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에 심고 온 희망의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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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에 심고 온 희망의 나무
  • 한울안신문
  • 승인 2002.09.1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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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한지성(원불교여성회 회장) 권예주(교구여성회회장) 장원희(여성회신문 편집장) 정선희(여성회 간사)


원광유아원 건립독경식



빵을 받고 즐거워하는 아이



웃통벗은 축제의아이


세계정상회의의 내용과 성과
지난 8월 26일부터 9월 4일까지 원불교여성회 남아프리카 방문단 16명은 요하네스버그에서 열린 세계환경정상회의(WSSD)참석과 남아공과 스와질랜드 교당 방문을 무사히 마치고 9월5일 귀국했다. 이번 방문단은 여성회 임원12명과 철타원 최강연 교무님, 만타원 정도중 교무님, 양영인 교무님께서 함께해주셨고, 외부인사로는 내일신문사의 최영희 부회장이 참가하였다.
WSSD대회는 원래 세계정상들의 모임이고, 회의 내용도 10년 전 리우 환경회의에서 토의된 것을 얼마만큼 실천했는가, 또 구체적 실천계획표는 어떻게 짰는가 하는 것을 내놓기로 되어있는 회의라서 애초부터 NGO들이 참여해서 이바지 할 수 있는 부분은 적었다. 이런 상황을 잘 알고 있는 우리 여성회에서는 1년 전부터 여러가지로 남아프리카 방문을 의미있게 하기위한 준비를 해왔다. 그러나 워낙 먼 곳이고 또 현지사정에 대한 정보가 많지 않아서 떠나는 순간까지 머릿속에 확실한 “감”을 갖지 못하고 떠났다.
예상대로 WSSD대회는 처음부터 정부대표단과 NGO들의 행사장이 1시간 가량의 거리로 떨어져 있었고, 국제대회의 절차에 익숙하지 않은 국내외 대표들은 상당히 혼란스러웠다.
다행히 지난 4년간의 유엔활동으로 국제대회 관행에 익숙해있고 또 회의 내용도 잘 숙지가 되어있었던 우리 여성회원들은 두 조로 나뉘어 한지성 회장과 정선희 간사는 대회에 적극 참여하기로 하고 나머지 회원들은 관광을 하여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로 하였다. 입장권을 받는데만 하루를 소비했지만 나머지 회원들이 전체등록비 150불 대신에 15불의 일일등록비로 대회를 참관할 수 있었던 것은 다행한 일이었다. 한국의 날에는 장사익씨의 노래판이 벌어졌는데, 300명이 넘는 한국참가자들이 모두 모여 현지인들과 함께 한국의 평화통일을 기원하는 선언문도 낭독하고 어깨동무를 하고 흥겨운 한 때를 보냈다.
요하네스버그에서 열린 세계정상회의의 내용은 지구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다는 것이었다. 이 주제는 이미 10년 전 브라질의 리우 세계정상회의에서 제기되어 ‘의제21’이라는 1992년도 판 행동과제를 만들게 했다. 이제 그 10주년을 맞아 과연 세계가 얼마나 지속가능한 발전을 해왔는지 점검하고, 새롭게 제기된 문제와 도전점을 받아들여 보다 진일보한 계획을 세계적으로 논의하자는, 말 그대로 거창한 ‘세계대회’가 열리게 된 것이다.
가장 의미있는 사안을 보자면 우선 기후협약(38개 선진국에 대해 온실가스배출량을 2012년까지 1990년보다 5%이상 감축하도록 하는 협약) 부분이다. 세계 제일의 일산화탄소 배출국인 미국이 부시의 집권과 함께 탈퇴를 선언하여 이미 묵살해 버렸던 교토의정서에 다행히도 일본, 중국 그리고 막판에 러시아가 비준을 시사하면서 연내 발효될 수 있는 희망을 안겨주었다. 지구온난화 방지를 위해 최초의 국제적인 구속책이 실천될 수 있다는 사실이 그나마 이번 대회 최대의 성과라고 할 수 있겠다.
부시대통령이 참가도 하지 않은 이번 회의에서 미국은 ‘환경 악의 축’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였다. 2010년까지 풍력이나 태양열 등의 대체에너지를 15%이상 사용하자는 사안에 대해서도 미국은 반대, 2015년까지 깨끗한 식수를 제공받지 못하는 인구를 절반으로 줄이자는 사안에 대해서도 미국은 반대, 2015년까지 절대빈곤인구를 1990년의 절반으로 줄이기 위해 선진국 국민총생산의 12%를 원조하자는 사안에 대해서도 반대(현재 최대 경제대국인 미국은 겨우 0.1%를 원조하고있음)이니 ‘악의 축’이라는 말을 듣고도 남음이 있었다.
당초 준비했던 구체적 이행계획과는 달리 9월 4일 발표된 요하네스버그선언은 그야말로 ‘선언’에 그친 문구로 채워져 있었다. 법적 구속력이나 제재를 가할 수단이 없는 이행계획은 속빈 강정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에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은 폐회식에서 ‘이것은 끝이 아닌 시작’임을 강조했다.
이번 회의에 대한 비판적인 논평들을 보며 요하네스버그의 하늘 아래에서 떠오른 것은 종법사님의 신년법문인 ‘강자의 길, 약자의 길’이었다. 강자가 영원한 강자로 남기위해 약자를 도와야 하는 것이 결국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유일한 해결책인 듯 했기 때문이다. 우리 인류는 과연 모두 다 강자가 되는 길을 걸을 수 있게 될 것인가? 원불교인으로서의 사명이 더욱 무거워지는 시대가 아닐 수 없다.

라마코카스타드 기념식수
3일간 대회참가를 마친 우리는 우리의 주목적이었던 남아공 교당행사에 참여하였다.
우선 라마코카스타드 흑인지역에 설립예정인 원광 유아원 건립부지에 가서 주민들과 함께 기원독경식을 가졌다. 일원상기를 중심으로 양쪽에 남아공기와 태극기를 커다랗게 걸어놓은 불단앞에서 추장(수술로 부인이 참석)과 친척, 시장, 마을의 원로와 유지들이 참석한데다 합창단까지 유니폼을 입고 나와 제법 성대한 느낌을 주었다. 여성들로 구성된 합창단은 흥겨운 춤과 함께 여러가지 노래를 불러주었는데, 기독교 찬송가도 있었고 ‘비바 코리아’라는 한국찬양 노래도 있었다. 원불교 노래를 불러달라고 하면 다음 번에는 틀림없이 불러주리라고 생각했지만, 우리는 원불교 노래가 아닌 인류의 노래를 부탁해야 되겠다는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물질적인 원조에 따라서 이 종교 저 종교의 노래를 부르는 모습은 누구에게도 즐겁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부지는 아직 철조망-애초에 추장은 원하는 만큼의 땅을 가져가라고 하였다는데 자기 땅으로 하기위한 철조망값이 너무나 많이 들어서 우선 4,700평만 잡으셨단다-밖에 안쳐진 황토흙 땅이었지만, 우리는 간절한 기도식을 마치고 기념식수도 했다. 나무라야 아직은 사람키에도 못미치는 종려나무 한 그루였지만 언젠가 이 나무가 자라서 얼마나 많은 사람의 그늘이 되어줄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까풍아 마을축제
8월 30일. 우리는 중타원 김혜심교무님의 혈성이 깃들인 스와질랜드(Swaziland)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아프리카의 남동부에 위치한 이 나라는 우리나라의 경상남북도를 합친 정도의 면적이고, 인구는 약 100만이며, 입헌군주제로 왕이 모든 권한을 장악하고 있다. 육로를 통해서 다른 나라로 가는 경험이 없던 우리들은 버스에서 내려 간단한 검문 절차를 통해서 국경을 넘는다는 사실이 무척 이상하기까지 했다. 김혜심 교무님께서는 이 길을 2주에 한번씩 넘나들어 여권의 입국 도장을 찍을 면이 없을 정도라고 한다.
여하튼 월경(越境)을 하여 달리는 바깥 풍경은 남아공과는 사뭇 달랐다. 동물들의 출입을 막기위해 모든 도로 양쪽으로 철조망이 쳐진 남아공과는 달리 닭들이 길을 가로질러 가기도 하고 소들이 길가에 배를 깔고 누워있기도 하는 한가로운 시골 풍경이 계속되었다. 중타원님이 계신 까풍아(Kaphunga)는 수도인 음바바니(Mbabane)에서 포장길 25km와 비포장 산길 18km를 꼬불꼬불 올라가서야 있었다. 이곳 까풍아는 ‘피의 골짜기’란 뜻이라고 한다. 오래전 이 지방에 살던 줄루족과 레소토족간의 치열한 싸움이 이곳에서 있었기에 그런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그런 한이 서린 이곳에 우리 원불교가 들어와 암담하기까지한 그들의 미래를 위해 어린이 교육에 힘을 쏟고 있다는 것은 대단한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차에서 내리니 아담한 유치원 건물과 법당 그리고 생활관이 있고 옆으로는 보건소가 자리잡고 있었다. 이름 모를 꽃들이 피어있는 마당에는 그네며 미그럼틀 놀이시설이 있어서 방학중이라는데도 많은 어린이들이 와서 신나게 놀고 있었다. 그들이 살고 있는 집에 비하면 이곳 유치원은 꿈동산이라고 할까. 우리가 도착하자 반갑게 맞이해주는 이곳 교무님들과 자원봉사자들의 모습에서 반은 아프리카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것같다. 처마 끝에 달린 청사초롱이 어찌나 잘 어울리는지.
주민 축제의 시작은 오전 9시인데, 10시가 가까워졌는데도 운동장에 모인 주민들은 얼마되지 않았다. 날씨가 추워지자 모두들 집안에서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곳 아프리카에서 가장 힘든 것 중의 하나가 약속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 더군다나 추장의 집안에 하필 이날 초상이 나서 추장마저 10시가 거의 되어서야 나타났다. 이 나라 국왕의 이복 동생이라는 추장은 잘생긴 얼굴에 가죽 조끼를 걸친 멋쟁이였다. 일본제 승용차를 타고 아름다운 부인과 딸 그리고 아들을 데리고 로얄석에 자리잡으므로서 까풍아 주민의 날 행사가 시작되었다.
어디에서 모여드는지 금방 약 100여명의 주민들이 간간이 뿌리는 비를 피해 천막 안으로 모였다. 2월달 쌀쌀한 날씨같은 기온임에도 맨발에 얇은 셔츠와 반바지 차림의 아이가 있는가하면 두터운 잠바나 코트를 입은 여자들도 있고 옷차림이 천차만별이였다. 아마도 집에 있는 옷 중에 입을 수 있는 것은 모두 입고 나온 것 같았다.
우리 여성회원들도 봉산 탈춤을 선보이기로 하여 한국에서 가져간 의상과 탈을 쓰고 자리에 앉으니 모두들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았다. 자동차 배터리에 연결한 마이크의 성능은 의외로 좋았다. 영어를 공용어로 쓰긴 하지만 교육을 받지 못한 대부분의 주민들을 위하여 토속어와 영어를 통역해가며 진행된 의식은 기도로 시작되었다. 이곳에도 기독교가 들어와서 조그만 마을에 교회가 3개나 있으며 주민들 대부분이 기독교도들인지 기도의 마지막에 ‘아멘’이라고 하였다.
추장의 인사말과 한지성 회장의 인사말이 끝나고 지난 5월에 콘테이너로 보낸 선물 전달식이 있었다. 이 곳 여자들을 위해 미싱을 선물하였다. 그리고 2부 순서는 전통적인 문화행사로 먼저 신나는 북소리에 맞추어 소년소녀들이 추는 춤은 아주 리듬감이 있었다. 우리 여성회원 8명도 지난 여름 땀흘려 연습한 봉산 탈춤을 추었다. 이어서 사탕먹기 대회와 줄다리기 등 모든 주민들이 참여한 게임이 끝나고 마지막엔 참석한 모든 사람들이 한데 어울리는 춤판이 벌어졌다.
모든 행사가 끝나고 교당에서 준비한 옥수수빵과 오렌지쥬스를 받으며 즐거워하는 모습은 참으로 순박하였다. 추장가족을 비롯하여 초대받아온 동네 유지(?)들에게는 라면을 끓여주었다. 그들은 라면을 참으로 좋아한다고 한다. VIP를 대접하는 최고의 음식이 라면이라니, 라면회사는 광고차원에서라도 무료로 지원해야하지 않을까.
경제적으로 열악한 이 나라에서 이곳은 최고의 유치원으로 인근의 주민들이 자신의 아이들을 입학시키고자 줄을 선다고 한다. 또한 입학할 땐 꾀죄죄한 모습이던 아이들이 교무님들의 손길에 통통하게 살이 오른 모습으로 변해 간다고 한다. 무지와 가난과 질병의 대륙-연소득 300불 미만의 나라 49개국 중 30개국이 모여있는 아프리카의 문제는 누구도 간단히 해결할 수 없어 보인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어린이들의 교육이 가장 필요하고 느껴서 이곳을 택하셨다는 중타원님의 말씀이다. 이 아이들이 이곳에서 받는 교육으로 새 사람이 되고 어른이 될 때쯤에는 자라면서 받았던 사랑의 기억과 함께 이 나라를 변화시켜가는 주역이 될 것이다.

웃통벗은 축제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스와질랜드 교당을 방문하던 날 우리 일행은 매년 열린다는 ‘Reed Dance Day" 축제를 참관하는 행운을 가졌다. 그 축제는 일부다처제인 스와질랜드의 왕이 각 부족에서 모여들어 춤추는 처녀들 중 한 처녀를 왕비로 간택하는 의식이 열리는 명절이다. 이날은 이 왕국의 처녀는 물론 어린 여자아기도 걸음을 제대로 걸을 정도면 모두 모여 국왕 앞을 지나며 하루 종일 춤을 춘다고 한다. 왕은 하루 종일 춤 관람을 하는데 그 많은 여자 중에 어떻게 한 명을 고르냐고 하니까 대개는 미리 정해지고 그날은 형식적인 간택이란다. 부족 통치의 한 방법으로 이 부족, 저 부족에서 한 명 씩 데려 오기도 한다는 현지인의 설명이다.
춤추는 처녀들은 모두 젖가슴을 내놓고 있어서 바로 보기가 조금은 민망한 터였는데 축제를 참관하는 여자들은 모두 치마를 입어야만 입장할 수 있단다. 우리 일행은 그곳으로 가는 도중 토속상품을 파는 상가에 들러 표범가죽무늬를 비롯한 각종 무늬의 커다란 보자기 같은 머플러를 사서 바지 위에 각자 맵시를 내어 걸쳤다. 그리고 혹 우리중의 누군가가 간택되어 왕비가 되는 거 아니냐는 떠들썩한 농담을 하며 입장을 했다.
그곳에 도착하여 펼쳐지는 장면을 목격한 순간 일부다처제의 부당함이나 미개한 관습에 대한 불만이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빨강 노랑 파랑 초록 검정등 강렬한 원색으로 치장하고, 아랫도리만 살짝 가렸을 뿐 가슴을 비롯한 신체의 대부분을 드러낸 5만여 명의 처녀들이 노래와 함께 추는 춤은 장관이었다. 거대하면서도 질서정연한 춤의 물결 앞에서 가벼운 현기증마저 일었다. 왕비의 간택을 위한 행사라기보다는 우리네 전국체전 같은 그 나라 모든 여성들의 축제마당 같았다. 특히 여자들의 춤이 모두 끝난 후에는 전통의상을 입고 황금의 창을 든 왕이 왕족 및 호위병들과 함께 위풍 당당하게 행진을 하다가 가끔씩 처녀들에게 무릎을 꿇고 절을 했는데, 그 모습이 퍽 인상적이었다. 아무 여자라도 선택할 권리가 있으니 일년에 한번쯤은 여자들에게 무릎을 꿇어 마땅할지도 모를 일이나 소 12마리면 언제고 아내를 얻을 수 있는 지독한 가부장 나라의 풍속치고는 최소한의 예의표시는 되는 것 같기도 했다.
일년에 한번씩 왕비를 간택하는 행사를 가지는 까닭에 현재의 왕인 35세의 무사와티 3세는 왕비가 9명이고, 그의 부왕은 60년 재위기간동안 100여 명의 왕비와 200여 명의 왕자와 공주를 생산했다고 한다.
이 날은 부족의 남자들도 마음에 드는 여자들에게 청혼을 할 수 있다고 하는데 실제 우리일행에게 그런 일이 일어났다. 중요한 부분만 아슬아슬하게 가린 전통의상을 입은 검은 색 피부의 남자가 스와지 교당에서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던 우리나라 젊은 여학생 교도에게 네 번째 아내가 되어달라고 청혼을 한 것이었다. 얼굴이 벌개진 그녀를 바라보다 조용히 사라져가는 그 남자의 등을 바라보며 우리는 폭소를 금할 수 없었다.

아프리카의 희망, 여성
600만의 백인이 아직도 철저하게 4,000만의 흑인을 부리고 사는 사회. 1일 생활비 1불 미만, 일부다처제, 놀고먹는 가부장 남성! 평균연령 45세, 에이즈 환자 45%의 나라.
이 나라의 여성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무엇을 위하여 살까? 인생의 꿈이 있을까? 아니, 인생이 꿈꾸는 대로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기나 할까?
사냥시대를 졸업한 남성들이 할 일없이 지내는 데 비해서 여성들의 활동은 그래도 다양했다. 양초 한 개를 만들면 10센트를 공임으로 받는다는 양초공장의 젊은 여성근로자는 그래도 한 달에 300불을 버는데, 아이들을 마음껏 공부시키려면 500불은 벌어야 한다면서 일손을 쉬지 않았다. 딸이 무엇이 되었으면 좋겠냐고 물으니 건축가가 되어서 아름다운 집을 짓고 좋은 남편을 만나 무엇보다도 자기가 누리지 못한 모든 것을 누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영어를 어디서 배웠느냐고 하니 통신으로 배우고 있다고 한다. 백인의 집에는 집집마다 가정부를 두고 있었는데, 가정부를 하려고 해도 영어는 필수다. 그러니 의식이 있는 여성들은 어떻게 해서라도 영어를 배우려고 한다. 전체로 보면 까마득해 보이지만 젊은 여성들이 악착스레 일하는 모습을 보면서 서서히 나마 깨어나고 있는 아프리카 대륙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은 다행이었다. 세계 어디서나 특히 후진국이 후진국을 면하는 과정에는 여성들의 노고가 있음을 본다. 아프리카의 희망도 역시 여성에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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