. 원래 10명으로 했는데 환율차로 여유가 생긴 참에 딱한 사정의 어린이가 장학금 받게 해 달라고 해서 11명이 되었다. 장학금은 모두 어린이 개인 통장을 만들어 지급하고 5년후 고등학교에 진학할 때 찾아서 쓸 수 있게 되어있다. 스리랑카의 이자율이 높아서 3000루피가 5년후에는 10000루피가 되어 고등학교 진학할 때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이들의 교육열을 북돋우고, 당장의 소비보다는 미래를 위한 저축을 지향하도록 지도하는데 이 장학금 수여의 목적이 있고, 원불교는 이를 통하여 현지교화를 함께 할 인재를 키워내는 것이 간절한 바램이다. 솔씨를 키워 정자를 세워보자는 것이다. 오늘이 있기까지 원기85년 당시 양천교당에 재직하면서 일요일마다 의정부에서 스리랑카 노동자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며 교화의 터전을 모색하고 있을 때 한국에 와서 자국노동자를 위해 활동하고 있는 스리랑카 스님으로부터 부탁을 받게 되었다. 스리랑카 어린이들에게 년 4만원의 장학금을 주었으면 좋겠다며 우선 10명에게 장학금을 주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연말에 당시 교당에서 받고 있던 용금에서 20만원을 보내주며 나는 그렇게 돈이 많은 사람이 아니니 나머지는 다른데 알아보라고 하였다. ‘한 달도 아니고 1년에 4만원으로 무슨 도움이 될까?’ 의아해 하면서 그래도 5명은 도왔으니 됐다 생각하고 더 이상 마음에 두지 않았다. 그런데 그 20만원으로 장학금 전달행사를 했다면서 보여준 사진과 비디오 테이프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교화의 가능성이 담겨있었다. 사진을 통해 초롱초롱한 눈빛의 아이들을 보니 이들이 자라서 전무출신을 서원하면 좋겠다, 그렇게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기회있을 때마다 아이들의 사진을 보여주며 이들을 위해 연4만원 후원해 줄 인연을 찾았다. 어머니를 비롯한 가족, 교역자들을 가리지 않고 염치불구 들이밀었는데 그 중 어머니와 교역자 몇분이 호응을 하여 주었다. 그러는 중, 원기86년 8월에 페라데냐 대학교(스리랑카 제일의 국립대학) 의대생 1명이 어려운 가정형편을 호소하며 성적표를 첨부하여 장학금을 신청하였다. 첨부한 성적표를 보니 참으로 우수한 학생이었고, 앞으로 훌륭한 의사가 되어 어려운 사람을 돕겠다는 자기소개서를 보니 이 학생을 잘 지도해서 도무로서 전무출신하게 하는 것도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학기당 10만원의 지원을 수락하였다. (스리랑카 대학교는 3학기제이므로 대학생 1년간 수혜액은 30만원이 된다.) 너무나 감사한 사람들 원기87년 1월이 되었으나 아직 장학금은 충분히 모금되지 못하고 있었다. 우연한 기회에 이 사정을 들은 서울보은회에서는 그런 좋은 기회를 놓칠 수 없다며 흔쾌히 장학금을 모금하여 주셨고, 대학생을 더 선발하라는 촉구도 들어왔다. 복전을 보면 그냥 지나지 않는 노법사님들의 정성으로 그간의 걱정이 싹 사라졌다. 원기86년에 선발된 장학생 어린이들은 이제 모두 3000루피가 예금되어있는 통장을 갖고 있고, 대학생은 4개월마다 받는 장학금으로 학업을 지속하고 있으며, 이번에 11명이 새로이 장학금을 받아 총 수혜자는 22명이 되었다. 사진으로 보던 아이들을 직접 만나고, 새로운 장학생들에게 직접 장학금 통장을 전달하고 보니 이들과의 인연을 법연으로 발전시켜야할 책임이 더 커졌다. 다음에는 장학생 선발을 현지인에게 만 맡기지 않고 선발요강을 정비, 직접 개입하여야겠고, 이들에 대한 학업과 생활 관리도 해야 할 필요를 느꼈다. 다음부터는 힘들더라도 더 오래 체류하면서 이들을 대상으로한 훈련프로그램을 운영해야겠다. 그래야만 법을 전하여 전무출신 서원자를 발굴해 낼 수 있다고 생각된다. (때를 맞추어 뜻있는 의료인들이 의료봉사활동을 펼쳐 준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스리랑카 현지에서 교육복지 활동을 펼치고 있는 일본불교의 시설과 규모 (년간 장학금 수혜자 40만 명!, 9개 지방에 설립된 지소)를 돌아보면서 우리의 이 활동이 너무나 미비하게 여겨졌지만, 이소성대(以小成大)로 나아가는 길임을 알기에 희망을 안고 돌아왔다. 이 번의 행사를 계기로 우리의 활동이 스리랑카 정부에 자선단체로 등록될 수 있다는 말과 정부요직에 있는 사람들과 접촉할 길도 열어주겠다는 말도 들었다. 내심으로 무슨 목적을 갖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일단 발전적인 소식으로 보인다. 그러나 나는 이 말에 크게 반응하지는 않았다. 일찍이 세상에 알려지기 보다는 무명일지라도 내실있는 활동을 하는 원불교로 자리매김하자는 것이 소신이기 때문이다. 우리 외국인센터의 활동이 좀 과장되어 알려진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하고 있는 처지이고, 우리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대종사님 법과 하나되도록 정진적공하는 것임을 명심하고 명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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